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에서야 할 수 있는 대답
낳기 전으로 되돌아간다면 다시 낳을 거냐는 질문을 받을 때마다,
나는 늘 잠깐 멈췄다.
낳지 않겠다고 말할 수는 없었지만,
그렇다고 망설임 없이 낳겠다고 말할 자신도 없었다.
잘 모르겠다고 대답하는 게 그때의 나로서는 가장 솔직한 말이었다.
그 질문은 늘 지금의 상태를 기준으로 던져졌고,
나는 아직 그 질문 앞에서 아직 결론을 내리지 못한 채 머물러 있었다.
오늘 친구의 결혼식이 있었다.
식이 끝나기 전, 부모님께 인사를 드릴 때
스크린에는 신랑신부의 어린 시절 사진들이 차례로 흘러나왔고
마지막에는 지금의 두 사람, 웨딩사진이 화면을 채우며 영상이 끝났다.
내 친구의 결혼식이었는데도 이상하게 시선은 신부보다
신부의 엄마에게 자꾸 머물렀다.
한 아이를 저만큼 키워내어 결혼식장에까지 데려다 놓고,
이제는 한 발 물러나 조용히 바라보고 있을 마음이 어떤 것인지 자꾸 생각하게 됐다.
결혼식장에서 처음으로 눈물이 고였다.
신부가 예뻐서라기보다는, 그 뒤에 있었을 엄마의 시간이 한꺼번에 떠올랐기 때문이다.
아이를 낳았던 하루보다, 아이를 키워온 날들이 훨씬 더 길었을 텐데
오늘은 그 시간들이 한 장면에 포개져 보였다.
그 순간만큼은 친구의 결혼식이 아니라,
딸을 키운 한 사람이 맞이한 날을 보고 있는 것 같았다.
하루 종일 친구와 시간을 보내고 저녁이 되어 집에 돌아갔다.
반나절 정도 떨어져 있었을 뿐인데도 아기를 다시 보니 유난히 반가웠다.
아기는 아빠와 목욕을 하고 있었고,
내가 들어온 걸 알아채자 눈을 마주치며 웃어줬다.
그 짧은 순간이 이상할 정도로 마음에 오래 남았다.
그날 밤, 아기를 재우고 한참을 자는 얼굴을 바라봤다.
낮 동안의 웃음과는 다른, 깊이 잠든 얼굴을 보고 있으니 문득
아기의 시간도 생각보다 빨리 흘러가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작고 내가 세상의 전부인 시기는 오래 머물지 않을 것이고,
언젠가는 이 아이도 자라고 자라서 지금처럼 내 곁을 떠날 날이 오겠지 싶었다.
오늘 결혼식장에서 보았던 장면처럼, 나 역시 언젠가는
한 발 뒤에서 이 아이를 바라보는 사람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그 생각이 스치자 지금의 시간이 조금 달라 보였다.
힘들다고 느꼈던 밤도, 하루가 유난히 길게만 느껴지던 순간들도,
다시 돌아오지 않을 시간이라는 사실이 또렷해졌다.
그제야 나는 이 질문을 다른 방향으로 바라보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그동안 "다시 낳을래?" 라는 질문은 늘 지금의 고단함을 기준으로 떠올렸다.
잠 못 자는 밤, 무너진 일상, 나를 잃어가는 것 같은 순간들 속에서,
그 질문은 다시 그 시간을 견딜 수 있겠느냐는 물음에 가까웠다.
그런데 오늘은 달랐다.
오늘은 낳는 날이 아니라, 자라난 이후의 시간을 보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늘에서야 그 질문에 대답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낳기 전으로 되돌아간다면 다시 낳을래? 라는 질문에,
이제는 망설이지 않고 "응" 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고.
이 대답은 각오라기보단 수긍에 가깝다.
이 모든 시간을 다시 지나도 괜찮겠다고,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게 되는 마음이다.
아마 나는 그 대답을 하기까지 시간이 필요했던 것 같다.
아이를 낳고도 한참이 지나서야, 오늘 같은 하루를 지나서야,
비로소 그 질문 앞에 설 수 있게 된 것일지도 모른다.
늦었지만 그래서 더 분명하게,
나는 오늘에서야 "다시 낳겠다."고 말할 수 있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