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정권 지르기
2023년 4월 4일
오늘은 아침에 일찍 일어났다. 어제를 즐겁게 보내서일까? 평소에는 10시가 넘어야 느릿느릿 깨어나던 정신이 아침 7시에 번쩍 깨어났다. 일찍 일어났다고 뭔가 새로운 것을 한 건 또 아니다. 식사를 하고, 빨래를 하고-그런데 밤에 비가 내렸다. 제기랄- 설거지를 한 뒤 노트북을 들고 카페에 가서 인터넷 강의를 들었다. 이제는 일주일도 채 남지 않은 인터넷 강의 수강 기간이 일종의 도전정신을 불러일으킨 탓이다. 완강을 하면 강의 동영상을 소장할 수 있다고 한다. 평생 다시는 보지 않을 것 같지만 100% 수강이란 조건이 달렸다는 점에서 나의 마음을 불타오르게 했다.
그렇게 SQL 강의를 몰아서 듣는 중 책상 위 휴대폰이 진동했다. 평소에 근무태만인 내 휴대폰이 최근엔 과로를 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며 확인한 메시지는 <밀리의 서재>에서 온 것이었다.
아, 3월 중 신청한 <밀리 에디터 클럽>에 떨어졌구나. 지원자가 3,000명이나 되었다니 경쟁률이 높았다는 생각이 들면서 동시에 쪼금 아쉬움이 들었다. 요즘 밀리의 서재와 나 사이에 살짝 권태기가 있긴 했지만 에디터 클럽에 선정되면 정말 많이 읽을 생각이었기 -어차피 떨어졌으니 이런 공수표도 마음대로 날려도 된다- 때문이다.
선정되지 못한 거? 오히려 좋아!
곧이어 오늘 하루 대학생처럼 카페에 앉아 공부만 하느라 일기에 쓸 일이 없었는데 좋은 에피소드를 얻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의 주제는 '준비 중'이란 마음가짐이 주는 안온함에서 벗어나기이다. 잠시 끼워넣기를 하자면, <밀리 에디터 클럽>에 지원해 본 것도 이 벗어나기 활동의 일환이다.
'oo지망생인 내 모습에 취한다'는 말이 있다. oo엔 자신이 '진짜로' 원하는 아무것이나 넣으면 된다. oo지망생에 취한 사람과 진짜 oo지망생 사이에는 명백한 차이가 있다. oo지망생은 oo이 되기 위해 작업(준비)한다. 하지만 oo지망생에 취한 사람은 작업(준비) 하지 않다. 이들은 시간 대부분을 oo으로서의 자신을 상상하며 보낸다.
이제부터 하는 이야기는 내가 나 스스로와 주변을 돌아보며 한 주관적인 생각일 뿐 객관적인 데이터에 근거한 '사실'이 아님을 미리 말해둔다. 한 사람의 의견일 뿐, 이것은 진실이 아니다. 이 점을 못 박고 다시 oo지망생에 취한 사람들, 다시 말하자면 가짜 지망생에 대한 이야기로 돌아가자.
내가 발견한 흥미로운 지점은 이 가짜 지망생이 다른 일반적인 지망생에 비해 초기엔 더 우수한 결과물을 낸다는 점이다. 그리고 내가 아는 가짜 지망생들은 일반 지망생보다 지망하는 분야에 대한 많은 데이터를 가졌으며, 겉으로 보기에는 더 열정적이었다. 무엇보다 이들은 훨씬 진지했다.
이들은 oo이라는 분야에 대한 높은 이상을 가지고 있고, 어쩔 때는 그 분야를 신성시하는 것 같다. 수많은 데이터를 접하며 눈이 높아진 탓에 자신의 미숙한 작업물을 견디지 못한다. 그래서 시작을 할 때에는 오히려 더 높은 실력을 가지고 있더라도, 가짜 지망생들은 일반 지망생에 금세 추월당한다. 미숙한 실력으로 완성해 내는 걸 반복해야 실력이 느는 법인데, 이들은 자신의 미숙함을 외면하기 위해 작업 자체와 점점 멀어지기 때문이다.
여러분이 알아차렸을지 모르지만,
내가 분석한 가짜 지망생의 모델은 바로 나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작가가. 소설가가 1 지망이었지만 시간이 지나면 그건 영화 시나리오 작가가 되기도 했고 웹소설 작가나 드라마 작가가 되기도 했다. 어쨌거나 나는 글을 쓰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글로 먹고사는 사람 말이다. 오랜 시간 꿈꿔온 탓에 내가 진짜로 작가가 되고 싶은 건지 아니면 작가란 꿈을 좇는 나 자신에 취한 건지 모를 지경이 된 상태로 오랜 시간을 보냈다.
고등학생 때부터 전공이 있는 학교에 들어가 꿈을 이루기에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는 환경이었는데, 어느새 정신을 차려보니 관련해서는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 채 어른이 되어버렸다. 나는, 그리고 내 경험담을 읽고 약간의 찔림을 느꼈을지 모르는 당신은 왜 가짜 지망생이 되어버린 걸까?
고등학교 동기 중 한 명이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나는 영화과는 절대 안 갈 거야."
"왜?"
"난 영화감독이 되고 싶으니까"
요지는 이랬다. 그 친구가 알고 있는 잘 나가는 영화감독들은 대부분 영화과를 졸업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영화과에 입학하면 훌륭한 제작자, 또는 다른 기술감독이 될 수는 있어도 영화감독이 되고 싶다면 확률적으로 다른 과를 가는 것이 낫다(?)는 게 어린 그 친구의 의견이었다. 그렇게 말해놓고 영화과에 입학을 해버린 앞뒤 다른 녀석이었지만 당시엔 이해할 수 없던 친구의 말이 지금은 약간은 이해된다.
그 친구는 한 가지에 매몰되는 것의 부작용을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 같다. 누군가는 간절히 바라서 그 꿈을 이루지만, 누군가는 바라는 마음이 너무 강해 감당하지 못할 이상향을 만들어버린다. 그리고 후자에게 꿈은 부담이 되고 족쇄가 된다. 그것을 바랐던 시간이 너무 길어 다른 걸 바라는 것은 상상도 되지 않지만, 가야 할 목표는 너무나 크고 두렵게 느껴져 제자리걸음만 하게 되는 것이다.
우리 주변에도 다른 것을 하다 '우연히', '재미'로 어떤 분야를 시작했다가 그 분야를 업으로 삼는 사람들이 있다. 어렸을 때부터 준비했던 사람들이 일말의 부조리함을 느낄 수도 있겠지만 생각을 전환해 보면 다른 분야에 침입한 이방인들만이 가지는 '가벼움', '흥미', '되면 좋고 안 되면 재밌었다는 식의 도전적임'이 이들을 성공으로 이끌었을 수도 있다.
그러니까 부담을 버리자
(잘 되진 않겠지만...)
내가 바라지 않는 분야의 성취가 우연히 얻어걸리면 우리는 온전한 기쁨만을 느낀다. 그리고 성취하지 않더라도 별다른 타격이 없다. 미숙함이 당연한 학생 때는 거지 같은 무언가라도 만들어내면 뿌듯했다. 그러니 학생으로 돌아가자. 잘 되면 개꿀이고 안 되면 재밌는 도전이었던 그 시기로. 그럴듯한 뭔가를 만들어내겠다고 시간만 버리지 말고 무엇이라도 만들어 아무 데나 난사(?)해 버리자. 공모전이 되었든 뭐가 되었든 좋다. 되면 개꿀이고 안 되면 다른 도전을 하면 되니까! 난 가볍게 생각하는 편이 아니다. 그렇게 되고 싶지만 솔직이 생각이 엄청 무겁다. 하지만 내가 가지고 있는 본연의 무거움이 조금이나마 가벼워지길 바라며 오늘도 자기 세뇌를 한다. 되면 개꿀, 안 되면 딴 거 또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