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막창,열정적일 때가 있었다

by 미래

매운맛일 당길 때가 있다. 스트레스를 받을 때면 속이 쓰릴 정도로 매운 음식이 먹고 싶었고, 기분이 울적한 날에는 혀가 좀 아릴 정도로 매운 요리가 먹고 싶었다. 매운맛에 내성이 쌓여서 인지, 먹을수록 더 강하고 자극적인 맛을 찾았다. 웬만한 맵기로는 스트레스를 해소시켜주지도, 기분이 전환되지도 않았다.


불막창 정도의 맵기가 적당했다. 엽기적으로 매운 떡볶이는 보통맛 이상을 먹어줘야 먹는 맛이 났지만, 다음날 모든 장기가 정상적으로 작동하리라 보장할 수 없었기에 웬만하면 자주 먹지 않았다. 그렇다고 매운 라면이라고 소문난 라면은 내게는 어딘가 2% 부족한 정도였다.


불막창을 먹을 때면 생각했다. 나도 저렇게 불처럼 강할 때가 있었다고.

눈으로 그 열정이 보일 때였다. 혀가 느끼는 다양한 맛과 감각을 매운맛이 다 상쇄시키는 것처럼, 그때의 열정으로는 두려울 것이 없었다.


생각해보면 누구나 열정을 다하는 시기가 있다. 그 시기는 사람마다 다르지만, 눈에 보일 정도의 열정이 있던 때가 있었기에 지금의 우리가 있다. 그리고 하나에 몰입하고 모든 힘을 다 쏟았던 기억을 가지고 산다. 때론 그때를 그리워하고, 또 가끔은 현재를 반성하면서 말이다.


현 시국엔 많은 사람들이 열정보단 절망 속에 있다. 1년 반 넘에 지속된 바이러스 난에 지쳤고, 백신 접종이 계속되는 동안에도 4차 대유행이 다시 시작되었다. 좀처럼 이동이 자유롭지 않았고 제약도 많았다. 열정과 정열을 뜻하는 붉은색이 이제는 우울감과 분노를 뜻하는 말로 변해갔다. 코로나 레드는 새롭게 시작하려는 마음들을 모두 삼켰고 절망으로 가뒀다.


이제 어디서 그 열정을 되찾아야 할까. 절망과 분노 속에선 아무리 매운맛으로 달래도 이전처럼 되돌아가긴 힘들었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선 뉴 노멀을 받아들여야 했다. 외적으로는 코로나 레드라고 불러도 내적으로는 새로운 열망의 불꽃을 피워야 했다.


작은 불씨로도 강한 힘을 냈다. 그러니 주저 않지 않아도 됐다. 색이 의미를 결정한다기보다 색에 무슨 의미를 부여하느냐에 따라 달랐기 때문이다. 우리는 레드를 우울과 불안으로 인한 분노가 아니라 주식시장의 상승처럼 희망으로 기억해야 한다.


매운맛으로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기분전환을 했던 것처럼, 빨간색을 생각하면 힘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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