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점 옷이 되어갔다. 패턴을 그리고 원단을 자르고 나니 옷의 모형이 잡혔다. 셔츠 한 장을 만드는 데도 이렇게 작은 옷 조각들이 모여야 한다는 것을 직접 옷을 만들면서 알았다. 시작이 반이었다. 원단 재단까지 마치니 가장 중요한 봉제가 남았다. 재봉틀로 완성선을 잘 박아내야 옷이 되는 것이었다.
재봉틀과 초면이니 낯설 수밖에 없었다. 처음에는 밑실, 윗실을 끼는 것부터 페달을 밟는 것, 완성선에 정확히 박아내는 것까지 어느 것 하나 쉽지 않았다. 재봉틀에 실을 끼는 과정은 몇 번 보고 따라 하다 보면 익숙해졌는데 재봉틀 속도를 조절하는 건 아무리 해도 익숙해지지 않았다. 너무 천천히 밟으면 바늘이 앞으로 움직이지 않았고, 익숙해져서 또 너무 세게 밟으면 그 속도에 맞춰 원단 통제가 힘들어 실이 삐뚤빼뚤했다.
운전이랑 비슷하지만 조금 달랐다. 운전을 워낙 못해 평균 속도에도 못 미칠 정도로 밖에 다릴 수 없었고, 핸들 방향도 내 맘 같지 않았다. 그래도 다행인 건 재봉틀은 좌우로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바늘은 앞으로 일직선으로만 움직이게 설계되어 있기 때문에 속도만 조절하면 됐다.
누가 대신 밟아 줄 수 없어
스스로의 속도를 찾아야지.
옷을 만들어 가는 과정은 재밌긴 한데 내가 원하는 대로 완벽한 옷이 나오지 않아 마음이 아팠다. 결국은 내가 입을 옷이라 예뻐 보이길 바랐다. 그래도 일주일에 꾸준히 재봉틀을 만질 수밖에 없다 보니 실력은 조금씩 늘었다. 그래도 아직 여유는 없다. 초반에 비핸 조금 편해져서 속도를 내다보면 실은 삐뚤어졌다. 완성선에 정확히 박히지 못하고 삐둘어지면 두 가지 선택밖에 없다. 삐뚤어지게 봉제된 옷을 입거나 실을 다시 뜯거나.
제 속도를 찾는 일은 너무 어려운 일이다. 자기만의 속도로 살면 된다는데, 혼자 너무 뒤처져 있는 것은 아닐까 괜히 조급해지고, 또 너무 일이 쉽게 풀리면 혹 무슨 일이 생기지는 않을지 걱정이 앞선다. 어느 속도가 진정 내게 맞는 속도 일지 가늠할 수 없었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걷다 보면 무엇이 내 속도인지 알게 된다는 것이다. 처음 재봉틀을 배울 때는 아무리 잘하려 해도 잘하지 못했다. 빠른 속도가 무서워 천천히 밟으려 하다 보면 바늘이 움직이지 않았고, 마음 놓고 봉제하다 나도 모르게 속도를 내게 될 때도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제는 어느 정도 세기로 페달을 밟아야 내가 통제할 수 있는 범위에 있는지 알 수 있었다. 그렇게 어느 속도가 맞는 속도인지 모른다면 그저 계속해보는 수밖엔 없다. 걷다 보면 알게 되니까.
살면서 푸는 게 일이 되는 때가 많다. 어렵게 쌓은 관계가 한순간에 무너졌을 때 다시 회복해야 할 때도, 잘못된 길을 갔을 때 다시 되돌아와야 할 때도, 어지럽혀 놓은 물건들은 다시 정리해야 할 때도 다시 원래대로 풀어놓는 게 더 힘이 든다.
처음부터 실수가 없다면 좋겠지만, 불완전한 인간으로서 우리는 누구나 실수를 한다. 이미 봉제해 놓은 옷을 다시 뜯는 건 마음이 아프지만, 시간이 오래 걸려도 다시 뜯고 만들면 더 뿌듯하다. 푸는 게 더 수고스럽더라도 결국 풀어내면 더 완벽한 옷, 온전한 삶이 만들어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