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단녀 A의 재취업 도전기
또각또각 복도를 울리는 하이힐 소리, 흰색 셔츠 위에 메달처럼 걸려있는 파란 스트랩의 사원증, 적당한 질서와 무질서가 공존했던 나의 책상, 나의 자리...
회사를 그만두고 전업주부가 되고 난 후에도 가끔 꿈속에선 여전히 회사를 다니고 있는 나의 모습을 만나곤 한다. 아기 엄마에게는 좀처럼 입을 일이 없는 H라인 스커트에 까만 구두를 신은 단정한 모습으로 말이다. 불투명한 미래와 이대로 조직의 나사로 머물 것만 같은 두려움이 뒤섞여 퇴사를 결정했고 다시는 뒤돌아보지 않을 것처럼 어깨에 힘을 준 채 회사를 떠났지만 지나고 보니 직장생활이란 것에는 분명 어딘가 그리운 구석이 있는 모양이다. 실수투성이 청년의 더디지만 아름다운 성장의 시간들, 적절한 보상과 성취감, 무엇보다 이름과 직책으로 불리며 살아 숨 쉬던 자아, 더불어 회식 때 먹었던 한우 꽃등심까지도...^^
워라벨이란 것은 상상할 수 없었던 야근이 일상인 시절이었기에 입주도우미 이모님을 여왕님처럼 모시고(?) 살았다. 발을 동동 구르며 밤늦게 퇴근해서 집에 돌아오면 TV가 켜져 있는 어두컴컴한 방에 먼저 곯아떨어지신 이모님 옆에서 아직 잠들지 않은 3살짜리 딸이 혼자서 부숭부숭 놀고 있었다. 무너지는 엄마 마음도 모르고 딸아이는 꽃 같은 함박웃음으로 나를 맞아주었다. 더 이상 지체할 수가 없었다. 퇴사를 고민했던 과거의 그때로 다시 돌아간다고 해도 주저 없이 딸의 육아를 선택할 것이다. 하지만 놓쳐버린 연처럼 한번 놓으면 속절없이 휙 날아가버리는 이 땅의 여성들의 커리어에 대한 안타까움과 미련이 너무 컸던 탓인지 전업주부의 일상에 적응하기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하루 종일 아이와 씨름해야 하는 집이라는 공간이 낯설었고 결코 나의 담당업무가 되지 않을 것 같었던 집안일에서는 도무지 의미를 찾을 수 없었다. 그것은 아무리 열심히 해도 티가 나지 않고 하지 않으면 엄청나게 티가 나는, 도무지 알 수 없는 업무였다. 정신적인 만족과 보상 외에는 그 어떤 보상도 주어지지 않으며 나 아니면 딱히 맡을 사람도 없고 선뜻 맡고자 하는 사람도 없는 얄궂은 직무였다.
다행히 건강하고 예쁘게 커가는 아이의 모습과 바쁘게 돌아가는 일상으로 인해 전업주부의 삶에 자연스럽게 젖어들었고, 내 시간을 자유롭게 조절할 수 있는 여유로운 일상에 적응을 넘어 만족감마저 느끼게 되었다. 세월이 흘러 어느새 그 아기는 내가 챙겨주지 않아도 무엇이든 혼자 알아서 할 수 있는 청소년으로 성장하였고 육아와 살림에 할애해야 할 시간도 현저히 줄었다. 그로 인한 뿌듯함도 잠시, 이제는 삶의 구심점을 다시 나에게로 돌려야겠다는 생각에 이르자 마음이 조급해졌다. 이대로 가족의 서포터로서 뒷짐만 진 채로 남편과 아이의 성취만을 바라보고 있다가는 먼 훗날 감당할 수 없는 큰 쓰나미에 휩쓸릴 것 같은 무서운 예감이 들었다. 다시 나의 일과 삶을 찾는 것이 가족 구성원 모두의 성장과 행복을 위한 길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나이 마흔에 새로운 진로를 찾기 위해 세상의 복잡한 미로 속으로 다시 발을 들이게 되었다. 오랜 공백기를 보내고 사회로 복귀하는 만큼 나의 삶과 가치관에 대해 깊은 성찰의 시간이 필요했지만 그 과정을 건너뛴 채 케케묵은 경력을 과신했고 사회적 성공에 대한 들끓는 욕심을 쫓았다. 효능 있는 인간으로서 무엇인가를 생산하고 싶었고, 물질적 보상에 대한 갈증에 사로 잡혀 버렸다. 잘못된 길로 발을 들이고 있었지만 미로의 조감도를 볼 시야와 역량이 부족했던 나는 그 상황을 전혀 깨닫지 못했다. 그렇게 저지른 실수는 바로 경솔한 재취업이었다. 주위 사람들은 짧지 않은 경력 단절의 고리를 끊었다는 놀라움에 축하인사를 전하기 바빴지만 불순한 동기로 다시 시작한 직장생활은 잠시의 흥분과 기쁨을 던져 주었을 뿐 금세 삐걱거리기 시작했다. 새로운 조직 문화에의 적응, 업데이트해야 할 산더미 같은 업무지식과 관련 법률 공부, 급히 처리해야 할 수많은 업무들, 끊임없이 발생하는 돌발상황들... 어렵게 뛰어든 도전이 실패로 끝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으로 인해 몸과 마음은 이가 맞지 않는 톱니바퀴처럼 끼익 끼익 쇳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적극적으로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던 남편과 아이도 하루하루 어두워지는 내 모습과 무거워진 집안 공기에 지쳐만 갔다. 급기야 극심한 스트레스로 인한 불안장애, 불면증으로 인해 한 여름밤의 꿈같았던 6개월간의 짧은 <경단녀 A의 재취업 도전기>는 그렇게 쓸쓸히 조기 종영되고 말았다. 어디부터 잘못된 것이었을까?
80세가 된 미래의 당신은 지금의 당신에게 무슨 말을 할까?
지금 당신이 내린 결정에 대해 미래의 당신이 추궁하는 것을 견딜 수 있을까?
HR분야의 세계적인 권위자 린다 그래튼이 쓴 『100세 인생』의 서문에 나오는 말이다. 그녀는 ‘우리는 이전 세대가 가지 않았던 길을 가면서, 나는 누구인가, 나의 삶을 어떻게 구성할 것인가, 이러한 것들이 나 자신의 정체성과 가치를 어떻게 반영할 것인가를 반드시 생각해야만 한다’고 말한다.
그토록 처절히 실패했던 이유는 바로 '미래의 내가 지금의 나의 결정에 추궁과 원망을 할 것인가'에 대한 깊은 고민이 없었다는 데에 있었다. 내가 어떤 사람이고 어떤 가치를 지향하는지, 인생을 걸고 진심으로 하고 싶은 일 이 무엇인지 깊이 고민하지 않은 채 당장의 번듯한 명함 한 장, 물질적 보상, 그로 인한 낯 부끄러운 자기 위로가 잃어버렸던 자아와 행복을 가져다 주리라 확신했다. 20대에는 마흔이 되면 세상 만물의 이치를 통달할 지혜를 가진 멋진 어른이 되어 있을 거라 생각했지만 내 영혼의 깊이는 초라하기 짝이 없었다.
알랭 드 보통은 그의 책 『관계』 에서 인간에게 있어 ‘일’의 의미를 부여하기 위해서는 아래의 세 가지 요소를 충족해야 한다고 말한다.
1. 내 안의 가장 진실하고 재능 있고 깊숙한 부분을 활용할 수 있는가
2. 다른 사람에게 어느 정도 도움이 되는가
3. 자신의 일이 주위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매일매일 본능적으로 느낄 수 있는가
남들이 보기에 번듯한 회사를 다니고 그곳에서 성공하고 싶었던 과거의 나에게 위의 세 가지 질문을 던져보니 그 어느 질문에도 'Yes!'라고 자신 있게 대답할 수 없었다. 그런데 직업도 신분도 애매모호하고 경제적 수입도 보장할 수 없는 그저 그렇고 그런 글을 쓰고 있는 지금의 나에게 세 가지 질문을 다시 던져보니 세 질문 모두에 대해 자신 있게 'Yes!'라고 대답할 수 있다는 것을 발견하자… 왈칵... 눈물을 쏟을 뻔했다. 몸만 커버린 어른 아이인 나는 마흔이 다 되도록 나의 꿈을 찾지 못해 헤매고 있었다. 그동안 걸어온 길은 꽃길이 아닌 열등감의 가시가 뿌려져 있는 조금은 아픈 길이었기에 만감이 교차했다. 열등감은 진정한 모자람으로 인해 생기는 것이 아니라 미래와 희망을 내다볼 줄 아는 안목이 부족한 사람에게 찾아든다. 그 어리석은 열등감과 이제는 이별할 수 있을까.
지금 내가 서있는 이 길로 걸어간다면 번듯한 명함 한 장도, 이렇다 할 경제적 수입도, 세상이 열광하는 그 어떤 보상도 얻지 못할지도 모르지만 적어도 먼 훗날 80세가 된 나 자신에게 추궁당하지 않을 자신, 이 도전을 후회하지 않고 평생 기억하며 자랑스러워할 자신이 있다. 나의 초라한 글에 귀 기울여 줄 이가 이 세상 단 한 명뿐일지라도 그 한 사람을 위해 자판을 치는 지금 이 순간, 이렇게 가슴 벅차게 행복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