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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래 Jul 23. 2021

소고기 미역국, 살아 있음에 감사하며

생일에 미역국이 빠지면 서운하다. 그렇지만 굳이 생일이 아니더라도 평소에도 쉽게 먹을 순 있었다.


기숙사에서 대학 시절의 절반을 보낸 적이었다. 학생 식당은 돈이 많이 들어 자주 이용하지 않았고, 대부분을 배달 음식으로 때웠지만 허기는 금방 채워지지 않았다. 자극적인 배달음식은 금방 물렸고 살은 계속 불어났다. 체력이 떨어짐을 느낄 정도였다. 그때부턴 수업 가기 전, 오후 수업 끝나고, 잠들기 전 하루 세 번을 거의 소고기 미역국으로 먹었다. 그때부터 내 주식은 거의 엄마가 박스로 보내준 레토르트 소고기 미역국이었다.


인스턴트였지만 대기업이 공들여 만든 만큼 맛은 좋았다. 그래도 집에서 엄마가 만든 것에 비하면 아니었다. 밖에 나가면 고생이었고 역시 최고는 집밥이었다.

졸업하고 집으로 들어와서 '진짜 미역국'을 먹을 일이 많았다. 1년만 해도 몇 달 주기로 가족들의 생일엔 미역국을 먹었고, 평소에도 미역국은 자주 상에 올랐다. 기숙사에서 먹던 미역국과 집에서 직접 끓여 만든 미역국은 느낌부터 달랐다. 기숙사에선 정말 살기 위해 먹었다면, 집에선 살아 있음을 느끼며 먹었다. 미역이 산모에게 좋다며 자식을 낳은 부모들이 주로 많이 먹었다고 한다. 직접 끓인 소고기 미역국을 먹을 때면 건강하게 태어나게 해 주심에 절로 감사하게 됐다.


그 후로 내게 미역국은 생일이 아니어도 생일처럼 한 끼에 감사하며 먹을 수 있는 음식이라 생각했다. 미역국에 밥 한 공기면 충분히 풍족하게 즐길 수 있었다. 1년에 한 번뿐이 아닌, 매일을 축하할 수 있는 밥상이었다.

미역국은 오랜 시간 정성을 다해 끓여낸 만큼 깊이가 있었다. 깊이 우러난 국물만큼 더 진한 사랑을 느낄 수 있었다.

매일 먹는 밥 한 끼를 소중하다 느낀 적이 있던가. 가끔은 반찬 투정을, 맛있는 요리들을 원했지만, 미역국을 먹는 날엔 함부로 말을 꺼낼 수 없었다.


매일 먹는 밥, 하루 세끼 중 한 번이라도 즐길 수 있다면, 그 오늘이 더할 나위 없이 행복했다.

미역국으로 세상에 태어난 나를 축하했고, 그 세상에서 잘 살아가고 있음을 확인받았기 때문이다.

누구나 태어나서 한 번 이상은 미역국을 먹었을 것이다. 미역국을 먹으며 부모님에 대한 감사함에 더해 오늘도 잘 살아가고 있음을 알게 됐다.


힘들좌절할 때마다 미역국을 생각하자. 엄청난 고통과 축복 속에서 태어난 나임을. 그리고 나란 존재는 언제나 소중하다고. 잘하고 있다고 응원하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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