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마니아의 독재정권 아래 나라의 인구수를 늘리겠다는 목적으로 낙태와 피임을 금지했던 시기를 그린 영화이다. 이 영화가 루마니아의 영화가 아니더라도 현재 우리나라의 실제적 모습을 많이 볼 수 있었다.
임신과 낙태. 오로지 여자의 몫이다. 특히 원치 않는 임신이었을 경우에는 더더욱 여자에게 책임감을 부여한다. 이 사회의 제도의 문제이기도 하며 법이 여성을 배려하지 않고 그저 생명을 위협한다는 명목 하에 여성의 성적 자율권을 배제한다.
이 영화는 애매한 이 제목과 함께 그 애매한 임신의 시간과 남성과 여성의 경계를 이야기하는듯한다. 임신을 목적으로 남녀가 관계를 가졌든 가지지 않았든 오로지 관계 후 일어날 모든 일의 책임은 여성에서 돌아간다. 여기서 남성은 임산과 출산 낙태의 문제에서 한 발짝 물러나 있다. 관계를 둘이 가졌어도 상황에 대한 감정과 사건은 여성 혼자의 문제가 되는 것이다.
오틸리아와 가비타는 학교 기숙사 룸메이트이다. 가 비타의 임실 중절 수술을 위해 오틸리아는 호텔을 예약하고 가비타의 임신중절 수술을 돕는다. 임신중절 수술이 불법인 시기에 학생 신분으로 어렵게 구한 돈으로 간신히 수술을 해주겠다는 베베를 만나는데 호텔을 예약하는 것도 수술을 시작하는 것도 쉽지 않다. 베베는 자신이 불법수술을 해주는 것에 따라 위험부담이 크다는 것을 내세우며 돈뿐만 아니라 여성의 성을 요구하기도 한다. 성적 자율권을 보장해주지 않는 제도 속에서 여성은 언제나 약자일 수밖에 없다.
오틸리아의 시점으로 그리며 이 사회에서 여성이 어떠한 존재로 보이는지를 나타내고 있다. 이 영화에서 가비타가 임신중절을 수술을 할 수밖에 없도록 만든 그 가해자인 아기 아빠인 남성은 어디에 있는지 존재조차 보이지 않는다. 어떠한 감정으로 어떠한 상황 속에서 그 관계가 시작되었건 관계가 끝난 후에는 그 책임이 오로지 여성에게만 돌아가게 하는 그 사회적 제도도 문제이다.
이 영화를 보면서 한국사회의 모습이 많이 보인다. 낙태 수술이 불법이긴 하지만 어디선가 그 수술이 행해지고 있으며 누군가는, 그 여자는 불안과 공포에 떨고 있을 것이다. 사회 속에서 모든 책임을 떠안는 여성의 심정이 어떤 건지 롱테이크로 그 감정을 극대화하여 영화가 아닌 극단적 사실주의로 보인다. 한국에서도 마찬가지로 관계를 시작한 여성의 수치스러운 잘못이고 부도덕한 일로 포장한다. 실제로 그 무책임한 가해자는 법적 처벌도 받지 않으며 이러한 문제에 대해 남성이 얼마나 관여하지 않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오틸리아는 룸메이트인 가비타를 도와주는데 자신의 남자 친구와의 연애에서 여자로서 자신이 어떤 환경에 처하게 될지가 보였을 것이다. 관계를 하고서 자신이 임신을 하게 되면 어떻게 하겠느냐고 남자 친구에게 묻지만 오틸리아가 들은 대답은 고작 글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것뿐이었다. 여성이 관계에 있어서 얼마나 두렵고 걱정하고 있는지, 그 후에 일어난 일에 대해 어떠한 책임을 지고 가야 하는지를 실감 나게 보여주고 있다. 오틸리아가 가비타를 도와줌으로써 사회의 여성이 연대하고 있음을 보여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