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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지영 Nov 28. 2024

'가습기살균제 그후' 기획 기사 후기


나는 가습기 살균제를 사용한 적이 있다. 가습기 살균제 참사 피해 구제가 늦게나마 시작되고 특별법이 통과되던 무렵, 엄마는 내게 과거에 가습기 살균제를 구매했고, 한두 번 사용해본 적이 있다고 말했다. 나는 기억조차 나지 않는 어린시절이다. 


엄마는 "조금만 더 부지런했다면" 우리집도 가습기를 계속 썼을 것이고, 가습기 살균제 역시 계속 썼을 거라고 했다. 엄마는 살균제를 한두 번 쓰다가 가습기 자체가 귀찮아져서 쓰지 않았다고 그랬다. 가습기 살균제 참사의 비극은 나는 정확히 이 부분에 있다고 생각한다. 건강에 신경을 쓰는, 그러니 주로 어린아이가 있는 집에서, '더 잘해보려고' 하다가 돌이킬 수 없는 피해를 입은 것이. 더 애를 쓴 이들이 더 돌이킬 수 없는 피해를 입은 것이. 


피해는 돌이킬 수 없지만 그 뒤에 사회가 어떤 선택을 할지는 선택할 수 있다고 믿는다. 정부나 가해 기업의 합당한 처벌, 피해 배상 외에도 중요한 것이 있다면 다시는 이런 참사가 발생하지 않도록 안전하고 믿을 수 있는 제품을 만드는 것이다. 이는 가습기 살균제(지금은 판매 금지된) 같은 생활화학제품을 만드는 제조사, 관리하는 정부, 그리고 이들을 감시하고 직접 생활화학제품을 사용하는 소비자를 대변하는 시민단체가 모두 필요하다. 


처음 '생활화학제품 안전약속 이행협의체'에 대해 들었을 때, (이름이 너무 길고 입에 잘 붙지 않아 잠시의 곤란을 겪은 것을 제외하고는) 정부-기업-시민단체가 무려 '7년 동안'이나 '자발적' 협약이라는 이름 아래 '다함께' 생활화학제품의 안전 기준을 만들어왔다는 것이 놀랍고 신선했다. 


이들이 7년 간 만든 안전 기준은 생활화학제품의 전성분을 공개하는 것, 그리고 생활화학제품에 들어가는 원료의 안전성을 평가하는 것, 자율적으로 그 안전성 평가 결과를 공개하는 것 정도다. 그 무엇 하나 쉬운 과정이 없었다고 한다. 


올 가을에는 다음주(12월 2일) 7년 만에 출범하는 이 '생활화학제품 안전약속 이행협의체'에 참여할 세 주체를 만나서 그간의 일을 기록하는 기사를 썼다. 


이 글을 읽는 이들이 아마도 제기할 의문, 뭘 7년씩이나 걸려, 그냥 입법으로 빨리 해결하면 될 일 아닌가, 라고 나 또한 생각하지 않았던 것이 아니다. 이 물음에 노동환경건강연구소 김신범 부소장은 "그렇게 해서는 좋은 세상이 만들어지지 않는다"라고 했다. 그의 답변을 공유하는 것으로 갈음한다. 


"입법을 하려면 업계 전체가 따라올 수준을 고려해야 하는데, 전성분 공개와 불순물 파악까지 할 수 있는 기업이 많지 않았다. 나는 지금도 '생활화학제품 전성분 공개를 법제화할 때가 되지 않았냐'라고 물으면 '아니'라고 한다. 작은 기업들을 고려하면 결국 전성분이 아닌 주요 성분을 공개하는 식으로 갈 수밖에 없는데, 그건 후퇴다.


정말 중요한 건 기업이 소비자를 보호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런데 왜 이런 마음이 만들어지지 않을까. 그건 기업도 '할 수 없다'고 생각해서다. 7년간의 자발적 협약을 통해 전성분을 공개하고 원료 안전성 평가를 하면서 공공의 안전 관리 도구를 만들어내 기업도 받아들일 수 있는 기준을 만들려 했다. 나는 법보다는 집단적인 공감의 형성이 갖는 힘을 믿는다. 물론 그중에는 진심이 아니고 흉내 정도만 내야겠다는 기업도 있을 거다. 그러면 어떤가. 흉내를 내서라도 하면 되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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