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ka. 히미츠 연말 콘서트 후기
연말을 맞아 잠시 한국에 돌아왔다.
한국에 오려고 오래전부터 계획한 것은 아니었는데, 8월에 집이 도둑을 맞는 바람에 멘탈이 많이 나갔었다. 다행히 새로 이사갈 집을 구해서 모든 게 다 잘 풀렸지만, 당시에는 나의 힘듬을 나눌 가족의 곁에 너무도 있고 싶었다. 결론적으로 연말 전에 이사를 가게 되어 한국을 가벼운 마음으로 방문할 수 있게 되었다. 거기에다 도둑맞았을 때 정지했던 은행 계좌도 해결해야 했다. 직접 영업점에 방문해야만 풀어준단다. 나중에 아빠한테 물어보니 SKT 개인정보 유출 사건 이후에 생긴 거란다. 아무튼, 가족 방문과 개인적인 일 처리 때문에 한국에 잠시 들어오게 되었다.
아주 오랜 시간동안 한국에 방문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올해 5월 초에도 한국에 놀러왔었으니까. 그땐 남자친구와 함께여서 그를 챙기느라 한국에서도 참 정신없는 나날을 보냈던 것 같다. 이번에는 그의 휴가 사정 때문에 나 혼자 방문했다. 쓸쓸할 줄 알았는데 막상 오니 한국은 혼자서도 놀 수 있는 것들 천지였다. 인터넷 쇼핑과 오프라인 쇼핑하는 재미에 빠져 한국에 온 지 이틀만에 홍대와 성수동을 다녀왔다. 가격이 스위스에 비해 착한 건 두말할 것도 없다. 사람들도 다들 멋지고 예쁘게 입고 다녀서 멋부리고 다닐 맛이 난다. 등산복에 둘러싸인 나라에 살다가 각종 패셔너블한 스타일을 보니 내가 얼마나 다른 곳에 살고 있는지가 물씬 느껴졌다.
한국 입국 3일 차, 지금까지 느낀 것들을 말해보자면 이렇다.
입국 첫날, 안타깝게도 아픈 곳이 있어 병원을 방문하게 되었다. 얼마 전부터 나를 괴롭히던 고질병었는데, 스위스에서의 병원비는 상상도 못 할 정도로 비싸기 때문에 참다가 한국에 오자마자 병원에 갔다. 바로 항생제 주사와 약을 처방해주더라. 아프면 바로 약을 처방해서 빨리 낫도록 하는 한국의 의료 시스템이 눈물나게 고마웠다. 아직 건강보험이 처리되지 않아 병원 사람들과 의사소통을 해야 했는데, 그렇게 원활할 수가 없었다. 약국에 내려가서 똑같이 설명하니 그곳에 있는 약사들 모두가 내게 한마디씩 하며 친절한 설명을 보태주었다.
아, 이것이 주류의 삶이구나.
나는 이곳에서 당당히 한국인으로서 의식되고 있구나.
나를 둘러싼 모두가 한국말을 하고 있다는 것이 어찌나 감동인지. 가족도 아닌데 가족같은 느낌이었다. 온화한 느낌을 받으며 자연스레 미소가 지어지는 순간이었다.
마음이 따뜻해져서 약국을 나서는데 내 앞의 사람이 정말 자신이 지나갈 정도로만 문을 열고 뒷 사람을 위해 잡아주지 않았다. 이건 올 때마다 느끼는 어쩔 수 없는 현상이다. 마음이 바쁜 사람들이 많은 나라이니 적응해야 한다. 주의해서 문에 부딪히지 않도록 해야겠다.
내가 정말 좋아하는 밴드가 있는데, 바로 '히미츠' 라는 밴드다. 영어로는 HeMeets 라고 표기되어 있는데, 얼핏 들으면 일본 이름 같기도 한 이 밴드는 정말 내 취향의 곡을 잘 만드는 밴드라고 생각한다. 곡마다 명확한 테마가 있는데, 그 테마를 넘나들며 완전히 다른 분위기를 연출해내는 그들의 표현력과 창의력에 항상 감탄하곤 한다. 보컬의 목소리가 내 취향인 것은 말할 것도 없고, 기타와 드럼의 연주도 훌륭하다. 나는 이들의 노래를 거의 모두 섭렵했다. 그런데 마침 올해 연말, 그것도 내가 귀국한 다음 날에 홍대에서 공연을 한다는 것이다! 이건 콘서트에 가라는 신의 한 수다. 절실한 마음으로 스위스에서 티켓팅을 시도해 성공했다.
공연은 당연히 기대 이상이었다. 라이브로 내가 좋아하는 밴드의 노래 연주를 듣는 것만으로도 황홀한데, 심지어 내가 가사를 모두 알아들을 수가 있다니...! 심지어 가수가 한국어로 관객의 호응을 유도하다니...! 이런 것들 모두가 내게는 감격이었다. 내가 애정하는 가수와 같은 음악을 좋아하는 관객들에 둘러싸여 하나가 된 기분이었다. 소규모 공연이어서 더더욱 그랬던 것 같다. 공연에 다녀와서 더더욱 팬이 되었다. 스위스에 돌아가면 팬레터를 꼭 보낼 생각이다.
히미츠 밴드의 보컬은 오샘이라는 사람이 맡고 있다. 나는 그의 목소리를 정말 좋아한다. 예전에 장범준의 목소리를 좋아했었는데, 묘하게 그와 비슷한 느낌이 있다(그렇지만 노래의 스타일은 매우 다르다). 그가 무표정일 때는 딱딱한 인상이었는데, 실제로 공연장에서 봤을 때는 굉장히 밝은 모습이었던 것이 눈에 띄었다. 리더이니만큼 공연을 주도해야 하는 책임감도 있었겠지만, 기본적으로 외향적인 분 같았다.
무엇보다 기억에 남았던 것은 노래할 때 그의 표정이었다. 당연히 모든 곡이 밝지는 않기 때문에 어두운 곡을 부를 때는 감정에 이입해 우울한 표정을 지었지만, 에너지가 넘치는 곡이 나올 때의 그는 얼굴에 미소가 가득했다. 단순히 관객의 호응을 위한 표정이 아니라 정말 본인이 행복해서 짓는 표정으로 느껴졌다. 그는 실제로 대부분의 곡을 직접 작사/작곡한다고 한다. 어떻게 사람의 머릿속에서 그런 가사와 그런 멜로디가 나올 수 있을까. 예술을 하는 사람들은 내게 정말 대단한 사람처럼 느껴진다. 창작에 대한 아이디어가 가득한 사람들의 세상은 어떤 세상일까. 알고 싶어졌다.
기타를 치는 오승규 기타리스트 님의 얼굴도 기억에 남는다. 열정적으로 현을 튕기며 진정으로 음악에 심취한 듯한 표정. 자신이 사랑하는 일에 몰입했을 때의 느낌. 그들이 모여 만드는 아름다운 음악. 어떻게 그것에 매료되지 않을 수 있을까. 라이브 공연을 보고 난 뒤의 그 감동은 진하게 남았다. 이래서 사람들이 공연을 보러 다니는구나. 스위스에서는 딱히 보고 싶은 공연이 많지 않아 문화생활을 할 기회가 별로 없다. 한국에서 내가 좋아하는 가수의 공연을 편히 볼 수 있다는 것이 너무도 감사하고 행복했다.
귀국한 지 3일밖에 되지 않았는데도 벌써 많은 것들을 느끼고 있다. 남은 기간동안 또 얼마나 많은 생각을 하게 될지. 매일매일 글을 쓰고 싶은 느낌이 들게 한다. 이곳에서의 귀중한 시간을 절대 놓치지 않고 최대한 많이 기록해 두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