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택근무지만 집에만 있지 않습니다
재택근무를 한 지 한 달하고 조금 넘었다. 처음에는 집에서 일을 하는 게 더 편할 거라 생각했지만, 막상 생각과 달랐다. 비대면 온라인 소통이 편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귀찮았다. 같은 사무실에서 근무를 할 때는 말 한마디면 될 것을 굳이 컴퓨터를 켜고, 파일을 만들고, 글로 작성해야 했다. 일하는 상황이 눈에 보이지 않으니 글로써 확인받고 싶다는 회사 측 입장을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택근무는 아침 일찍 회사로 출근하는 것만큼 익숙지 않았다.
재택근무의 가장 큰 장점이자 단점이 집에서 일을 한다는 것이다. 집에서 일을 하기 때문에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일을 할 수 있고 남의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되는 장점이 있지만 동시에 내가 먹고 자며 숨 쉬는 가장 일상적이고 개인적인 공간마저 회사가 되어야 한다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다.
컴퓨터 앞 책상은 내가 글을 쓰는 공간이기도 하지만 때때로 영상 자막을 만드는 재택 직장이 되어 버린다.
출근과 퇴근의 경계가 무너져버린 한 공간에선 '지금 내가 무슨 일을 하고 있는 건지' 머리가 지끈거렸다.
내가 쓴 근로 계약서는 격일 출근제 이지만 재택근무를 시작한 이래로 계약서는 무용지물이 되었고, 집에만 있는 통상 근무자가 되었다.
하지만 재택근무를 하더라도 집에만 있지 않는다.
재택근무자는 매일 집에만 있는 줄 아시는지, 매일 통근하시는 팀장님과 과장님은 시시때때로 전화를 하고 문자를 남긴다. 무슨 특별한 일이 매일 있으신지, 때론 별일 아님에도 끊임없이 작업 대장을 확인하고 확인받는다. 회사가 시키지 않아도 내 생활패턴과 개인 일정에 따라 계획을 세우고 계획대로 일을 하곤 한다. 정해진 시간에 집중적으로 일을 끝내고 나야 남은 시간에 내 생활을 할 수 있으니까.
그게 재택근무의 가장 큰 장점이니까.
상상과 실제 재택근무의 모습은 참 많이 달랐다. 매일 핸드폰은 켜 있어야 했고 상시 컴퓨터 앞에 앉아 있어야 했다. 당연히 일을 계획하지 않은 시간에는, 일을 하지 않는 날에는 글을 쓰거나 개인적 용무가 있지 않는 이상 컴퓨터 앞에 앉아 있지 않는다. 매번 연락 즉시 원하는 파일을 전송해 줄 수 없다. 전화가 울림과 동시에 3초 내로 전화를 받을 수도 없다. 나도 내 생활이 있고 일정이 있지 않나.
때론 공부를 하거나, 때론 친구를 만나거나 때론 책을 읽고, 영화를 본다. 개인 일정을 보내고 있는 데 그때마다 오는 회사의 알림 들은 내 개인 생활마저 빼앗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친구와 대화를 하다가 과장님의 카톡에 잠시 회사 일에 대해 생각해야 하고, 영화나 TV를 몰입해서 보고 있는데도 낮에 연락받은 그 카톡에 대해 생각하느라 영화나 TV에 집중할 수가 없다. 유일하게 내가 아무런 생각도 안 하고 마음 편히 집중할 수 있는 시간에도 회사 업무가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아 내가 하는 모든 일들에 100% 집중을 할 수 없다. 내가 하는 모든 일에 100% 열정을 쏟아 내고 나서야 그 일에 보람을 느끼는 나에겐 모든 일들이 그저 '대충 이 정도 됐지 뭐'라는 생각이 들게 하는데,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내 모습들이 썩 마음에 들지 않았다.
(연애 칼럼니스트 곽정은 씨는 '사랑을 하고 함께 있을 때 변해가는 내 모습이 자신의 마음에 든다면 그 사랑은 지속해도 좋다'고 했다. 그렇다면 일을 하고 있는 내 모습이 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일을 그만두어도 될까...... 생각해 본다.'퇴사'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차오른다.)
이런 순간들은 출근을 하는 날이 아님에도 내가 재택근무를 하는 이유만으로 하루 종일 숨 쉴 때마다 생각하게 했다. 일을 하지 않는 날임에도 불구하고 내 머릿속 한 켠에는 남은 내 회사 일정이 어떻게 되는지, 밀린 회상 업무를 언제 해치울지 등 밤에 잠들 때까지 생각나게 했다.
집에서나 잠시 밖을 나설 때나 회사 관련된 것들을 지울 수 없었다. 재택근무를 한다는 이유만으로 회사 일과 개인 일의 경계가 무너지면 안 되었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심각해짐에 따라 많은 회사들이 재택근무를 시행한다는 뉴스를 본 적 있다. 때론 뉴스에 나온 소식들이 나와 멀게 느껴져, 현실 속에서 많은 사람들이 격고 있는 상황에 대해 공감하지 못했다. 뉴스 안 소식들이 내 이야기가 될 때는 누구보다 그 힘듦에 대해 깊이 공감할 수 있었다.
역시 공감은 지구 밖 멀리 있는 이야기일지라도 내 이야기가 되어 겹쳐 보이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출근도 집이고 퇴근마저 집인 재택근무는 퇴사 마저 '집'에서 생각하게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