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직 엄마를 위한 오늘의 브런치

by Minimum

내가 돌이 갓 되었을 즈음 우리 가족은 아빠가 오랜 시간 동안 직접 설계를 하고 지으신 집으로 이사를 했다. 독특한 외관과 아기자기한 정원 덕분에 당시에는 동네에서는 가장 눈에 띄었던 나름 힙한 집이었다. 대단히 넓은 대지의 대저택은 아니었지만 멋진 조경에 연못도 있었고 여름에 우리 삼 남매가 물놀이할 수 있는 초미니 수영장도 있었다. 페츄니아, 사루비아, 봉선화 등 철마다 정원의 꽃을 바꿔 심으시던 아빠의 듬직한 뒷모습, 거실의 통창을 통해 오후의 나른한 햇빛 사이로 피아노를 치시며 가곡을 부르시던 엄마... 한 가정의 평범한 일상이 영화의 한 장면보다 더욱 아름다울 수 있다는 걸 이제 와서야 깨닫는다.


초등학생 때 엄마가 행사나 상담으로 인해 학교에 오시는 날이면 이전에 엄마의 얼굴을 한 번도 보지 못했던 아이들마저도 나한테 달려와서 말해주었다.


00야, 학교에 너네 엄마 오셨어!

그만큼 나는 엄마와 도플갱어 수준이다. 희한하게도 목을 기준으로 위쪽인 얼굴은 엄마를 똑 닮았고 목 아래 키, 체형, 체질 등은 영락없이 아빠를 똑 닮았다. 두 분의 유전자가 조화롭게 섞이지 못하고 경계선을 정확히 그어 발현된 모양이다. 엄마가 학교에 오시는 날이면 나는 내심 우쭐하곤 했다. 엄마는 늘 우아하시고 세련된 멋쟁이 셨기 때문이다. 이목구비가 화려한 미인이시기도 했지만 당신에게 어울리는 스타일로 멋지게 꾸밀 줄 아는 화려하면서도 기품이 있는 분이셨다. 대학 졸업 후 교사로 일하시다가 오빠를 임신하면서 교편을 놓으셨고 엄마이자 가정주부로서 세 아이를 키우고 살림하시느라 늘 고군분투하셨다. 육아와 가사를 돌보면서도 늘 봉사활동이나 새로운 배움을 멈추지 않으셨다. 집에서는 펑퍼짐한 몸빼에 우리가 입다 목이 늘어져버린 티셔츠 차림이다가도 외출을 하실 때면 귀부인처럼 완전히 다른 멋진 모습으로 변신하는 엄마가 늘 신기했고 그런 엄마를 동경하며 자랐다.

막내딸이 마흔이 훌쩍 넘었으니 이제는 엄마도 어느덧 초로의 할머니가 되셨지만 여전히 연세보다 훨씬 젊어 보이시고 아름답고 우아하시다. 하지만 20년 전 홀망히 우리 곁을 훌쩍 떠나버리신 아빠의 빈자리로 인해 오랜 시간 홀로 지내신 데다 코로나 19까지 덮친 탓인지 요즘 들어 부쩍 몸과 마음이 쇠하신 듯한 엄마를 뵙고 오는 날이면 짠한 여운을 떨쳐내기가 힘들다.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세월이라는 놈은 더욱 잔인하고 혹독해진 세상이라는 빌런과 손을 꼭 붙들고 우리의 부모님, 이 땅의 어르신들의 몸과 마음을 병들게 하고 있다.

코로나 19로 인해 금지되었던 요양병원 접촉 면회가 며칠 전 1년 여만에 재개되었다는 뉴스를 보았다. 투명 차단막을 사이에 두고 14개월 만에 가족을 만난 요양병원 환자와 가족들이 그동안 쌓인 그리움과 걱정을 토해내듯 엉엉 소리 내어 우는 모습을 보며 가슴이 먹먹해왔다.

엄마가 아직까지 건강하게 우리 곁에 계시다는 것이 얼마나 크나 큰 축복인지도 모른 채, 철없는 딸은 때로는 차갑게 때로는 야속하게 엄마를 서운하게 해드리고는 한다. 딴에는 엄마를 생각해서 하는 말과 행동들이 왜 그리 나긋나긋 부드럽고 예쁘게 나오지 않는지...


세상에 이름을 날려줄 거라 기대 충만했던 막내딸이 경단녀 평범한 주부로 살아가는 것을 늘 못내 아쉬워하셨던 엄마... 어느 날 인터넷에 글을 쓰게 되었다는 말씀을 드리고 발행한 첫 글을 보내드렸을 때, 대단한 등단을 한 것도 변변한 보상이 있는 것도 아니었지만 공개적으로 글을 쓴다는 사실과 포털사이트에 간간이 내 글이 노출되어 높은 조회수를 기록하는 것을 보시고는 눈물을 글썽이시며 기뻐하시던 엄마... 브런치에 글을 하나하나 발행할 때마다 제일 먼저 '좋아요'와 댓글을 남기시는 내 글의 가장 열렬한 독자... 적적하고 외로운 일상에 딸의 글은 큰 즐거움과 기쁨을 드렸던 모양이다. 예술과 문학을 사랑하시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 누구도 아닌 당신의 딸이 쓴 글이기에 열독자가 될 수밖에 없음을, 나 또한 딸을 둔 엄마이기에 절절히 공감할 수밖에 없다.


다가오는 엄마 아니 어머니의 특별한 생신을 맞아, 축하카드에 몇 자 적으려다 보니 한정된 카드의 공간이 못내 답답하여 어머니가 열독 하시고 좋아하시는 브런치 위에 초라한 글로 나마 어머니께 선물을 드린다.


우리 삼 남매에게 영화처럼 아름다운 유년시절을 선물해주시고 부모님의 크나큰 희생과 사랑을 먹고 자라 사람 노릇하고 사는 어른으로 살 수 있도록 키워주셔서 온 마음을 다해 감사드린다고... 이 브런치 글만큼은 오직 엄마를 위한 것이니 마음껏 즐기시라고... 과거에도 지금도 앞으로도 영원히 사랑한다고... 그러니 부디 걱정과 근심은 내려놓으시고 늘 당신의 건강과 행복만 챙기시라고...


한식을 좋아하시는 어머니시지만 눈부신 봄기운 가득할 엄마의 생신날에는 으리으리 호텔에서 오직 엄마만을 위한 브런치로 작은 사치를 누려볼 생각이다. 축복 같은 어머니의 하루하루가 사치스러우리만치 근사하기를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