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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량한 Jun 23. 2021

『사이보그가 되다』: 미래로 떠넘겨진 현재의 문제

장애 문제를 자꾸 과학적 치료에 맡기는 진짜 이유는 무엇인가

책(3장)에서 김초엽은 ‘기술 낙관론에 기반한 비장애중심주의(테크노에이블리즘)’를 소개하며, 기술로 장애인을 ‘치료’하는 데에만 집중하는 사회의 태도를 지적한다.


장애를 치료하고 제거해야 할 ‘질병’ 정도로 취급하고, 정상적인 상태로 되돌리려고만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어차피 장애를 완벽하게 ‘제거’해줄 과학 기술은 구현돼 있지도 않고, 아주 먼 미래에나 가능한 기술일테니, 만약 그렇다면(곧,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오히려 현재 장애인들의 삶을 인정하고 현재 그들의 어려움을 제거하는 데 노력과 재화를 쏟는 게 맞다는 주장이다.



물론 이는 타당한 말이지만, 나는 반쪽만 설명한 말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과학 기술로 장애를 제거하는 데만 노력을 집중하는 것은, 그것이 ‘더 정상성에 가깝게 여겨지기 때문’(87쪽)이기도 하지만, 비장애인들이 그쪽을 훨씬 쉽고 간편하게 여기기 때문이기도 하다. 장애인들의 삶을 직시하고 개선시키는 것은 훨씬 불편하고 귀찮은 일이다. 그들에게는 장애인들의 있는 그대로의 삶을 파악하는 것부터 불편한 문제다.


그래서 눈에 안 보이는 곳으로 치워버리고 그런 문제에서 눈을 감는다. 그리고 모든 해결책을 먼 미래에 다가올 과학 기술에 떠넘기는 것이다. 그렇게 미래에 책임을 넘기면 현재의 의무는 당분간 유예된다. 문제는 '언젠가'(87쪽)를 기약하고 사라진다. 사람들은 종종 과학을 그런 만능기계로 여기고 싶어한다. 이는 상당히 무책임한 태도이고, 그다지 ‘온정과 시혜로 뒤덮인’(87쪽) 태도도 아니다. 오히려 온정과 시혜가 고갈된 상태에 가깝다.



우리 사회는 하기 싫은 일을 누군가에게 떠넘기는 데 익숙하다. 수많은 돌봄 노동과 감정 노동에 동원되는 여성 노동자들을 생각해 보라. 집안일은 보통 여성에게, 어머니에게 떠넘겨진다. 미래로 떠넘겨진 장애인에 대한 의무를 현실로 돌려놓는다면, 그 일도 분명 여성들이 맡게 될 게 뻔하다.


결과적으로 김초엽의 시각은 상당히 선량한 편에 속한다. 현실은 훨씬 더 이기적이다.



알량한 블로그

(http://blog.naver.com/alryangh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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