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이후, 첫 검진
여행을 마치고, 집 근처 출산 산부인과에 검진을 갔다.
병원에 가기 전까지 태명은 없었다.
여행에서도 아기 물건은 하나도 사오질 않았다.
(아기 핑계로 스노우볼을 사온게 전부)
이집트 여행이 너무 힘들어서 아기가 건강할 거라는 확신이 없었다.
괜히 기대했다가 실망하고 싶지 않았다.
게다가 임신 8주 중반부터 입덧이 갑자기 줄었다.
증상이 줄어드니 아기가 있는 건지 없는 건지
도통 알 수가 없었다.
검진 전날 밤
남편과 이런 얘기를 나눴다.
'이번 검진에서 아기가 건강하다고 하면,
얘는 태어날 운명이니까 태명을 운명이라고 하자.'
말은 그렇게 했지만,
나는 마음을 끝까지 열지 못하고 반틈만 열어둔 상태였다.
산부인과의 대기실.
시간이 유난히 느리게 흘렀다.
긴 대기끝에 이름이 불리고 초음파 화면이 켜졌다.
아기가 꿈질꿈질 움직이고 있었다.
생각보다 또렷했고, 생각보다 사람같았다.
개념으로만 존재하던 아기가 눈 앞에서 움직이는데
이상하게 말이 나오지 않았다.
그제야 임산부라는 말을 조심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었다.
그 날 이후로 일상이 조금씩 바뀌었다.
수능보다 열심히 공부해서 태아보험을 들고
진짜 임산부만이 할 것 같았던 산후조리원 예약을 알아보고
초음파 앨범을 만들었다.
불과 몇 주 전까지만 해도
다음엔 동유럽을 가야겠다며 비행기 마일리지를 모으던 사람이
이제는 임산부의 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그 변화가 낯설면서도 그 어느때보다 현실로 와 닿았다.
그래도 아직은 입덧말고는 임신을 실감할 일이 많지 않았다.
그래서 어느 날은 약간의 감기를 핑계로
산부인과에 가서 초음파를 봐 달라고 조르기도 했다.
보고나면 안심이 돼면서 애정이 샘솟곤 했다.
아마 그게 엄마가 되어가는 과정일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