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독일의 문화 차이
내 생일은 12월 22일, 크리스마스 3일 전이다. 생일 당일 아침, 남자친구의 어머님께 이런 메시지가 와 있었다.
00아, 생일 진심으로 축하한다! 네가 우리 가족이 되어서 나는 정말 기쁘단다. 즐거운 생일 보내고 곧 보자꾸나!
어색한 감정을 감출 수 없었다. 내가 생각하기에 나는 그들의 가족이 아니니까.
유럽의 크리스마스는 한국의 설날과 같다. 그리고 나는 지난 크리스마스를 포함해 3년째 남자친구의 가족 댁에 방문했다. 이 이야기를 하면 친구들은 깜짝 놀란다. 결혼도 하지 않았는데 그렇게 상대방의 가족 친지를 모두 만난다는 것은 한국 정서상 굉장히 낯설다. 참고로 나는 이미 상대편의 할아버지까지 뵙고 선물도 주고받은 적이 몇 번 있다. 파트너가 한국인이었다면 당연히 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겠지만, 독일인이었기에 문화가 다르다 보니 나를 크리스마스에 너무도 자연스럽게 데려간 것이다.
게다가 우리는 함께 살고 있다. 한국도 변하고는 있지만 아직은 결혼하기 전에 같이 사는 경우가 흔하지는 않은 것 같다. 처음 남자친구와 함께 산다는 소식을 알렸을 때 우리 아빠는 큰 충격을 받았다. 해외에 살고 있으니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이지만 한국이었으면 가만있지 않았을 거라고 강력히 의사 표현을 하셨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고 생각해 그 해 11월에 남자친구를 소개하려 직접 한국에 방문했다. 다행히 아빠는 그를 직접 만나고 난 후로부터는 많이 안심을 하신 것 같다. 그리고 그때부터 시작되었던 것 같다. 결혼에 대한 압박이 말이다.
지난 5월, 그가 한국에 두 번째 방문했을 때 아빠는 작년 환갑잔치를 빌미로 삼아 우리를 친척들이 모이는 자리에서 소개하는 자리를 만들었다. 분명 아빠 생신을 위해 모인 자리였는데 졸지에 우리의 약혼식이라도 되는 것처럼 진행이 되었다. 숙모 한 분께서 내게 다가와 "축하해~ 너무 잘됐다~" 라고 하시는데 도대체 무엇을 축하한다는 것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결혼이 언제냐고 물어보시는 그분께 아직 아무것도 예정된 게 없다는 말과 함께 어색한 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번 12월 방문에서 아빠는 내게 본격적으로 결혼 이야기를 꺼냈다. "걔는 너한테 결혼하자고 안 해?" "너네 같이 산 지도 1년이 넘었는데 계속 그렇게 지낼 순 없지 않냐" 등등 나에게 다분히 압박성의 질문을 쏟아냈다. 솔직히 짜증이 났다. 내 인생인데 왜 다른 사람에 의해 결정되어야 하지. 아무리 부모라고 해도 말이다. 결혼처럼 중대한 사안을 두고 부추김을 당하는 것 자체가 싫었다.
결국 아빠는 올해 6월 스위스에 방문하기로 결심하고 항공권 구매까지 완료했다. 목적은 관광을 빙자한 남자친구 부모님(특히 아버님, 가부장적인 아빠의 특성상)을 뵙는 것. 비행기 타는 것을 극히 싫어하는 사람이 굳이굳이 이 멀리까지 날아오는 이유는 바로 그것이었다. 직접 얼굴을 보고 상대 측 부모와 함께 결혼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것이다. 그쪽 부모님과의 문화적 충돌이 눈에 선연했다. 이 문제에 대해서 남자친구와 상의를 꼭 해야겠다고 다짐하며 스위스에 귀국했다.
스위스에 돌아온 주 주말, 그와 함께 외식을 하며 내가 한국에서 있었던 일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남자친구도 아빠가 올해 스위스에 방문할 것이라는 건 알고 있었기에 물었다.
"넌 우리 아빠가 이번에 왜 너희 부모님을 뵙고 싶어하는 거 같아?"
"음... 서로에 대해 알아가기 위해서? 친해지기 위해서?"
"...... 사실 아빠는 큰 계획을 갖고 있어"
이번 한국 방문 때 내가 아빠로부터 얼마나 결혼에 대한 압박을 많이 받았는지에 대해 이야기했다. 한국의 결혼 문화가 얼마나 독일과 다른지에 대해서도. 아빠의 입장만 생각하면 이미 우리가 결혼하지 않았으면서 지금까지 같이 살고 있는 것도 많이 눈감아준 것이라고도 설명했다. 거기에 덧붙여, 매년 크리스마스에 내가 그의 가족을 방문하는 것 또한 내 입장에서 가볍지만은 않은 행사라는 말도 했다. 한국은 결혼하기 전에 그렇게 상대방의 가족을 의무적으로 만날 필요는 없다는 설명과 함께.
그의 얼굴에서 혼란스러움과 약간의 실망스러움이 보였다. 그로써는 우리는 함께 살고 있고, 진지한 파트너 관계로 있으니까 결혼의 여부와는 상관없이 상대방의 부모님을 만나는 일이 부담스럽더라도 받아들여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나는 바로 그 부분이 문화적 차이라는 것을 짚었다. 내가 자란 문화에서는 그것이 당연하지 않은 것이고 그가 자란 문화에서는 다른 것이다.
잠시 고민하던 그는 그럼 결혼하자는 거냐는 질문을 던졌다. 그렇다고 하고 싶지 않았다. 사실이 아니니까. 결혼하지 않고 나에게 크리스마스에 가족 방문의 의무를 주지 않을 수도 있는 거니까. 물론 그것과 별개로 우리 아빠는 어떻게든 우리를 맺어주려고 갖은 노력을 하겠지만. 그는 생각이 많아 보였다. 갑자기 결혼이 주제가 되니 굉장히 무겁게 다가온 것 같았다.
이 이야기를 한 지 일주일이 지난 시점에, 그는 내게 잠깐 얘기할 수 있냐고 물었다. 그리고 내게 두 가지 질문을 던졌다.
첫째, 결혼이 나에게 있어서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둘째, 내가 주변으로부터의 압박이나 분위기 때문에 결혼하고 싶은 것은 아닌지.
첫 번째 질문에는 상대적으로 쉽게 대답할 수 있었지만, 두 번째 질문에서는 솔직히 대답이 쉽지 않았다. 하나 둘씩 결혼하는 친구들과 부모님의 결혼에 대한 관심, 아예 그들의 영향이 없었다고 하면 거짓말이니까. 그러나 그것이 결혼의 이유가 되면 안 된다는 것 또한 잘 알고 있다. 그렇다면 나의 마음은 어떤가.
사실 난 결혼해 본 적이 없으니 결혼 후 무엇이 얼마나 달라질지 예측할 수 없다. 어떤 마음으로 결혼을 결심해야 하는지도 잘 모른다. 우린 이미 같이 살고 있으니 당장 결혼한다고 해서 많은 부분이 달라질 것 같지는 않았다. 그렇다면 결혼을 할 이유는 무엇이고, 안 할 이유는 또 무엇일까. 다른 사람들은 어떤 마음으로 결혼을 하는 걸까.
결국 나는 "해보지 않은 일은 직접 해보기 전에는 모르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라는 애매한 답변을 했다. 그는 나보다 결혼에 대해 훨씬 더 무겁게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았다. 몇 가지 미래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가 우리는 잠이 들었다. 결혼 문제는 너무 어렵다. 사실 결혼식이 하고 싶은 건지, 결혼이 하고 싶은 건지도 가끔 헷갈린다. 쉽게 답변을 내놓기 어려운 문제라고 생각한다. 소설을 좀 읽다 보면 인사이트가 생기려나. 결혼 유경험자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좋을 것 같다.
결혼, 어떤 마음가짐으로 결심하셨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