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맛에 디자인 하나

by 미래

처음으로 디자인이 재밌었다. 어릴 때 마냥 전형적인 편견 속 여자아이처럼 인형 옷 입히기 놀이도 안 좋아했던 것 같다. 어릴 적 앨범 속 콩순이 인형인가(?)는 있던 것 같지만 공주 놀이는 즐겨하지 않았다.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별 관심은 없었다.

패션 디자인을 공부하고는 있지만 특출난 재능을 갖고 있는 것도 아니다. 어릴 때부터 관심이 덜했는데 감각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옷은 좋아한다. 옷을 사는 것도 좋아하고, 예쁜 옷을 보는 것, 그런 옷들은 모델들이 입은 모습을 보며 자주 감탄한다. 이제는 옷을 보면 '저 옷을 대체 어떻게 만들었을지' 더 고민한다.


그런데 패션 일러스트를 배우다 보니 이 작업이 마치 인형놀이하듯 재밌다. 이 원피스에는 어떤 패턴을 넣으면 좋을지, 또 어떤 색상이 잘 어울릴지 등을 계속 행복한 고민들을 이어갔다. 심지어 이 옷들이 실제로 만들어지면 어떨지 상상의 나래를 펼치기도 했다. 아무런 색상도 모양도 들어있지 않은 흰 바탕에 도식화 작업을 하는 패션 일러스트 과정은 '이 맛에 디자인 하나' 싶을 정도로 재밌었다. 디자인 일이 이게 전부는 아니지만 어쩌면 도식화 작업은 실제로 옷을 만들기 위해 다자이너에게 가장 중요한 작업이라 할 수 있다. 이 도식화에는 어떤 색으로 디자인된 옷이 어떤 소재로, 어떤 봉제 방법으로 만들어져야 하는지 상세하게 적혀있기 때문이다. 이 도식화 하나로 가장 완벽한 옷이 될 수도, 상품 가치가 없는 옷이 될 수도 있다.


이 도식화는 수업 과제 중 스스로 만족할 정도로 열심히 했다. 그동안은 일러스트 기술을 따라가느라 벅찼다면, 이제는 기술이 어느 정도 손에 익어 나름 진짜 디자인하는 기분이 났다.


너라면 입을래?


패션 일러스트를 하면서 잊지 말아야 할 한 가지는, ''너라면 이 옷을 사겠냐?''는 것이다. 내 돈 주고서도 사 입지 않을 옷을 디자인한다는 것은 디자이너로서 자격이 없다고 한다. 작품이 아닌 상품을 만들어야 하는 디자이너에게 자신이 디자인 한 옷을 아무도 사 입지 않는다면 그만큼 속상한 일이 또 있을까. 내 새끼처럼 아끼고 아껴 고민한 결과들을 몽땅 집어넣어 만들었는데 아무에게도 관심받지 않는다면, 생각만으로도 너무 슬프다. 졸업 단편 영화를 찍고 조용히 묻혔을 때 마음이 조금 아팠다.


유명 예술가들도 생전에는 괜찮은 작품을 만들어도 인정받지 못하다가, 사후에 재평가되어 좋은 작품으로 평가받는 일이 종종 있지만, 점점 짧아지는 패션 사이클에서 의복은 제때 인정받지 않으면 안 된다. 소비자의 관심과 유행은 재빠르게 변하고, 그 욕구를 채워야 하는 게 디자이너의 역할이기 때문이다. 대중에게 인정받지 못한 예술가는 힘이 없다.


고작 과제에 불과했지만 아무도 안 사 입는다면 나라도 사 입겠다는 마음으로 정성을 들였다. 산업적인 이해와 트렌드를 가장 객관적으로 이해하면서도 가장 주관적으로 판단하기도 하는 디자인, 참 매력적인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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