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상담가의 사색10(작성: 2023.4.9.)
본 글은 심리상담가로서 상담하고 생활하며 느낀 바를 나누는 글이며, 1인칭 시점의 독백체의 글로 이루어집니다.
아울러 본 글에서 언급된 사람의 이름, 직업, 나이, 지역 등 배경정보는 각색되어 창작되었으며, 실제 인물이나 기관과 관련이 없음을 알려드립니다.
B는 나와 심리상담을 시작한 지 어느 덧 6개월이 넘어가고 있었다. 우리는 상담에서 중요 인물과의 관계를 다루기도 하고,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와 같은 사건들을 이야기하기도 하면서 긴 시간동안 만났다.
6개월을 만났으니, 적어도 20번 정도는 만났다고 볼 수 있으리라. 여전히 B에게 자신에 대한 비난이나 수치심 같은 것은 남아있다. 그렇지만 그는 분명 조금씩 조금씩 자신에 대해 솔직해지고 있었고 조금은 자신을 돌보는 것에 대한 중요성을 느끼기 시작했다. 그것은 우리에게 큰 성과였다. 그런 B가 갑자기 심리상담에서 담담하게 "심리상담받길 잘 했어요."라는 말을 내놓았다.
"심리상담받길 잘 했어요."
이 말은 바로 나를 사로잡았다. 좀 더 분명히 말하자면 나는 사로잡히고 싶었다. 분명 심리상담은 B를 위한 시간임에 틀림이 없고, 그래야만 한다. 때문에 항상 나의 마음은 그를 향하고 있어야 했다. 하지만 B의 말은 순간적으로 나의 가슴에 꽂히는 느낌이 들었고, 나는 그 느낌을 온전히 더 느끼고 싶었다. 심리상담가로서가 아니라, 한 인간으로서 나를 위한 순간으로 말이다.
그의 담담한 고백을 나는 어떻게 받아들였던 걸까?
내 삶에서 심리상담 분야를 결정하는 것은 간단했지만, 이를 배워나가고 실천해나가는 과정은 간단치 않았다. 대학원 입학은 수월했지만, 입학 후의 과정은 수월하지 않았다.
대학원을 가서 동기, 선후배들을 보면서 그들은 참으로 타고난 상담사처럼 보였다. 타인을 배려하는 태도나 행동이 겉으로 자연스럽게 드러나고 있었으니 말이다. 그리고 친절함이 묻어나오면서 동시에 따뜻했다. 본투비 (born to be, ~하기 위해 태어난다) 상담자 같은 느낌이었달까.
반면 나는 대학원에서 심리상담을 배우면서 뭔가 내가 심리상담을 잘 할 수 있겠다는 느낌이 많이 들지 않았다. 그들은 기본적으로 따뜻하고 친절해서 사람들에게 공감을 잘 해주는 것 같았는데, 나는 공감을 잘 못 하는 것처럼 생각했기 때문이다. 나는 논리적으로 이해되지 않으면 수긍하기도 어려웠다. 하지만 사람의 마음은 논리적이지 않은 면이 너무 많았고, 모호했으며, 순간순간 변화했다. 논리를 가져다 대는 나에게는 그들이 공감되기보다 납득하기 어려운 것으로 보였다.
이 같은 고민을 주변 동료들과 나눠보기도 하고, 심리상담으로 분석을 받아 보기도 했다. 또한 나보다 더 전문가로서 활동하는 상담가에게 수퍼비전을 받아보기도 하면서, 나는 부단히 심리상담 분야에서 잘 하는 사람이 되고자 했다.
이런 마음을 갖고 지내는 나에게, B의 한 마디는 분명 큰 짜릿함과 만족감을 선물해주었다. 그의 말이 나를 위해서 한 말은 분명 아니었다. 심리상담을 통해 자신을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고, 자신이 조금씩 변화하는 걸 느꼈기 때문에 한 말이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 말은 나에게도 많은 의미가 담긴 말이었다.
심리상담을 시작한지 10년이 넘어가고 있다. 그 동안 많은 내담자와 함께 하였지만, 매 번 상담 과정이 성공적으로 끝나지는 않는다. 어느 순간 드랍이 되어 오지 않는 내담자, 첫 시간에 기대와 다르게 진행되면서 한 번의 만남으로 끝나는 내담자, 다른 이유로 상담이 진행되지 못 하는 내담자 등 다양한 이유로 아쉽게 끝나는 상담도 있다.
그럴 때면 나도 한 인간으로서 아쉬움과 속상함이 들고 좌절감도 느낀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이것을 해 오고 계속 하고 싶은 건 분명 내가 심리상담 과정에서 느끼는 나만의 만족과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을 타인을 통해 확인하는 순간이면, 진실로 나는 그럭저럭 잘 살고 있다고 느껴진다.
그래서 앞으로도 더 많이 듣고 싶다, 이 말을.
"심리상담받길 잘 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