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 중의 신은 '내신'?

#수시 #학종 #내신

by Minimum

학기에 한 번쯤은 학부모 시험감독을 자원하곤 했다. 고등학교 때는 초중학교 때보다 부모가 교실에 들어갈 수 있는 기회가 적기에 오랜만에 가까이서 아이들을 지켜볼 수 있는 제법 의미 있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전날 잠도 제대로 못 자고 공부하느라 다크서클 가득 피곤에 절어 있는 모습이고 책상 위에는 카페인 덩어리 에너지 드링크가 여기 저기 적잖이 놓여 있다.

시험감독을 들어가게 되면 학부모는 선생님을 도와 교실 뒤쪽에서 아이들을 지켜보다가 아이들이 필기도구나 지우개를 떨어뜨리면 대신 주워주기도 하고 필요할 때 냉난방 온도를 조절하기도 하고 시험이 끝나면 선생님께서 번호대로 답안지 정리하는 것을 도와드리기도 한다. 전날 무리한 탓에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시험 보는 중에 조는 아이들이 있으면 선생님께서는 직접 흔들어 깨우신다. 학부모는 시험감독을 하러 갈 때, 아이들의 시험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걸을 때 소리 나는 신발을 신지 말아야 하고 진한 향의 화장품이나 향수도 사용하면 안 된다. 중학생 때와는 사뭇 다르게 더욱 진지해지고 비장하기까지 한 시험 분위기에 학부모마저 무척 긴장하게 된다. 씁쓸함과 안쓰러움이 밀려온다.


도대체 시험이 뭐길래, 내신이 뭐길래...


수시 입시를 준비하는 엄마들 사이에는 '신 중의 신은 내신'이라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비교과가 아무리 좋다고 할지라도 내신이 일정 등급 이상 되지 않으면 수시 입시를 준비조차 하기 어렵고 그 숫자에 따라 지원 가능한 대학이 결정되는 것이 불편한 진실이기 때문이다. 내신등급이 좋으면 교과전형이나 학생부종합전형(이하 학종) 등 다양한 수시 전형을 준비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 수능 점수 위주로 평가하는 정시로 돌리거나 수시 전형 중에서도 내신 비중이 비교적 적은 논술전형 등으로 전환하여 준비하는 것이 유리하다. 정부의 정책 기조에 따라 전체적으로 정시 비중이 늘어가고 있는 추세이지만 아직까지는 소위 상위권 대학들의 수시 전형(그중에서도 학종) 선발 인원 비중이 높기 때문에 고교 재학 중 수시 입시를 포기하는 것은 쉽지 않은 선택이다. 더군다나 최근 발표된 2023년도 서울대 입시계획안에 따르면 정시전형에 있어서도 일정 비율 교과 내신을 반영하기로 하여 수능 위주로만 정시를 준비하던 수험생들과 학부모들은 혼란에 빠진 상태다.

아이가 고등학생이 되기 전에는 고등맘이 공부해야 할 것이 이렇게 많을 줄을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특히 학종을 준비하는 데 있어서는 더욱 그렇다. 교육당국의 정책과 기조, 지원 희망대학들의 수많은 전형의 내용들을 수시로 캐치업해야 한다. 오죽하면 남편은 입시에 대해 공부하는 나를 보며 연구소 하나 차리겠다고 놀릴 정도니 말이다. 하지만 부모가 아무리 정보가 많다고 해도 아이와의 원활한 의사소통과 협업이 되지 않는다면 그 정보들을 무용지물이 되어버린다.

정시를 준비하는 친구들과 어머님들도 무척 힘드신 줄 잘 알고 있지만, 수시 특히 학종을 준비하는 일은 학교 다니는 3년 내내 교내 활동 전반에 걸쳐서 챙겨야 할 것이 너무나 많기에 아이나 엄마에게는 참으로 멀고도 험한 길이다. 이제 거의 입시가 끝나갈 때쯤 되고 보니 딸아이도 나도 그 많은 것들을 어떻게 다 준비하고 해냈는지 놀라울 뿐이다.

학종을 준비할 수 있는 자격이 암암리에 내신등급의 숫자로 인해 부여된다는 것이 진심으로 씁쓸하고 안타깝지만, 주위를 둘러보면 부족한 내신을 커버하여 수시 입시에 성공한 사례도 적지 않다. 예를 들어, 지원 희망 학과에 대한 전공적합성을 높일 수 있는 비교과를 심도 있게 준비한다든가, 영어나 과학 등 특정 과목을 특출 나게 잘한다면 특기자 전형을 준비한다거나, 모의고사를 성적이 좋다면 수능최저가 있는 수시 전형을 택하는 등 여러 가지 방법으로 부족한 내신을 커버할 수 있다.

아이의 성적은 신통치 않은 것 같고 준비해야 할 것은 너무 많아서 귀찮다는 이유로, 또는 우발적으로 내신은 제쳐두고 정시전형만을 준비하는 선택해버리는 것은 너무도 안타까운 일이다. 정시보다는 수시에서 본인의 객관적 실력보다 더 좋은 대학을 갈 수 있는 기회가 훨씬 더 많기 때문이다. 한국대학교육협의회에 따르면 2021학년도 서울 주요 대학 신입생 모집 인원 중 수시 선발 비율은 67.9%다. 수시에 비해 정시의 문은 좁다. 또한, 교육부 정책에 따라 갈수록 생기부 비교과 내용도 간소화되어가고 있기에 수시 입시를 준비하는 데 있어서의 부담과 고단함은 갈수록 줄어들 것이다. 내신이 만족스럽지 않다 해도 끝까지 성실하게 수시 입시를 준비해보기를 학부모님들과 학생들에게 감히 추천한다.

엄마들은 수많은 대학들과 전형들 속에서 머리가 지끈거리고 아이들은 힘든 학교생활에 번아웃되어버려 다 포기하고 싶어 질 때도 많지만, 끝까지 희망을 버리지 않고 성실하게 꾸준히 노력하며 입시가 끝나는 그날까지 버티는 것. 시시해 보이지만 그것이 바로 최고의 입시 비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