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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기현 Nov 24. 2023

상담가는 가운을 입지 않는다.

심리상담가의 사색9(작성: 2023.3.26.)


본 글은 심리상담가로서 상담하고 생활하며 느낀 바를 나누는 글이며, 1인칭 시점의 독백체의 글로 이루어집니다.

아울러 본 글에서 언급된 사람의 이름, 직업, 나이, 지역 등 배경정보는 각색되어 창작되었으며, 실제 인물이나 기관과 관련이 없음을 알려드립니다.

© wocintechchat, 출처 Unsplash


지인이 상담가는 왜 의사가 입는 가운을 입지 않느냐고 물은 적이 있다. 가운을 입어야 좀 더 전문적으로 보이고, 신뢰를 줄 수 있는 거 아니냐며 말이다. 상담가들도 전문가인데 전문성을 보였으면 좋겠다는 이야기였다.

그 이야기를 들으며 한 번 생각해봤다. 도대체 나는 무슨 이유로 가운을 입지 않고 심리 상담을 하는지 말이다. 나는 상담이라는 것이 무엇이라고 생각하기에, 전문성이 더 드러날 수 있는 가운을 입지 않고 계속 벗어던지려고 하는 것일까.


잠깐 프랜차이즈 상담센터에서 경험 차, 일을 해 본 적이 있었는데, 거기서는 프로필 사진을 찍을 때 가운을 입고 찍었다. 또한, 상담을 할 때도 가운을 입고한다고 해서 나도 가운을 입으며 상담을 했다. 하지만 센터에서 상담하기 위해 가운을 입을 때마다, 뭔가 모를 어색함과 이질감이 느껴졌다.

가운을 입는 게 도대체 뭐였던 걸까?

돌아보면, 우리 사회에서 가운을 입는 사람들은 대개 전문직에 있는 사람이다. 법조인 중 판사나 검사는 법복을 입는다(변호사는 예전에 입었지만 지금은 입지 않는다). 그리고 의사나 약사는 익히 알려져 있는 하얀색의 가운을 입는다.

분명 가운이 주는 뭔가가 있었다. 옷 하나 다르게 입었을 뿐인데 말이다. 실제로 사람들이 가운을 입은 사람들을 대우하는 행동 양식이 달라지고 가운을 입은 사람들도 태도가 변하는 건, 옷을 한번 입어보면 쉽게 알 수 있다. 사회에서 직장생활을 성실하게 하는 남성이더라도, 예비군 훈련받으러 군복 입고 훈련장 가면 사람이 확 달라지는 것처럼 말이다.

내가 입었던 하얀색의 가운은 의사가 입는 가운이었고, 그것은 적어도 의료 장면이나 치료 장면에서는 그들이 앞에 있는 환자나 내담자보다 전문가라는 인정과 함께 권력과 힘을 부여했다. 

나는 그 권력과 힘을 가운을 통해 부여받는 것이 부담스러웠다. 첫 번째는 전문가로서 나의 개입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이었고, 두 번째는 심리 상담은 권력과 힘을 상담자가 가지는 것을 최소화해야 한다는 나의 관점 때문이었다.


프랜차이즈 센터에서 상담을 할 때, 하얀색 가운을 입은 나는 적어도 상담 장면에서만큼은 전문가여야 했다. 그곳에서 나는 10대 청소년과 그의 보호자인 부모를 많이 만났다. 그리고 그들을 만날 때마다, 그들은 나를 선생님이라고 부르며 깍듯하게 대하려고 했다. 동시에 나 또한 그들에게 매우 전문적인 지식이나 정보, 혹은 치료적인 개입을 더 잘 제공해야만 할 것 같은 느낌이 들었고, 말 한마디 한마디를 잘 해야할 것 같은 느낌들이 느껴졌다. 그것은 나에게 꽤 부담스러운 부분이었다. 그 이유는 아마 내가 타인의 삶의 선택과 행동에 책임지고 싶지 않고, 해결이 잘되지 않았을 때 내가 책임을 져야 한다는 생각으로 인한 나의 두려움이 표현된 것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가운을 입기를 싫어했던 것은 단지 두려움만은 결코 아니다. 상담가로서 내가 지향해오는 심리 상담의 방향이 그것과는 상당히 결이 달랐기 때문이다.

내가 보는 심리 상담은 상담자인 내가 내담자의 변화를 일으킨다기보다, 변화는 내담자가 자신의 내면에서 스스로 만들어내는 것이다. 그 변화를 위해 내가 노력하고 애쓰긴 하지만 결국 그것을 받아들일지 말지, 변화를 시작할지 말지는 오롯이 내담자가 선택한다.

아울러 나는 타인을 바꿀 수 없다고 생각한다. 영향을 줄 수 있을지라도, 결과적으로 바뀌기를 결정하는 것은 당사자다. 내담자는 자신의 삶에 대한 선택의 자유를 가질 권리가 당연히 있고, 동시에 그에 따른 책임을 지는 존재이어야 한다.

그렇다면 상담 장면에서 내가 전문가가 되어 수직적인 권력 관계를 만드는 것은 피해야 한다. 보다 수평적이고 평등한 관계여야 한다. 그래서 나는 내담자에게 첫 회기 상담 안내를 할 때, 분명하게 우리 두 사람은 전문가이며 전문가 두 명이 함께 참여하는 시간이라고 안내한다.

즉, 심리 상담이 상담자가 전문적인 권력과 힘을 갖고서 내담자를 이리저리 휘두르는 게 아니라, 평소와는 다른 특별하고 남다른 순간을 상담자와 내담자가 함께 경험함으로써 내담자 스스로 자신의 삶에서 더욱 나은 선택과 행동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내가 이렇게 심리 상담을 생각하더라도 나를 찾아오는 내담자는 분명히 나를 더 위에 있다고 생각한다. 자신이 어려운 상황을 갖고 누군가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관계 자체가 그와 같은 권력 구도나 상하 관계를 만들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이 사실이라고 하더라도, 내가 정말로 심리 상담에서 상담가로서 어떻게 나를 위치시키고 상담에서 내담자를 어떻게 대하는 가는 매우 중요하다. 왜냐하면, 분명하게 상담 시간에서만큼은 변화를 불러 일으키며, 이것을 내담자가 온전히 느낄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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