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어나서 처음으로 옷을 만들며 깨달은 것

by 미래
옷은 배신하지 않아



학생을 벗어난 것에 대한 아쉬움은 있었지만 학생이 되려던 건 아니었다. 그런데 어쩌다 보니 다시 대학생이 되었다. 연고도 없는 의상디자인을 전공으로 배우게 됐다. 옷은 사 입는 거라고만 생각했지 직접 만들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하지만 매번 사 입던 옷을 하나씩 찬찬히 들여다보고 만들다 보니 몰랐던 걸 알게 되었고, 보이지 않던 것이 보였다.


옷은 여러 조각들의 모음이었다. 예쁜 셔츠 한 장을 만들려면 단순해 보여도 몸판의 앞, 뒤판, 소매, 칼라, 칼라 밴드, 커프스 심지어는 주머니까지 꽤 많은 조각들이 필요했고, 여러 조각들을 하나로 이어 붙여야 했다. 디자인만 보고 쉽게 옷을 구매할 때는 옷을 만드는 일이 이렇게 복잡한 건지 몰랐다.

옷을 만들기 위해서는 작은 조각들을 붙이는 순서와 방법이 중요했다. 셔츠의 몸판들을 연결한 후에 소매를 연결해야 제대로 된 옷이 완성될 수 있었고, 그 조각들을 연결하기 위해 옳은 봉제 법으로 만들어야 원하는 옷이 나올 수 있었다. 옷을 사 입기만 할 때는 옷 자체가 어떤 식으로 만들어지는지 알지 못했지만 이제는 이런 옷을 만들기 위해서는 '이 두 조각을 붙였구나', '이런 방식으로 봉제를 했구나'하는 것들을 알 수 있었다.


우리도 지금의 내가 존재하기 위해서 많은 것들이 모여 만들어졌다. 걸어본 만큼 내 인생이란 말이 있듯이, 지난 과거의 경험들 속에서 우리는 성장했고, 더 성숙한 모습으로 현재를 살고 있다. 그리고 더 나은 미래를 꿈꾼다. 하찮은 경험이란 게 있을까. 실패했던 순간도, 좌절했던 경험도, 상처 받은 일들 모두 우리를 단단하게 만들었다. 옷만 여러 조각들이 모여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우리의 작은 경험들이 여럿이 모여 현재의 나를 있게 했다. 지난 경험들이 없었다면 지금의 나는 없었을 것이다. 그렇기에 빛나지 못했던 경험들, 자랑하기 부끄러운 사소한 경험들도 모두 소중하다.


옷을 배우고 나서부터는 옷이 별로라고 쉽게 말할 수 없었다. 나에게 맞지 않는 옷은 있어도 별로인 옷은 없었다. 그 어떤 예쁘지 않은 옷이라 해도 쉽게 만들어지는 옷은 없었기 때문이다. 수많은 사람들에게 내놓기까지 그 옷에는 많은 사람들의 피와 땀이 묻어 있을 것이다. 소비자에게 선택받는 상품이 되기 위해 디자이너는 밤새 고민했을 것이고, 보이지 않는 곳에서 많은 사람들이 옷을 만들기 위해 원단과 실, 부자재까지 고르고 또 골랐을 것이다. 심지어는 정확한 재단과 봉제를 하기 위해 수많은 공장 직원들의 손이 필요했을 것이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우리가 옷을 사려면 또 보이지 않는 곳에서 검수하고 유통도 해야 한다. 인터넷에서 옷을 시키면 적어도 일주일, 빠르면 3일 안에 옷이 배달된다. 이 많은 과정을 거쳐 내게 오는 길이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 후로는 옷에 대해 함부로 쉽게 말할 수 없었다.





옷이 좋은 건 실패가 없다는 거였다. 나한테 딱 맞는 옷을 사면 기분이 좋았고, 인터넷으로 사다 조금 안 맞는 옷을 살 때면 오히려 배움이 컸다. '아 이런 옷은 나한테 안 어울리는구나' 혹은 '아 이 정도는 나한테 조금 짧구나' 하는 식으로 하나씩 알아갔다. 실패라기보단 경험이라 생각했다. 이런 과정 속에서 배우다 보니 직접 옷을 입어보는 매장이 아닌 곳에서 옷을 사야 할 때면 디자인보단 소재와 사이즈에 먼저 눈길이 갔다. 옷을 살 때마다 매번 다 잘 맞았다면 이런 고민은 하지 않았을 테지만 옷을 사다 가끔은 실패를 해 봤기에 어떻게 하면 나한테 더 잘 어울리는 옷을 살 수 있을지 배울 수 있었다. 이런 경험들은 옷에 대해 더 알게 했고, 옷을 만드는 데도 많은 공부가 되었다.


옷을 만들면서 인생을 배울 수 있다는 것도 좋았다. 옷 한 벌을 만들기 위해서는 여러 조각들을 재봉틀로 봉제하면 됐다. 연결하기 위해 완성선을 제대로 봉제해야만 깔끔하고 온전한 옷이 완성되었는데, 재봉틀 속도 조절 실패로 실이 삐뚤빼뚤하게 박힐 수도 있다. 그럴 때면 실패했다는 생각 대신 실을 다시 풀어버리면 된다. 힘은 더 들고 시간은 몇 배로 걸리겠지만, 그것 또한 실패보단 경험에 가까웠다. 재봉틀은 손보다는 발로 조절하는 게 중요하다. 재봉틀 아래 페달을 발로 밟아야만 옷감에 실이 박히기 때문이다. 손을 사용하는 것보단 발을 사용하는 게 더 낯설기 때문에 실수도 많이 나왔다. 재봉틀 속도는 온전히 내가 조절해야 하는 것이기에 내 속도에 집중하는 법을 배울 수 있었고, 실을 박아 내는 것보단 풀어내는 게 더 오래 걸렸기에 속도보단 방향이 중요하다는 것도 알 수 있었다.


인생을 주로 길에 비유하는데, 길은 우리가 발로 딛고 서야 만날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편한 아스팔트 길이든, 험난한 흙길이든 우리 두 발로 걸어야 하는 길이다. 걷다 보면 힘들고 때론 쉬고 싶을 때도 있고, 지금 내가 가는 길이 맞는 길인지 확신할 수 없을 때도 있다. 하지만 우리는 걸으면서 깨닫는다. 어디로 가는 길인지 모를 때도 지금 내 앞에 주어진 일을 열심히 하며 걷다 보면 새로운 길이 보이고 이정표도 찾을 수 있다고. 남들보다 뒤처져 있다는 생각이 들 때도 그들과 내가 가는 길은 다르기에 빨리 가는 것보다 내 속도에 맞춰 가는 게 중요하다고 말이다.


빨리 끝내려고 속도를 내다보면 옷에 실이 잘못 박히거나 완성선을 침범하기도 했다. 완성선을 못 박은 옷들은 입었을 때 그 차이를 확실히 느낀다. 셔츠 어깨가 봉긋하게 튀어나온다든지, 원피스 허리 라인이 비대칭일 수도 있다. 가끔은 잘못 박힌 실을 일일이 손으로 다 풀어내야 했다. 속도만 빠르고 잘못된 방향으로 가는 옷은 엉망이 되고, 오히려 시간은 더 걸린다. 옷을 만들 때 발이 아닌 손으로 속도를 조절해야 했다면 이 뻔한 인생의 진리를 몸소 느끼지 못했을 것이다.





한 학기 동안 열심히 셔츠도 만들고 원피스도 만들었다. 옷에 대해 배우고, 동대문에서 원단을 사다 직접 옷을 만들면서 노력의 가치를 깨달았다. 옷은 내가 들인 만큼 뿌듯하다는 것, 내가 들인 시간과 노력만큼 가치가 있다는 것이었다. 여러 조각들을 몇 날 며칠을 걸쳐 붙이면서 옷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직접 보고 느꼈기에 그 가치의 의미를 알 수 있었다.


인생에서 내가 들인 만큼 노력의 가치를 인정받는 일이 얼마나 있을까. 공부를 열심히 해서 좋은 대학에 가야 한다는 말을 학생 때 지겹도록 들어왔다. 각자의 방식으로 열심히 노력해서 간 학교지만 학벌로 그 경계가 나눠져 내가 들인 노력의 가치를 그 자체로 인정받기 힘들기도 했다. 매년 대학 입시가 끝나면 누군가는 실패를 경험하고, 좌절했으며 가끔은 수험생 자살이란 이름으로 뉴스에 나오기도 했다. 전국 수많은 취준생들도 종종 입사 비리 소식을 들으며 20여 년간 자신들의 노력을 무시당한 채 이유도 모르고 낙방하기 부지기수였다. 내가 노력한 만큼 결과가 보장될 수만 있다면 많은 사람들이 우울과 불안을 격지 않아도 되고 소중한 생명을 쉽게 잃어버리지 않았을 것이다.


아무리 열심히 돈을 벌어도 집값은 계속 오르고 내 집을 마련할 수 있을지 의심이 갔다. 누군가는 태어날 때부터 편안하고 좋은 집에서 살지만 또 누군가는 반지하 혹은 월세를 전전한다. 당장 먹고사는 일이 급하기 때문이다. 어려서부터 열심히 공부하고 열심히 살아야 좋은 음식을 먹고 좋은 집에서 살 수 있다고 배웠는데, 성실하게 사는 모든 사람들 모두가 자신들의 노력을 인정받는 일은 드물어졌다. 그리고 이런 사실을 부유한 사람들과 그렇지 못한 사람들이 열심히만 산다고 그 격차를 뛰어넘을 수 없다는 것도 이제는 안다. 그래서 내가 들인 만큼 노력의 가치를 인정받는 일이 얼마나 의미 있고 소중한 일인지 깨달을 수밖에 없었다.


최근 2030 청년세대들이 주식에 열광하고 있는 것도 자신의 노력이 그 자체로 인정받지 않는 세상인 걸 알아버렸기에 주식을 통해서라도 그 욕구를 해소하고 싶은 마음일 것이다. 은행에 열심히 적금을 부어도 0~1%대의 금리로는 집도 차도 살 수 없기 때문에 불확실한 주식일지라도 투자하고 이윤을 내려고 하는 것이다.


하지만 옷을 만드는 일은 우리가 아는 세상과는 달랐다. 내가 시간을 들이고 노력한 만큼 그 결과가 보장됐다. 누구보다 꼼꼼하게 재단을 하면 옷을 봉제할 때 앞 뒤 차이가 덜 했고, 촘촘하게 시침질을 하고 봉제를 한다면 재봉틀 통제도 쉽고 완성도 높게 옷을 봉제할 수 있었다. 깔끔하게 다림질을 하느냐에 따라 옷태도 달라졌다. 이런 사소한 것들은 내가 들은 노력에 따라 완전히 다른 결과물을 낼 수 있었다. 대충 박고 대충 만든 옷은 결과적으로는 옷이 되었을지는 몰라도 소비자가 사고 싶은 옷은 아닐 것이며, 내가 입는다 해도 그리 만족스러운 옷은 되지 못할 것이다.


브레이브 걸스가 데뷔 4년 만에 역주행으로 1위를 차지했던 일이 우리에게 희망으로 다가왔던 것도 그동안의 노력의 가치를 인정받았기 때문이다. 물론 노래 자체가 좋았던 것도 있지만 가수 생활 자체를 포기하려던 순간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다. 그들은 악조건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았다. 데뷔 4년 동안 음반 활동도 쉬지 않았고, 돈도 안되고 왕복 거리만 4시간이 넘는 곳으로 군부대 공연을 간 것만 60여 곳이 넘었다. 우리가 브레이브 걸스를 보며 희망을 잃지 않게 된 것도 그들이 포기하지 않고 열심히 노력하다 보면 언젠가 된다는 말도 안 되는 성공 신화를 몸소 보여줬기 때문이다. 열심히 하지 않아도 태생에 잘난 사람들이 수두룩한 세상에서 성실함이 미련함으로 읽힐 때도 많지만, 그들 덕분에 성실한 건 미련한 게 아니라 자랑스러운 일이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게 됐다. 그러니 쉽게 포기하지 말라고. 언젠가 나 그리고 우리의 노력을 알아줄 때가 올 거라고.





다시 대학생이 된 후, 의상디자인을 공부하면서 옷은 실패가 없는 것, 뻔한 인생의 진리를 몸소 깨닫게 한 것, 내가 들인 시간만큼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다는 것을 배웠다. 옷은 이 모든 것을 한 번에 배우게 했고, 다른 전공이었다면 깨닫지 못했을 것도 깨닫게 했다.

옷은 우리 생활에 꼭 필요한 3가지인 의식주(衣食住)에서 가장 앞에 나온다. 그만큼 옷은 우리가 살아가는데 없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우리를 외부 환경으로부터 보호하는 수단이자 자기표현의 도구이 되기 때문이다. 자신의 체형에 맞고, 다양한 스타일의 옷들이 하루에도 수십, 수백 개씩 만들어지고 있다. 배우면 배울수록 알아야 할 것들이 더 많고, 옷을 만들면 만들수록 스스로가 부족해 보이지만, 그래도 알면 알수록 재밌는 것이 옷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옷 만드는 일이 즐겁다. 그렇다고 해서 모두가 옷을 알아야 하고 옷을 만들 필요는 없다. 직업에는 귀천이 없었고, 분업화된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누군가는 옷을 만들고 누군가는 옷을 살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옷이 아닌 다른 어떤 것이라도 자신에게 충분히 깨달음을 줄 것들이 많다. 옷을 배우는 과정이 쉬운 일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선택한 길이었고, 그래도 내가 배우고 싶던 것을 배우면서 스스로 한층 더 성장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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