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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량한 Jul 02. 2021

『트릭 미러』 : 신앙과 엑스터시의 공통점?

저자가 왜곡 거울을 피하지 못한 순간




지적 통찰과 솔직한 자기 반성이 돋보이는 이 책 안에서, 5장 ‘엑스터시’ 부분은 이례적으로 명백한 궤변이다.

저자의 고백에 의하면 그는 전형적인 ‘왕년의’ 기독교인이다. 아동기 때의 순수한 신앙과 뒤이어진 청소년기의 혼란과 반항. 마침내 성인이 된 저자는 신앙을 포기하고 그동안 금지됐던 것들(엑스터시와 대중음악)에 심취한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순수했던 아동기의 신앙을 그리워한다. 그래서 마약에서 그 당시의 황홀경을 찾으며 마약과 신앙을 동일시 하기 시작한다. 단순히 그 두 가지 황홀경의 효과가 유사하다는 이유로 말이다. 여기서부터 논리의 비약이 이뤄진다.



기독교 신앙은 온전히 황홀경만으로 이뤄진 것이 아니다. 신앙은 가끔씩 있는 자극적인 이벤트가 아니라 숨쉬는 것처럼 곁에 있는 일상 그 자체다. 오히려 지극히 무미건조할 수도 있는 게 신앙이다. 물론 거기에 신비한 면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황홀경이 전부인 것도 아니다. 그렇다면 신자들은 뭐하러 성경을 읽고 하나님의 말씀을 이해하기 위해 애쓸까. 그럴 바엔 그냥 마약을 하는 게 훨씬 쉽고 빠른 길일텐데.


저자는 분명 신앙에 회의감을 느끼고 그것을 떠났지만, 교회의 영향력에서 완전히 벗어나지는 못한 것 같다.

황홀경을 찾아 마약에 빠졌으면서, 또 그런 자신을 정당화 하기 위해 마약의 종교적인 면을 내세운다. 왜 그래야 할까. 그것은 죄책감 때문이다. 여기에 자기모순이 있다. 기독교인이 아닌 이상 엑스터시를 하는 자신에게서 ‘기독교인적인 죄책감’을 느낄 필요는 없다. 하지만 그 죄책감을 해결하기 위해 그 두 가지를 동일시해야 했던 것이다.이쪽도 저쪽도 온전히 즐기지도, 벗어나지도 못하는 모양새다.


그런 자기 모순을 해결하기 위해 지적인 사례를 끌어와 자기 논리를 보충한다.하지만 자기 내부의 모순이 해결되지 않는 이상 어떤 도움을 받더라도 그 논리는 궤변이 될 뿐이다. 책 한가운데 낀 이 챕터에서 저자는 명징하게 의견을 펼치던 통찰력을 잃고 의중을 알 수 없는 두루뭉술한 이야기만 반복한다. 트릭 미러(왜곡 거울)를 벗어나 제대로 된 시선으로 자신과 사회를 바라보려던 저자의 의도가 빗나간 순간이다. 자기 기만을 극복하기란 그렇게나 어렵다. (이 책의 원 부제는 "자기기만에 대한 고찰"이다)


저자는 바로 다음 챕터에서 ‘가장 쉽고 빠르게 이기는 방법은 사기를 치는 것’(260쪽)이라는 밀레니얼 시대의, 일종의 시대정신에 대한 비판을 한다. 나는 이 말이 정확히 저자가 황홀경을 위해 엑스터시를 복용한 것을 가리키고 있다고 생각했다. 종교적 황홀경은 오랜 시간 신앙에 몸담은 자들이 이따금씩 경험하는 일이다. 저자는 처음으로 '에시드'라는 환각제를 통해 '모세 앞에서 불이 붙은 떨기나무처럼'(245쪽) 주변이 이글거리는 것을 체험한다. 모세가 떨기나무에 붙은 불을 발견한 것은 80대의 나이에 들어선 후다. 그 전 40년 동안 광야에서 양치기 생활을 했어야 했다. 저자는 당장의 황홀경을 원했고, 그걸 가능하게 한 것이 신앙이 아니라 마약이었던 건 당연한 일이다.


기독교 신앙의 황홀경은 무당이나 점쟁이가 주문을 중얼중얼 외면 필요할 때마다 신내림을 받는 것과는 다르다. 때로는 평생에 걸쳐 하나님의 응답을 기다려야 할 때도 있다. 이유는 알 수 없다. 그저 그 기다림마저 섭리의 일부라는 사실을 믿을 수밖에. 저자의 주장대로 그런 기다림이 사라진 즉각적인 반응이 이 시대의 평균 속도가 되었다. 하지만 그런 신속한 실현을 약속하는 건 보통 신기루일 뿐이거나 사기꾼의 덫이다. 진지한 신앙인이라면 마약 정도와는 비교할 수 없는 수준의, 온 생애를 관통해 일어나는 잔잔한 기적을 바라며 살아갈 터다.



알량한 블로그

(http://blog.naver.com/alryangh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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