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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량한 Jul 26. 2021

〈에브리원 세즈 아이 러브 유〉: 뮤지컬에선 다 된다

판타지를 현실로 끌고오는 뮤지컬의 힘

훗날 〈미드나잇 인 파리〉에서 다시 반복되듯, 허황된 판타지는 현실에 존재할 수 없다고 말한다.



로맨틱한 판타지(뮤지컬 영화가 주로 내세우는 것)는 여자들이 주로 꿈꾸는 것으로 그려진다.

진보(갓 출소한 소시오패스를 식사에 초대하는)와 보수(두뇌의 이상으로 그려짐)의 정치적 이념 같은 것들도 그런 판타지 중 하나.

혹은 우디 앨런이 줄리아 로버츠를 꼬실 수 있다는 완전히 허황된 판타지. 아니면 전 남편과 현 남편이 친구처럼 지낼 수 있다는 판타지. (애당초 우디 앨런이 골디 혼이랑 어떻게 결혼했지?)


그런데 그 판타지들이 뮤지컬 노래가 시작되면 현실이 된다. 거기서는 성별, 인종, 계급의 경계가 사라지고 심지어 산 자와 죽은 자의 경계도 사라진다. 모두 일사분란하게 어울려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른다. 그 속에 불협화음은 존재하지 않는다.



허황된 판타지는 뮤지컬 속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현실이 된다. 현실의 무게를 비웃으며 가뿐하게 하늘로 날아오른다. 막스 브라더스의 영화는 그 상징과도 같다. 이게 다 뉴욕의 백인 상류층이기에 가질 수 있는 낙천성인지도 모르겠다. 혹은 뉴욕, 베네치아, 파리를 오가는 상류층의 생활 자체가 허황된 판타지거나. 어쨌든 관객은 그 판타지(뮤지컬)를 사랑하니 된 것 아닌가. 우디 앨런은 영화 자체가 판타지임을 잘 알고 있다.



알량한 블로그

(http://blog.naver.com/​alryangh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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