지긋지긋한 '중국인 오해'
얼마 전, 직장에서 연말 기념 회식이 있었다.
우리 회사는 스타트업인 만큼 인원 수가 적고 그중에 아시아인은 나뿐이다. 그렇기에 회식이 있을 때면 무난한 이탈리안 레스토랑이나, 터키인 동료들이 추천한 그리스 식당 혹은 조지아 식당(이곳에서는 동유럽/남유럽식 식당이 꽤 있다)에 가곤 했다. 이번에는 예약을 늦게 하게 되어 조급한 상황이었는데, 한 중식당이 맛은 괜찮은데 가격이 비싸서 평일에 사람이 별로 없다는 한 현지인 동료의 추천으로 그곳에 가게 되었다.
식당 내부는 정말 '중국스럽게' 꾸며져 있었다. 중국 전통 음악이 흘러나왔고, 식당 내부 바닥에 작은 시냇물도 흐르게 해놓았다. 작은 수족관에 금붕어들이 있었고, 가구들은 붉은빛이 도는 나무 목재로 되어 있었다. 함께 도착한 몇몇 동료들은 당연히 이런 분위기가 이국적으로 느껴질 것이었다. 다들 감탄하며 '와, 멋지다~' 같은 반응을 보였다. 내 눈에는 그냥 조금 고급진 중식당 느낌이었지만(그리고 조금 촌스러웠지만), 마치 내가 스위스 전통 가옥을 보고 멋있다고 하는 것과 같으려니 했다.
우리는 총 8명이었다. 직원은 우리를 회전 테이블이 놓인 크고 둥근 탁자가 있는 곳으로 안내했다. 모두가 도착한 뒤 중국인처럼 보이는 직원이 메뉴판을 가져와 한 명씩 나눠주었다. 그런데 내게 'madame,' 하면서 하는 말.
'Parlez-vous chinois ?'
중국말을 할 줄 아시나요?
누가 봐도 나 혼자 아시안이었으니 눈에 튀긴 했겠지. 옆에 있던 동료가 직원이 하는 불어를 알아듣고 나를 쳐다봤다. 솔직히 기분이 아주 좋지는 않았으나, 다행히 그는 내게 불어로 물어보았기 때문에 최소한의 배려는 했다는 생각이 들어 'non(아니오)' 이라고 단호하게 말하며 끝냈다. 직원이 가고 나서 동료가 중국어는 한국어랑 많이 다르냐고 물어봤다. 학교에서 배우지 않냐고도. 정말 순수하게 물어보는 것이었기에 대답했다. 중국어는 한국어랑 생김새부터 다를 뿐 아니라 배우지 않으면 전혀 알아듣지도 말하지도 못한다고. 나는 학교에서 제2외국어로 중국어를 선택하지 않았기에 중국어를 전혀 몰랐다. 자주 이런 일이 생긴다고 말하며 웃어넘겼다.
인원이 많았기에 음식이 나오기까지는 시간이 꽤 걸렸다. 메뉴를 소개해 준 다른 직원은 평균 이상으로 서비스 정신이 있는 사람이었다. 중국 음식을 잘 모르는 서양인 동료들에게 음식을 하나하나 설명해주며 메뉴 선정을 도왔다. 중국인이었지만 영어와 불어를 잘하는 분이었다. 유창한 영어 발음을 듣고 '의외네' 라고 생각했다. 그동안 내가 만나왔던 중국인(홍콩이나 대만이 아닌 중국 본토)들은 모두 영어를 잘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해외에 살아도 중국인의 커뮤니티로 거의 모든 걸 해결할 수 있기에 중국인들은 대체로 영어 실력이 뛰어나지 않다. 이 분은 노력을 많이 하셨나보다 생각하고 있었다.
드디어 음식이 나왔다. 음식은 평균 이상이었지만 눈이 돌아갈 만한 맛은 아닌, 전형적인 서구 국가의 고급 아시안 식당 수준의 맛이었다. 한참 식사를 맛있게 하고 거의 식사가 끝나가고 있는데, 그 직원이 다시 우리 테이블로 와서 음식은 어땠는지, 맛있었는지 등 피드백을 요청했다. 모두가 맛있었어요, 감사합니다 하며 화답했다. 직원과 나의 눈이 마주쳤다. 영어로 말을 건네던 그분은 내게 중국어를 했다.
'#@&#*($*(*(@...'
중국어를 1도 모르는 나는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몰랐지만, 억양과 말투로 봤을 때 내게 중국어로 말하고 있음은 알 수 있었다. 순간 나도 모르게 표정이 굳어지며 아니라고 했다. 직원은 '아, 그렇군요 실례합니다' 라며 다시 영어로 대답했다. 우리 테이블에 있던 사람들 모두가 이 상황을 인식했다. 직원이 가고 나서 터키인 동료 중 한 명이 아시아인들끼리는 서로의 국적을 잘 구분하지 못하냐고 물었다. 별로 구체적으로 대답하고 싶지 않아 '저 사람 보니까 아닌 거 같네'라고 대답했다. 잠시 후 내 옆자리의 스위스인 동료가 물었다.
'저 사람이 하는 말, 너에게 예의 없게 들려?'
나는 단번에 저 사람이 한 행동은 엄연한 인종차별이라고 단호하게 말했다. 그러니 당연히 기분이 나빴다고 했다. 동료는 수긍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두 차례나 이런 일이 생기다니 이상하다며 약간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 다른 사람들은 뭐라 말해야 할지 몰라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다. 그저 하던 대화를 이어갔을 뿐이다. 그들에게는 나의 입장이 전혀 예상되지도, 뭔가 느껴지지도 않을 테니. 나는 워낙 인구가 많은 중국인이니 이런 일이 생긴다며 한숨을 쉬었다. 그나마 내게 뭐라도 말을 건네주었던 그 동료가 고마웠다.
사실 이런 일이 한두 번은 아니다. 스위스에서 철저한 소수 인종인 아시아인으로 살아가고 있다 보니, 이런 일은 서양인/동양인 막론하고 내게 자주 들어오는 질문이다. 물론 서양인에게 중국인이냐는 질문을 받는 것도 기분 나쁘다. 이해가 안 되는 것은 아니다. 중국의 인구가 압도적으로 많고, 스위스에 거주하는 얼마 안 되는 아시아인의 대부분은 중국인이니까. 그런데 서양인에게 질문받는 것만큼 중국인이 내게 막무가내로 중국어로 말을 걸어오는 것 또한 기분 나쁘다. 그들은 질문조차 하지 않은 채 그냥 '판단'해 버리니까. 안 그래도 스위스에서 소수 인종인데, 같은 인종 중에서도 소수자라는 사실 때문에 이런 일이 일어난다는 것이 조금 서글펐던 것 같다.
스위스 생활에서 얻은 것도 많지만, 이곳에서 살아간다는 것은 결국 이런 상황들을 지속적으로 맞닥뜨리더라도 웃으며 넘길 수준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아무리 이곳 문화에 적응하고 언어를 말해도, '다른 생김새' 가 주는 임팩트는 강렬하다. 독일에 10년 이상 거주하고 현지어를 유창히 하시는 분이 그러셨다. 아무리 자신이 유창한 독일어를 구사해도, 사람들은 항상 자기한테 물어본다고. '그래서 넌 어디서 왔어?' 라고.
서로 다른 두 나라의 문화를 모두 품으며 살아가는 이방인들에게, 이 질문은 계속될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