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순위에 대하여
며칠 전, 2년 동안 취미로 켜던 바이올린을 팔았다.
바이올린은 생각보다 시간을 많이 요구하는 취미였다.
악기를 꺼내고 음을 맞추고, 활을 잡고 손가락을 풀고,
한 곡을 제대로 켜려면 마음도 어느 정도 비워져 있어야 한다.
나는 그 시간이 지금은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악기를 내놓았다.
나름 악기 하나쯤은 꾸준히 해보겠다고, 적어도 "나는 바이올린을 켠다."라고
말할 수 있을 만큼은 이어가 보겠다고 시작한 취미였는데,
막상 악기를 보내고 나니 생각보다 씁쓸했다.
단지 악기 하나를 판 것뿐인데,
아기가 없던 시절의 여유까지 함께 정리해 버린 기분이 들었다.
동시에 앞으로도 한동안은 활을 다시 잡을 일이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따라왔다.
그래서 나는 거의 반사적으로 “역시 육아 때문이겠지”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동시에, 스스로에게 물어봤다.
'나는 정말로 아기 때문에 시간이 없어진 걸까.'
가만히 생각해 보면 여유는 조금씩 있다.
아침에 아기가 일어나기 전, 낮잠을 자는 시간, 저녁잠에 든 이후.
그리고 3월이 되면 어린이집을 가니 시간은 지금보다 더 생길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나는 왜 '여유가 없다'고 단정하고 악기를 팔아버렸을까.
곰곰이 생각해 보니, 여유가 없는 게 아니라 우선순위가 달라진 것이었다.
여유가 생기면 가장 먼저 하고 싶은 건 몸을 쉬게 하는 일이고,
그다음은 밀린 도파민을 채우는 일이다.(인스타에 밀린 아기사진도 올려야 하고.)
나는 원래 하고 싶은 게 많은 사람이었다.
제2외국어 공부도 하고 있고, 주에 한 번은 브런치에 글을 쓰고,
일주일에 서너 번은 블로그에 글을 올리고 주에 4번은 운동도 빠지지 않는다.
그 사이에서 바이올린은 자연스럽게 아래로 내려갔다.
시간이 사라진 게 아니라,
내가 무엇을 먼저 두느냐의 문제였다.
'아기 때문'이라고 말하면 조금은 편해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솔직히 말하면, 나는 지금 다른 것들을 더 먼저 선택하고 있다.
내 몸을 위한 운동, 잠깐의 휴식, 글을 쓰는 일, 새로운 공부.
그 선택의 결과가 지금의 시간표일 뿐이다.
바이올린을 판 날, 나는 취미 하나를 정리했다기보다는
지금의 나를 확인한 것에 가까웠다.
아기 때문에 모든 게 불가능해졌다고 생각하면 조금은 편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결국 내가 내린 선택은 달랐다.
나는 지금 다른 것들을 더 먼저 두고 있을 뿐이었다.
여유가 사라진 게 아니라, 내가 쓰는 방향이 달라진 것이다.
언젠가 다시 활을 잡을 날이 올지도 모른다.
아니면 끝내 돌아가지 않을 수도 있다.
그 어느 쪽이어도 괜찮다. 적어도 이제는 '육아 때문에'라고 말하지는 않을 것이다.
나는 여전히 선택하고 있고, 그 선택의 결과로 오늘을 살고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