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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옳은 Feb 25. 2022

구청 사업부서에서 시보로 살아남기

여기가 대체 뭐하는 부서인거죠

나도 내가 9급 공무원이 될 줄 몰랐다. '그렇게 지루하고 반복적인 일을 어떻게 평생 해?' 라며 내 인생만큼은 영원히 창의적인 도전의 연속일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던 패기로운 시절이 나에게도 있었다. 공직 생활 4년차가 된 지금은 모든 직업에 저마다의 기쁨과 슬픔이 있겠거니, 한다.

주변 사람들이 이제 발령이 나면 어디에서 근무를 하게 되냐고 물었을 때 "민원대에서 등초본 떼지 않을까요?"라고 자조를 섞어 답을 했었다.

공무원은 깊은 고민 끝에 선택한 직업이 아니었다. 그렇게 도전이 어쩌고 하더니 공무원을 직업으로 선택하다니, 현실에 순응한 스스로가 미워서 나는 나를 벌하는 느낌으로 그런 대답을 했다. (지금도 자조를 자주 섞지만 이제는 돈을 버는 모든 일들은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니라는 걸 안다... 철없던 나)

발령을 받고 임용장을 펼쳐보니 아주 생소한 부서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우리 구에서 야심차게 새로 만들어낸 사업 부서였다. 처음에 배치될 거라고 예상했던 민원대에서 서류를 떼는 반복적인 업무와 정반대의 업무를 해야 하는 곳이었는데, 이 부서에는 이 부서만의 어려움이 있었다.​


비정기 인사 때 혼자 덜렁 발령이 나서 동기가 없었다. 새로 생긴 부서라서 전임자도 없고 참고할 문서도 없어 열심히 식은땀만 흘렸다.​


전례가 부족한 분야의 사업 부서에서 일한다는 것은 공무원 입장에서는 굉장한 부담이다.(공무원도 실적에 대한 나름의 압박이 있다) 팀원이 팀장 포함 총 세 명인 팀이었는데 여기서 사수가 갑자기 휴직을 했다. 지금 생각하니 9급 시보와 단 둘이 일할 생각에 당시 팀장님이 얼마나 막막하셨을까 싶다.​​


시간이 흐르며 차츰 업무에 익숙해졌다. 지금 생각해보면 첫 근무지인데다가 동기도 없었기 때문에 비교 대상이 없어 내가 겪는 것이 아는 전부라 사수도 없고 전임자도 아웃라인도 없었지만 원래 직장생활이 이런 건 줄 알고 무던하게 보낼 수 있었던 것 같다. 어느 순간부터는 어려운 한자식 용어 표기와 비효율적으로 보이는 딱딱한 공문서 작성 규칙 등에 “왜?”라고 토도 달지 않게 됐다.

생각하기를 멈추었다는 뜻은 아니다. 오히려 공무원 스타일을 벗어나지 않는 참신한 아이디어가 필요해서 더 열심히 찾아야했다. 팀장님과 과장님이 내 의견을 많이 물어봐주시는 분이었던 게 큰 행운이었다. 과장님이 특히 “좀 쌈박한 거 없을까?”라고 종종 물어보셔서 시간이 나면 타 지자체, 타 기관에서 추진하는 우리 부서 관련 사업들을 열심히 탐색했다. 공적 영역 중에서도 그나마 틀에 박혀 있지 않는 편에 속하는 분야이고 나도 관심을 갖고 있던 분야이기 때문에 피곤하지 않았다. 더 잘하고 싶었다.

발령이 나기 전만 해도 민원대 없이 파티션으로 개인 영역이 나뉘어져 있는, 드라마에 나오는 사무실 같은 공간에서 일하는 공무원도 있다는 걸 모를 정도로 무지했는데 어느덧 사업에 애착을 갖게 됐다. 사기업보다 실적의 압박과 비용 효율에 대한 부담은 적은데 담당자의 재량껏 사업을 꾸릴 수 있다니, 이런 직업이라면 꽤 만족스러웠다.​​


주로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업무를 맡았다. 그럴듯하게 만들어도 사람이 모이지 않으면 소용이 없으니 다른 지자체에서 운영하는 프로그램 내용을 열심히 찾았다. 역시 강남, 서초처럼 돈이 많은 구는 내용이 화려했다. 기 죽어 있을 새가 없었다. 가지고 있는 예산이 적어서 프로그램을 운영해 줄 업체를 찾는 것도 일이었기 때문에 빨리 움직여야 했다.

처음에는 타구에서 운영한 커리큘럼과 비슷하게 해달라고 업체에 요청하는 경우가 많았다. 가장 안전하고 확실하게 입증된 방법이니까. 시간이 지나면서 시야를 넓혔다. 구청 프로그램 말고 문화재단이나 사기업의 원데이 클래스들을 유심히 살피면서 트렌드를 파악했다. 이렇게 말하니 거창해보이는데, 쉽게 말해 내가 듣고 싶은 게 뭔지 찾아봤다. 나도 듣기 싫은 거라면 누가 듣겠나 싶었다.​


홍보도 열심히 했다. 관공서에서 운영하는 프로그램들 중 괜찮은 게 참 많은데 늘 오는 사람만 오는 이유는 홍보가 부족하기 때문 같았다. 관공서가 줄 수 있는 신뢰감은 유지하되 너무 딱딱해보이지 않게 홍보 멘트나 이미지를 대상자에게 친근하게 바꾸었다. 대상자들이 자주 가는 인터넷 커뮤니티에 가입해 직접 글을 올리기도 했다.​


이렇게 노력한 덕인지 평소 신청자가 10명 내외를 웃돌던 멘토링 프로그램은 100명이 넘는 인원이 신청해 접수를 막았고, 어떤 교육 과정은 20명 내외를 뽑아야 하는데 순식간에 배가 넘는 인원이 몰려 조기 마감을 했다. 왜 조기 마감을 했냐는 항의 민원까지 받았다. 담당자 입장에서는 모집하는 인원만큼만 신청자가 들어오는 게 베스트지만 내심 뿌듯했다. 저 이렇게 프로그램 잘 짰습니다. 어깨 으쓱.​


최선을 다해 신나게 일했다. 조직도를 보며 이 부서만큼 일해보고 싶은 부서가 없다는 걸 진즉 파악했다. 그 말은 앞으로 이 구청에 남아있는 한 이 업무보다 재미있을 업무는 없다는 거다. 매일 감사하게 생각하며 업무에 임했다.​


3년여의 시간이 흘러 꼼짝없이 부서를 옮기게 됐다. 잔류도 2회까지 쓰고 남아있기 위해 할 수 있는 시도는 모두 한 마당이라 더 아쉬워 할 수도 없었다. 새로운 근무지에서 어떤 직원이 될지, 무엇을 느끼고 배우게 될지 두려움 반, 기대 반인 채로 인사 시즌을 맞이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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