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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량한 Sep 10. 2021

〈박화영〉: 엄마로 수렴되는 도돌이표

피해자이자 가해자로서의 '엄마'

아이들은 모든 걸 엄마(박화영) 탓으로 돌리고, 박화영은 다시 자기 엄마 탓을 하고 있는 건 아닌가… 그렇다면 그 엄마는 누구 때문에 그 모양인가..



피라미드 맨 위에 아버지, 혹은 남자가 있고, 그 밑에 딸 혹은 여자가 있으며, 그 아래 가장 밑바닥에 여자도 남자도 아닌 ‘엄마’가 있다. 이 먹이사슬 안에서 모든 책임 추궁과 의무는 엄마에게 떠넘겨지고, 엄마는 딸을 위해 무조건 희생하는 존재로 그려진다.​


문제는 그 동기가 박화영의 엄마에 대한 상처 때문이라는 것이다. 엄마가 그 모양으로 사는 건 엄마의 엄마 때문이다. 이건 박화영이라는 엄마로 다시 귀결되는 도돌이표 문제다. 그녀가 헌신적인 엄마인 동시에 소외된 딸인 탓이다. 그래서 영화가 엄마에게 가하는 폭력은 폐륜인 동시에 응징이다. 피해자도 엄마지만 가해자도 엄마이기 때문이다. (마지막에 다시 엄마를 자처하는 박화영의 모습은 그녀가 불행을 반복함을 보여준다) 그래서 교묘하게 동정표만 사고 비난은 피하려 든다.



먹이사슬 맨 위에 있는 남자들은 이 일과 무관한가. 남자들의 성욕과 폭력은 제압되지 못하고,어쩔 수 없는 일, (여자들에 의해) 잘 달래서 넘겨야 하는 일로 치부된다. 그것은 오직 같은 남자의 더 큰 권력과 폭력 하에서만 제어된다. (경찰과 선생님은 남자이기 때문에 이 문제를 다룰 수 없는 것처럼 그려진다. 이게 여자들끼리의 문제라는 말일까.) 엄마가 불쌍했던 건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그들을 불쌍해 할 시간에 피라미드 자체를 문제 삼는 게 더 생산적인 일이다.



알량한 블로그

(http//blog.naver.com/alryangh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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