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나와 마찬가지로 최근에 퇴사한 친구-그리고 퇴사를 준비하고 있는 친구-들과 이력서 쓰기로 했다. 일정은 점심식사, 벚꽃 구경, 그리고 카페에서 이력서 쓰기. 평일을 마음대로 쓸 수 있는 퇴사자의 특권을 이용해서, 주말에는 꿈도 꾸지 못할 맛집에서 점심식사를 하기로 했다. 그런데...
지금... 평일 맞나요?
친구들과 도착한 <화목 순대국> 앞에는 긴 줄이 있었다. 여기 여의도 인근인데? 그리고 일부러 점심시간도 살짝 넘겨서 왔는데 어째서?
"어떡하지? 줄 설까?"
"일부러 여기까지 왔는데... 맛은 봐야지."
우리는 1시 30분부터 줄을 섰고, 정확히 한 시간 십분 뒤에 식당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오늘 방문한 맛집은 <화목 순대국>으로 방송에도 몇 번 나온 유명한 맛집이라고 한다. 순대국 안에 곱창이 들어간 특이한 국밥이라고 하는데 오늘 모인 모두가 곱창 마니아기에 큰 기대를 안고 자리에 앉았다.
<화목 순대국>의 순대국. 정말 맛있었다
순대국은 정말 맛있었다. 찐한 곱창전골에 밥을 말아먹는 것 같은 느낌인데, 감칠맛 나는 육수가 일품이었다. 한 끼만 먹어도 하루 권장 칼로리는 모두 채울 것 같은 비주얼이지만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다. 우리 모두 연신 '맛있다'를 외치며 한 그릇을 훌쩍 비웠다.
국내에서 줄 서서 먹는 맛집에 방문한 게 얼마만인지. 지금보다 나이가 적을 때는 '맛있는 것'을 먹겠단 일념으로 홍대, 이태원 가리지 않고 맛집을 찾아다닌 적도 있었는데. 막상 그때를 떠올려보니 전생의 기억인 것처럼 희미하기 짝이 없다.
언제부터였을까? 나에게 음식이란 가성비를 따지는 분야가 되어 있었다. 대학 수료 후 일 안 하는 베짱이처럼 딩가딩가 놀며 시간을 보낼 때. 부모님이 보기엔 여유만만 베짱이였겠지만 나에게도 많은 변화가 있었다. 어느 순간 나는 식사에 들이는 비용을 계산하며 '왜 사람은 하루에 세 끼나 먹어야 할까?'하고 한숨을 쉬고 있었다.
한 푼도 벌지 않으면서 계속 돈을 쓰고 있다는 감각은 허리띠를 졸라매게 했고. 가장 만만한 것이 바로 외식에 드는 식비였다. 기왕이면 맛있고, 영양도 밸런스가 잡히면 좋겠지만 비슷한 음식이라면 저렴한 것, 빨리 먹을 수 있는 것이 더 중요한 기준이 되어버렸다. 그렇게 나에게 '맛'만으로 음식을 고르고, '맛있는 음식'을 먹기 위해 시간을 소비하는 일은 일부러 떠난 여행에서나 할 법한 일로 분류되었다. 그리고 그때 생긴 감각은 내가 회사에 입사하고, 퇴사하고, 다시 다른 곳에 입사해서 또다시 퇴사한 지금까지 이어진 것이다.
한 시간 십 분을 줄을 서며 보내는 것. 검증되지 않은 음식을 기다리며 길거리에 서 있는 일은 누구에게는 낭비로 느껴질 것이다. 같은 사람이라도 환경에 따라서 어떨 때는 낭비로, 어떨 때는 기대되는 기다림으로 감상이 달라질지 모른다. 하지만 확실한 게 있다. 나에게 시간을 들여야만 먹을 수 있는 맛있는 음식이란 여유의 다른 말이었다. 여유가 없었다면 나는 이 한 시간 십 분을 온통 투덜대며 보냈을 것이다.
"한 시간이나 기다려서 여기서 밥을 먹어야 해? 시간 아까운데 딴 데 가자."
내가 했을 말이 눈에 선하다. 하지만 나는 오늘 기다림을 선택했고, 예상외로 그건 나쁘지 않았다. 로또를 산 후 두근두근해하며 추첨 결과를 확인하는 것처럼. 기다림 끝에 나온 음식을 한 입 맛보고 친구들과 성공의 기쁨을 나눴다.
왜 곱창은 호불호가 갈리는 음식인지에 대해 남들이 보기엔 헛웃음을 흘릴 논의를 하며 우리는 식사 후 벚꽃길을 걸었다. 그리고 카페에 가서 이력서를 썼다. 카페에서 나오니 여의도 인근의 회사원들이 바쁘게 걸어가며 퇴근을 하고 있었다. 그건 별 다를 것 없는 내가 아는 서울의 한 장면이었다. 그리고 그 속에서 나는 마치 낯선 곳을 즐기러 온 여행객이 된 기분을 느꼈다.
오늘 하루는 특별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평소에는 절대 하지 않고, 여행지에서 했던 행동을 하나 한 것 만으로 나는 질리도록 익숙한 서울 속에서 여행자의 여유를 맛봤다. 하하, 이게 웬 행운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