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00원어치의 기쁨

글로 돈을 벌 수 있나요?

by 미래

'커서 뭐가 되고 싶어?'라는 질문이 가장 싫었다. 직업적 의미에서 꿈을 물어보는 질문엔 그 어떤 답도 하지 못했다. 대충 얼버무리며 그 시간을 넘겼고, 비슷한 질문이 오가는 곳은 절로 몸을 피했다. 솔직히 내가 무엇이 되고 싶다는 생각도 잘해보지 않았던 것 같다. 정말 너무 꿈만 같은 이야기라서. 매번 학교에선 장래희망을 적어오라 했지만, 내기 직전까지 항상 고민하다 매번 대충 끄적여 냈다.


작가. 잘 기억은 안 나지만 어릴 때 꿈을 물어보면 그냥 작가라고 적어냈던 기억이 있다. 책 말고도 좋아하는 것들은 더 많았고, 꼭 소설책보단 수필집을 더 좋아했다. 글은 그냥 쓰는 것을 즐겼다. 뛰어나게 잘 쓴다고 생각한 적은 없지만, 학창 시절 종종 글쓰기 대회에서 상을 받은 적 있었다. 그 어떤 분야보다 친근하게 느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꿈이 뭐냐는 질문엔 항상 작가라고 답했던 것 같다.


물론 지금은 작가를 꿈꾸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글은 꾸준히 쓰고 있을 만큼 작가의 일을 좋아한다. 이제는 작가의 꿈에서 한 발짝 멀어졌지만, 내 이름을 건 책 한 권은 쓰고 싶었다. 단순히 책을 출판해 봤다는 자부심이나 큰돈을 벌겠다는 욕심은 없었지만, 나의 이야기를 쓰고 그 이야기가 나만의 이야기가 아니길 바라는 마음에 더 많은 사람들과 글로 소통하고 싶은 마음에서였다. 대학에서 영화를 찍으며 내 생각이 담긴 결과물을 만드는 재미를 느꼈고, 그것이 소통의 수단이 될 수 있다는 점을 깨달은 것도 이유라면 이유였다. 오랜 시간 공들여 내 땀과 노력을 들인 결과물을 만들며 스스로의 성장을 경험하는 일만큼 보람된 일은 없는 것 같다.



운 좋게 책을 쓸 기회가 있었다. 한 글쓰기 워크숍을 들으며 독립 출판물을 출간할 기회를 얻었다. 여러 수강생 중 3등 안에 들어야 그 기회를 잡을 수 있었고, 난 그 기회를 놓칠 리 없었다. 내 열정과 노력을 인정받아 출판할 수 있는 기회가 왔다. 책의 주제와 목차부터 스스로 기획하고 원고를 써야 했다. 원고 마감기한이 정해진 이상 미룰 수 없이 책 한 권을 가득 채울 이야기들을 모아야 했다.


얼마 안 된 따끈따끈한 기억부터 꽤 오래되어 흐릿해진 기억까지 모조리 꺼냈다. 행복했던 순간들을 포함해 가슴 아픈 상처들까지 다시 기억해야 했다. 잊으려 노력했던 일들을 다시 꺼내 글로 적어내는 일들은 글을 쓰는 내내 고통이 따르는 일이었지만, 그때의 감정을 한 문장 한 문장 적어 내며 오히려 아픔을 씻어 냈다. 글을 쓰는 일이 온전히 나를 위한 일이었기에 이 책을 쓰는 시간은 지난 상처를 묻어두고 새살을 돋을 성장의 과정이라 생각했다.


책은 어린 시절부터 지금의 내가 있기까지의 중요한 순간들, 여러 아픔과 실패를 딛고 성숙해지기까지의 일화를 담았다. 자서전은 아니기에 파편처럼 끊어진 이야기들이었지만, 스스로 자존감을 세우며 나로 살아가기 위한 다짐을 잊지 않았다. 평범한 자존감 에세이로 글을 쓰고자 했던 이유도 서점에 가면 한편에 수많은 자존감 에세이 책이 펼쳐 있듯,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스스로를 사랑하는 마음이라 여겼기 때문이었다.


자존감을 지키는 일이 곧 내 인생을 주제척으로 사는 일과 이어진다 생각했다. 사람은 살면서 수많은 것들을 사랑하며 산다. 내 옆에 있는 누군가가 되었든, 내가 가장 소중히 여기는 물건이나 때론 손에 닿지 않는 팬심들처럼 나 아닌 모든 것들을 사랑한다. 그에 비해 스스로를 사랑하는 것에는 낯설고 어색하다. 그럼에도 주변에서 상처 받고 울적한 기분을 위로받길 원한다. 서점에서 가장 인기 있는 책이 에세이 책인 이유도 글로 가장 따듯한 위로를 건네기 때문이다. 나도 누군갈 위로할 수 있는 존재이고 싶었다.


어쨌든 결국 책이란 것을 만들었다. 정식 출판 등록을 할 수 있는 것도 아니어서 책이라 불러야 할지, 독립 출판이라 해야 할지 그 경계가 참 모호했다. 판매를 할 수도 없는 작은 모음집에 불과했다.

사실 원고를 처음 쓸 때만 해도 이런 결과를 기대한 것은 아니었다. 정식 출판이든 독립 출판이든 나름 내 첫 책인데 떳떳하게 '책'으로 불리고 싶었다. 하지만 결과는 2% 부족한 책이 나왔다.


내가 들인 시간과 노력에 비해 조금 아쉽다 느끼는 이유는 나에 비해 노력한 흔적이 조금도 보이지 않는 출판업체 때문이었다. 찾아보니 출판사는 아니고 한 디자인 연구소였는데, 독립 출판물 같은 책들을 주로 엮는 것 같았다. 워크숍 강의와 협력했기에 내가 출판사를 알아보고, 선택할 여지는 없었던 것이 문제였다. (사실 아직 그 정도 짬밥은 아니더라도) 적어도 글을 엮어 활자를 인쇄해내는 곳이라면 최소한 작가를 배려해 줬어야 했다. 대단한 대우를 바란 것은 아니다. 원고를 책으로 내기 위해 편집할 때 작가의 요구를 반영했어야 한 것, 책 표지를 정할 때 작가의 의견을 들었어야 한 것, 소개글을 적어야 할 때 더 작가의 마음을 더 들여다봤어야 하는 것뿐이었다. 그들은 원고의 교정과 교열도, 글씨 크기와 자간을 정하는 그 어떤 것도 제대로 반영하지 않았다. 그래서 책 안 쪽 여백이 너무 적어 책을 빳빳하게 펼쳐 내야만 글을 제대로 제대로 읽을 수 있었다. 책 표지를 정할 때도 혼자 레퍼런스 사진을 꼼꼼히 다 찾아 의견을 제시했음에도, 그저 시안에는 노력 없이 사진이 복사, 붙여 넣기가 되어 있을 정도로 고민한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 워크숍 강의와 협력된 업체가 아니라면 당장이라도 그만두고 싶은 심정이었다.


출판을 처음 경험하는 한 사람에게는 그다지 좋은 곳은 아니었고, 책을 내고 작가를 꿈꾸는 많은 이들에게는 더 막막한 여정이었다. 예전에 그림책을 쓴 작가가 회사와 신인 작가의 기울어진 위치에서 이루어진 계약으로 인해 원작 파괴와 수익 측면에서 손해를 봤다는 기사를 접했을 때 작가의 심정을 어렴풋 이해할 수 있었다. 가슴에 따뜻한 온기를 가지고 있는 나는 어쩔 수 없는 을의 위치였고, 세상에서 가장 존재처럼 느껴졌다.



책을 만든 기분은 고작 7000원어치의 기쁨이었다. 착불로 배송된 책 100권은 7000원이었다. 내가 쓴 글과 책은 선물 같은 기분을 느낄 수 없이 무거운 상자로 배송되었다. 오히려 7000원이나 내고 산 내 책들은 무거운 상자 속에 허무함과 허탈함으로 채워졌다. 한 달 정도 되는 짧은 원고 기간, 원고 마감일이 지난 후 수개월이 지나고 다음 해가 되어서야 받은 책은 기쁨을 느끼기도 전에 짐이 되어 버렸다.


7000원이면 내가 좋아하는 떡볶이와 김밥, 어묵 튀김까지 먹을 정도로 푸짐한 기쁨이었을 테지만, 아무리 맛있게 먹어도 왠지 배 한쪽이 헛헛해 무언가를 더 채워 넣고 싶은 심정이었다. 편의점에서 군것질거리 여러 개를 사 먹어봐야 국밥 한 그릇이 더 든든한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착불 배송비가 7000원이기도 했지만, 만 원이 넘어가는 행복에는 미치지 못했다. 만 원이면 한 때 예능 프로그램처럼 일주일을 살 수 있을 정도가 되었지만, 나는 그 기쁨이 고작 일주일을 가지 못했다.


책을 받고 설렘이 전혀 없던 건 아니었다. 짐짝처럼 무겁게 받은 책이었지만, 그래도 서점에 널린 책들만큼 공들여 써 내려간 글들이기에 내 이야기 하나하나 모두 소중했다. 기록된 감정들을 후에 되돌아봤을 때 잊지 못할 추억이자 경험이 될 것이 분명했다. 이 설렘보다 아쉬움이 더 크게 기억되는 건 '처음'에 대한 애정 때문이었다. 처음에 하는 모든 것들이 가장 강렬하게 오래 기억되기에 더 완벽하게 만들고 싶은 욕심이 있었다. 내 욕심이 한참 미치지 못한 결과물이 나왔을 땐 나도 모르게 눈물부터 나왔다. 이 짐짝 같은 내 책을 받고 나서 담당자에게 연락을 했고, '정식 출판이 아니라서 큰 의미 두지 마시고 다음 작품을 잘 이어가라'는 말을 들은 후엔 괜한 서러움이 북받쳤다. 아무리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책이라지만 나에게는 처음이라서 잊지 못할 경험인데, 큰 의미를 두지 말라니. 서운함이 밀려왔다. 돈을 바라고 글을 쓰고 책을 만든 건 아니었지만, 돈을 벌기는커녕 돈을 내고 내 책을 샀다. 돈을 내지 않았다면 조금 달라졌을까. 내 마음에 꼭 들지 않는 책은 작가에게 그다지 큰 의미를 주지 않았다.


글을 써서 돈을 벌 수 있나. 글로 돈을 벌겠다는 생각은 한 적 없다. 한 때 멋 모르고 작가를 꿈꾸기도 했지만, 지금도 글로 돈을 얼마나 벌 수 있는지 감이 오지 않는다. 내가 생각하는 글은 돈을 벌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내가 살아가는 목적이다. 글을 쓰고 감정을 털어내야 그나마 오락가락한 내 기분을 조금이나마 내려놓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작가를 업으로 삼으라는 말을 종종 듣기도 했지만, 업으로 삼을 만큼 대단한 필력을 가진 것도 아니고 남이 시켜서, 시간에 쫓겨 쓰는 글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보고 느끼고, 온전히 느꼈을 때 글로 풀어낼 때 더 만족했다. 어떤 이야기든 쓰고 기록하고 기억하는 과정은 아무리 오랜 시간이 지나도 한 올 한 올 기억에 남는다.



글은 돈을 버는 게 아니라 마음을 번다고 생각한다. 글은 쓰면 쓸수록 여유가 생겨서다. 어지러웠던 마음을 정리하는 일이기도 하고, 복잡했던 머릿속을 비워내는 일이기 때문이다. 더 많은 글을 쓸수록 미운 마음들을 비워내고 새로운 마음을 벌어 간다. 더 좋은 글을 쓰고자 할수록 마음의 여유 공간들은 커진다.


좋았다면 추억이고 나빴다면 경험이다. 좋은 기회로 책을 낼 수 있었던 건 좋은 경험이다. 아마 이 경험을 오래도록 추억할 것이다. 글은 힘이 있고, 글은 겸손하게 만든다. 아쉽긴 하지만 지난 경험들이 앞으로의 나를 더 성장시켜줄 것이라 믿는다.


고작 7000원뿐인 기쁨이었지만, 그 보다 더 값진 마음을 벌었다. 그래서 꾸준히 글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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