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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량한 May 17. 2023

과학 분야의 음모론자들: 음모론은 왜 사라지지 않을까

지구 평평설, 달 공동설, 달 착륙 조작설 등등..



지구 평평설, 달 공동설, 달 착륙 조작설 등등..


고도로 발달한 과학의 시대에도 왜 비과학적 음모론은 사라지지 않을까. 사라지기는커녕 체감상 오히려 늘어나는 기분이다.



단순히 무지 때문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현대의 과학기술은 이미 일반인들의 이해 영역을 아득히 넘어선지 오래다.다수의 사람들이 과학으로 무장했기 때문에 음모론을 믿지 않는 걸까. 오히려 일반인보다 높은 과학 지식을 갖춘 음모론자들도 많다. 나는 오히려 이 문제의 원인을 인간의 본성에서 찾으려 한다. 인간으로서 자기만의 이야기를 상상하고자 하는 본성 말이다.


전근대 시대에는 우주와 세상에 대한 상상이 자유로웠다. 달에는 떡방아를 찧는 토끼가 있었다. 지구는 당연히 평평했고, 그 땅을 코끼리가 받치고 있었다. 밤하늘의 별자리는 각자의 사연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 이야기들은 지역마다 조금씩 차이가 있었고, 다시 개별적으로 조금씩 차이가 있었다. 자기만의 우주 이야기를 상상하던 시절이다. 과학적인 사실들이 밝혀지기 이전이기에 누릴 수 있었던 자유로움이다. 누구나 자기만의 이야기를(곧 가설을) 제시할 수 있었다.



하지만 계몽과 이성을 지향하는 근대 과학 이후로 그런 상상은 무식한 일이 되었다. 그렇게 상상력은 과학에 포박 당할 수밖에 없었고, '감히' 우주에 대해 상상하고 가설을 내세울 수 있는 자격은 일부 과학자들만의 일이 되었다.

문제는 인간의 마음 속에는 자기만의 이야기를 상상하고자 하는 욕구가 그대로 남아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현대의 음모론자들은 마치 개인적인 상상력을 지키려는 수호자들처럼 보이기도 한다. 과학에 묶인 상상을 해방시키는 것이다.


그런 음모론자들을 상대로, '과학을 제대로 몰라서 그런 것이다'라며 무지를 깨워주려 한다면 과연 큰 효과를 볼 수 있을까. 깨달음을 얻기만 하면 마치 잠에서 깨어난 사람처럼, 혹은 병마에서 치유된 환자처럼 단번에 생각이 바뀔까. 그들은 아마 더 기상천외한 논리로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할 것이다.



그럼 현대의 과학자들은 결국 음모론을 분쇄시키지 못하고 이대로 패배하고 마는 것일까. 아니, 이미 패배한 것인가.

하지만 그럼에도 나는 이것이 패배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왜냐면 음모론자들은 오히려 과학의 틀 안에서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지구가 평평하다고 믿기는 하지만 해와 달과 별들이 하늘에 매달려 있다고 말하지는 않는다. 지구를 코끼리가 떠받들고 있다고 말하지도 않는다. 나사(NASA)가 달 착륙을 조작했다고 믿기는 하지만 달에 떡방아를 찧는 토끼가 있다고 주장하지도 않는다. 음모론자들이 만들어낸 이야기들은 전근대의 상상력과는 분명히 다르다. 그들은 근대 과학의 상식(?) 안에서 상상하고 있다. 상상의 토대는 분명 (시대가 많이 뒤쳐지긴 했지만) 근대 과학에 있다. 그렇지 않았다면 그들의 주장은 더욱 더 소수의 지지만을 받았을 것이다. 정신병자라고 조롱당하며 무시해도 좋을 정도의 소수 말이다.(전근대의 과학자들이 당했던 일이기도 하다)



비과학적 음모론자들은 스스로를 합리적이라고 믿고 자신들이 믿는 바를 합리적으로, 그리고 과학적(!)으로 증명하려 노력한다. 합리성과 과학적 사고는 근대성의 특징 아니던가.


이렇게 합리적으로 사고하려는 본성 또한 인간이 가진 본성일 것이다. 우리는 상상력과 합리성 모두를 쥐고 있는 복잡한 존재다.


그렇기에 음모론자들이 과학자들에게 도전장을 내민다면, 과학자들 입장에선 대단히 난처한 일이 된다. 얼토당토한 개인적 상상을 상대해야 하기 때문이다. 소설을 평가하는 건 과학자가 할 일이 아니다. 과학자들이 그들의 이야기를 진지하게 들어줘야 할 의무는 없다. 단지 음모론이 과학의 발전과 공공의 이익을 가로막을 수준으로 성장한다면, 그것을 막기 위해 맞서야 할 필요는 있겠다.



헌데 다시 생각해 본다면, 음모론자들이 딱히 과학자 말고 누구한테 가서 따져묻는단 말인가. 과학 또한 상상력과 합리성으로 이뤄진 영역이거늘.


음모론자들과 과학자들이 처한 이 웃지 못할 상황을 보고 있자면 인간의 필사적인 몸부림이 느껴진다. 그것은 마음 속의 본성을 실현시키고자 하는 몸부림이다. 현재로서는 어느 쪽으로든 시원하게 해갈될 수 없는 본성같다. 과학은 아직 모든 걸 설명할 수는 없다. 하지만 그걸 이유로 과학을 무시하기에 과학은 너무도 엄청난 일들을 해냈다.


그렇다고 음모론자들이 그저 과학자들의 이야기를 무조건 외워서 '치유'해야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아무런 비평없이 과학자들의 주장을 무조건적으로 받아들이는 건 그야말로 가장 비과학적인 자세다. 그것은 무조건 과학자들의 말을 믿지 않는 것만큼이나 위험하다. 그런 자세를 견지하고 있는 다수의 사람들이 음모론자들을 비웃을 자격이 있을까. 과학자들이 경계해야 하는 것은 오히려 그쪽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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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blog.naver.com/alryangh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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