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한 변주로 살아남은 순수남 혹은 사이코패스
'차도남'이라고 간단하게 정의 내리긴 했지만, 정확하게 말하면 '타인의 감정에 공감하는 능력이 현저히 떨어지는 차가운 감성의 남자 주인공' 정도가 될 것이다. 이런 모습은 얼핏 로봇처럼 보일 정도다. 보통 반대 성향을 가진 여주인공이 남자 옆에 배치되는데, 거의 감성과 감정의 덩어리로 묘사된다. 남자가 철두철미 하다면 여자는 실수 투성이. 그런 식으로 여자의 인간미를 강조하려는 게 흔한 경우다.
이런 남자 캐릭터들은 알고 보면 상처받은 내면을 가지고 있거나 마음 깊은 곳에 여린 면을 숨기고 있는 순수한 사람으로 그려진다.
여기서 핵심은 여주인공이 이 남자에게서 따뜻한 인간성을 이끌어낸다는 것이다. 이 남자의 차가운 마음을 녹여 따뜻한 마음을 갖게 하는 데에 여자 주인공의 임무가 있다. 그리고 차도남을 소비하는 시청자들에게 어필하는 면도 바로 그것이다. 어떻게 보면 사회화가 덜 된 미개인이나 미숙한 어린아이를 성장시키는 과정처럼 보인다.
드라마 속 차도남은 흔하게는 재벌 2세, 혹은 실장님 캐릭터에서 시작해 각종 사극 속 조선시대 왕으로 변주되거나, 심하게는 외계인(〈별에서 온 그대〉), 북한군 장교(〈사랑의 불시착〉) 등으로 겉모습을 바꾼다.
최근에는 ‘나이스한 개새끼’로 널리 알려진 〈더 글로리〉의 하도영으로 그 변주의 폭을 넓혔다. (문동은 옆을 지키고 있는 '주여정'도 또 다른 변주의 예가 아닐까 의심된다)
소설에서의 변주를 생각해 보면 단연 손원평의 『아몬드』가 떠오른다. 주인공인 열여섯 살 소년 선윤재는 '감정 표현 불능증'을 앓고 있다.이 캐릭터를 청소년 소설 버전의 차도남으로 불러도 좋지 않을까. 여기서도 남자 주인공은 마지막에 이르러 공감 능력을 배우게 된다. (동성 친구에 의한 것이었지만 죽은 엄마와 할머니 등 여성들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러고 보면 『아몬드』가 청소년 소설임에도 성인 독자들에게까지 인기를 끌었던 이유가 차도남 코드에 있는 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물론 모든 이야기에서 차도남을 좋게 그리는 건 아니다. 최근에 읽었던 이두온의 『러브 몬스터』에 나오는 차도남은 여자들의 마음을 이용하는 사이코패스로 그려진다. 그는 여자에게 사랑을 받아도 전혀 변화받지 못하고 오히려 더 추한 인간이 된다. 그에 답하기라도 하듯 작가는 캐릭터에 아무런 변화도 주지 않고 그대로 죽음을 맞이하게 한다. 차도남에 대한 경고처럼 느껴지기도 하는 소설이다.
『러브 몬스터』의 표지는 『아몬드』와는 다르게 강렬한 여자의 얼굴로 가득 차 있다. 무감각한 소년의 얼굴로 장식된 『아몬드』의 표지와 정면으로 대비되는 모양새다. 차도남 변주의 끝은 차도남 혐오가 아닐까. 그렇게 독자는 둘로 나뉜다. 차도남을 소비하는 사람과 혐오하는 사람으로. 어떤 소설 유형의 극과 극을 본 것 같은 기분이다.
어쨌거나 차도남을 향한 수요는 언제나 일정 부분 존재해 왔다. 왜 그런 요구가 계속되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어떤 식으로든 변주를 통해 계속해서 등장할 거라 예측해 볼 수 있겠다. 앞으로 얼마나 다른 외피를 뒤집어쓴 차도남이 등장할지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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