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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량한 Apr 26. 2019

칼뱅

16세기라는 거울

그는 사이를 잇는 존재였다.

구교와 신교, 중세와 르네상스, 학계와 신학계, 세속 권력과 교회 권력, 외국인과 자국인, 루터와 루터 이후...
그리고 거기에 머물지 않고 그는 양쪽 모두와는 구별되는 자기만의 시선을 갖게 되었다.

그런 사실을 잘 보여주는 예가 성찬에 대한 칼뱅의 입장이다.

사실상 칼뱅은 성찬 논쟁에서 다른 진영들의 주장에 대해 비판하면서 자신만의 독특한 입장으로 옮겨 가고 있었다. 로마 가톨릭교회에 반대한 그는 미사를 우상숭배로 비난하는 프로테스탄트 합창단의 일원이 되었다. 츠빙글리파에 반대한 그는 이들이 빵과 포도주에 그리스도가 임재한다는 것을 거부하면서 버린 것이 너무 많다고 주장했다. 최종적으로 칼뱅은 그리스도가 성령을 통해 육체로 임재한다고 주장하는 루터파의 편재설에도 공감하지 않았다. p. 305


그리고 그런 중간자적 역할은 양쪽 모두를 설득하고 만족시켜야 했기에 고도의 지적 능력과 확신, 그리고 사명감을 필요로 했다.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칼뱅의 고민은 그리스도가 성례 안에 물리적으로 임재한다고 주장하지 않으면서도, 하나님이 성찬을 통해 역사하신다는 것을 표현할 수단을 찾아내는 것이었다. 또한 그는 츠빙글리파와 루터파를 소외시키지 않으면서도 이것을 성취해야만 했다. p. 305


종교 개혁의 문은 열렸지만, 이후의 상황은 굉장히 혼란스럽고 복잡해진다.
반대할 때는 뭉치기가 쉽다. 하지만 지지해야 하는 순간이 오면, 의견이 갈리기 시작한다.
우리는 박근혜 탄핵을 거치면서 똑똑히 보아오지 않았나.

책은 그런 혼란의 중심에 서 있던 칼뱅이, 자신이 믿었던 교리를 유럽 전체에 설득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일생을 꼼꼼하고 균형 있게 담아내고 있다. 그것을 가능하게 하기 위해서는 우선 방대한 분량이 필요했다. 그것을 다 읽어낸 후에야 어렴풋하게 그림이 그려진다.

처음에는 칼뱅이란 사람에 대해 알고 싶어서 읽기 시작했지만, 칼뱅의 사역들을 보면서 계속해서 한국 교회의 개혁을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지나치게 부패하고 엉뚱한 곳을 향하고 있다는 면에서 종교 개혁 당시의 가톨릭과 흡사하기 때문이다. 칼뱅을 비롯한 개혁가들의 노력도 무색하게, 오백여 년 만에 다시 교회는 개혁을 필요로 하고 있다.

그래서 칼뱅의 사역들은 ‘우리의 개혁은 어떻게 해야 할까’ 하는 거울로 삼아 보게 된다.
칼뱅이 이스라엘 백성의 교훈을 거울삼았듯이 말이다.

다윗의 나라는 그리스도의 나라의 예표였으며, 이스라엘 백성의 경험은 16세기 사람들에게 교훈과 지식을 준다. 칼뱅의 말로 하면, 이들은 거울을 통해 자신을 본다. p. 507


재미있었던 점은, 종교 개혁을 주도했던 칼뱅 본인마저도 수없이 많은 이단 논쟁에서 자신을 증명해야만 했다는 것이다. 아직 기준이 분명하지 않은 시대였기 때문에 더욱 그래야만 했을 것이다. 그리고 자신이 이단이 아님을 증명하는 과정이 칼뱅의 사상을 단단하게 만든 것 같다. 우리는 ‘가짜’와 어떻게 다른 ‘진짜’인 걸까. 한국 교회가 개혁을 미루고 있는 동안 ‘신천지’같은 이단이 개혁의 탈을 쓰고 기존 교회들을 비판하고 나서는 판이다. 우리는 그들이 틀렸고 우리가 옳음을 어떻게 증명할 수 있을까.

결국 근본으로 돌아가는 수밖에 없다.

칼뱅은 다시 1세기 초대 교회와 교부들에게로 돌아갔다. 특히 그는 사도 바울의 적자를 자처했다. 바울과 자신 사이에 있는 천오백 년의 시간은 큰 의미가 없었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근본이 무엇인지를 따지는 것부터가 중요했다. 예수님에게로, 성경에게로, 초대교회의 정신으로. 칼뱅에게 가톨릭의 그 휘황찬란한 장식들은 모두 무의미했다.

“우리의 믿음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에 기초해서는 안 되며, 하나님이 우리에게 약속하신 것에 기초해야 합니다. 바울이 말했듯이 믿음은 들음에서 오는 것이며, 사람이 만들어 낸 모든 말을 듣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만을 듣는 것입니다.” p. 519


칼뱅 개혁의 또 다른 교훈은 타협 없는 고집이다. 물론 칼뱅도 수없이 많은 타협을 했다. 전략적인 고지를 선점하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칼뱅에 대한 이미지는 여전히 고집스러운 신학자다. 그리고 실제로 그는 타협을 극도로 싫어했고, 어쩔 수 없을 때만 우회적으로 했다. 수많은 친구들과 등을 돌렸다.

개혁은 기본적으로 기성과의 충돌이고 전복이다. 그런 역동적인 변화를 온건한 방식으로 이루려는 건 안일한 생각이다. 수많은 순교자들이 있었다. 칼뱅도 조국에서 쫓겨나 망명인이 되었다. 개혁은 전쟁을 동반했고, 일상생활을 불안으로 물들게 했다. 그 모든 것들을 걸고서라도 이뤄내야만 하는 중요한 문제였다. 칼뱅은 거침이 없었다.

설교자와 예언자의 몫은 건전한 교리로 훈련받는 것뿐만 아니라, 공격과 거절도 버텨 내는 것이다. 칼뱅은 저항을 바른 설교의 표지로 여겼다. 설교자는 청중과 대적하는 상황을 피하려고 해서는 안 된다. 거친 말도 자주 필요하다. p. 521


개혁은 한 사람의 힘만으로는 할 수 없다. 칼뱅의 주변에도 그를 돕는 지지자나, 동료들, 비서들이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개혁파 교회 공동체가 있었다. 칼뱅은 온 생애를 바쳐 개혁을 완성하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결국 그는 바턴을 넘길 수밖에 없었다. 여호수아에게 이스라엘을 맡기고 눈을 감아야 했던 모세처럼 말이다.

유언에서 칼뱅은 자신의 약점에 주목했다. “그러나, 아아 슬프다, 내가 그렇게 묘사하는 것이 가능하다면, 내 욕망과 열정이 너무 식고 줄어들어서 이제 나는 내 존재와 행동이 모든 면에서 불완전하다는 것을 잘 안다.” p. 590



그래서 그에게는 교육이 중요했다. 젊은 목회자를 양성하는 것은 그에게 마지막 사명과도 같은 것이었다. 칼뱅의 이론을 배우고 익혀 더욱 발전시켜줄 후계자들, 그들은 개혁 교회가 세워지는 전 유럽으로 파송되어 개혁 교회의 기틀을 잡았다. 칼뱅의 역할은 거기까지였고, 그의 이론이 완전하든 그렇지 않든 간에 그는 자기 역할을 제대로 수행한 셈이다.


그는 제네바를 교회의 지도자로 세우는 데 아카데미는 필수라 보았기에, 새 건물들을 짓고 도서관을 만들고 수준 높은 교사를 임명하기 위해 끊임없이 일했다. 아카데미가 너무 늦게 설립되어 칼뱅이 중요한 역할을 하기는 어려웠지만, 그가 남긴 유산의 핵심 부분이었다. 제네바 아카데미는 성직자를 가르치기 위해 집필한 『기독교강요』와 함께 제도적 뼈대가 되었다. 따라서 그의 『기독교강요』 라틴어 최종판이 등장한 해에 아카데미가 문을 연 것은 우연의 일치라 하기 어려워 보인다. p. 531



마지막으로 얻은 교훈이라고 하면, 무엇보다 개혁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우리는 할 수 없더라도 하나님은 하실 수 있다는 믿음. 누구라도 칼뱅이 직접 시편을 해설하면서 한 말을 보면 그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비록 교회는 망했지만, 그[시편 기자]는 하나님이 그분의 놀라운 능력으로 교회를 죽음에서 새로워진 생명으로 다시 일으키실 것을 확신한다. 이것은 교회가 항상 외형적으로 살아남은 것처럼 보이도록 보존되는 것이 아니라, 죽은 것처럼 보이는 때도 언제든지 하나님이 기뻐하시기만 하면 순식간에 새로 창조된다는 것을 보여 주는 놀라운 구절이다. 그러므로 교회를 무너뜨리는 어떤 황폐한 상황도, 하나님이 이전에 무에서 세계를 창조하신 것과 마찬가지로 교회를 사망의 흑암에서 불러내시는 것이 그분의 합당한 일하심이라는 소망을 우리에게서 빼앗지 못하게 해야 한다. p. 510

확신을 가진 다음 필요한 것은 오직 인내뿐이다. 칼뱅은 그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육체적 고통 속에서도 끝내 자신의 역할을 다 해냈다.

반면, 인내는 숨겨진 목적을 드러내시는 하나님을 기다리는 능력이다. 순례는 세상의 악에 저항하는 투쟁이며, 고통은 그리스도인에게 할당된 몫이다. 오직 세상보다 하나님을 더 사랑하는 이들만 승리할 것이다. p. 591

오백여 년이 흐른 지금, 바턴은 우리에게 넘어온 것 같다. 칼뱅의 16세기를 ‘거울’로 삼은 우리의 개혁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숙제다.



알량한 블로그

(http://blog.naver.com/alryangh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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