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백섬 해안산책로를 걸으며…
난생처음 아무런 계획도 없이 혼자 부산으로 떠났다. 비행기표도 무작정 공항에 가서 남아 있는 좌석을 받았고 숙소도 보안검색을 통과한 후 비행기 탑승 직전에 예약했다. 여태까지 출장과 해외에 있는 가족을 만나러 간 것 말고는 혼자 여행을 해본 적이 없다니… 차마 용기를 못 냈던 걸까 아니면 혼자 훌쩍 떠나고 싶을 만큼 큰 인생의 고비나 터닝포인트가 없었던 걸까?
한번도 해본 적 없기에 막연하게 혼자 여행이나 외국 살이를 꿈꾸는 나에게 친구들은 말했다. “혼자 여행해봤는데 하루만 좋지 그 다음날부터는 너무 외롭고 별로더라. 위험하기도 하고 혼자 여행 난 비추야. ” 자라나는 새싹이 풀썩 꺾이는 느낌이었다. 필자는 혼자 여행 경험도 없지만 쉽게 외로움을 타는 성격인데다 나름 제일 걱정되는 것은 혼밥이었다. 지금은 코로나 시국을 거쳐 혼밥 문화가 널리 정착하였지만 트리플 A형인 필자는 혼밥에 대한 두려움이 무척 컸다. 아무도 나를 쳐다보거나 신경쓰는 사람도 없는데 어쩐지 부끄럽고 어색하고 밖에서 혼자 밥을 먹는다는 것이 익숙하지 않았다. 여행 첫날부터 걱정이 한 가득이었는데 부산에 도착하고 보니 시간은 오후 2시가 다되었다. 아침에 쥬스 한 잔 먹은 것이 전부였던 나의 위장을 괴성을 질러댔다. 너무도 배가 고파 무작정 찾아간 백화점 식당가에서 내가 발견한 것은 널려 있는 1인 식사존 ^^ 휴우 다행이닷!
처음이 어렵지 그 다음부터는 술술이라던가. 처음에는 머쓱하고 심심해서 스마트기기를 보며 먹었지만 그 다음부터는 음식에 오롯이 집중하며 혼자서도 식사를 즐겼다. 일행 눈치 보지 않고 내가 가고 싶은 곳만 가고 먹고 싶는 음식을 먹고 일정도 내 마음대로… 더 머무르고 싶은 곳은 오래 머무르는 즐거움까지… 어느 식당에서는 내 또래의 여성 직원분이 아침식사하는 나에게 여행중인지 근처에 사는지 물었다. 여행 중이라고 했더니 ”우와 너무 부러워요! 멋지시네요.“ 한다. 적지 않은 나이의 여성 혼자 여행을 한다는 것이 신기하게 보여지는 현실이 씁쓸하면서도 어쩐지 내 어깨는 으쓱해졌다.
작가는 세상 어디에서든 심심할 틈이 없다. 세상의 많은 것을 보고 느껴야 하고 글을 써야한다. 고독을 견뎌가며 오롯이 혼자일 때 가장 큰 영감을 받을 수도 있고 떠올릴 수도 있다. 작가에게 혼자 여행이 필살기인 이유다.
뒤늦게 인생을 걸고 하고 싶은 일이 생겼고 그 일로 돈 한 푼 못 벌어도 벅차고 행복했었다. 그것이 불과 5년 전이지만 내 영혼의 1000만 분의 1도 갈아 넣어보지도 않은 채 ‘역시 이 건 내 길이 아닌가 봐’ 하고 쉽게 포기하려는 참이었다. 나의 글을 읽어주고 공감해 주는 독자들이 있다는 것, 적지 않은 나이에도 이루고 싶은 꿈을 갖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가슴 벅차게 행복했던 것도 잠시, 눈에 보이는 보상이 없는 꿈은 조금씩 시들고 메말라갔다.
그렇게 꿈을 잠시 접어두고 눈에 보이는 보상(?)을 돌려줄지도 모를 자격증 공부를 시작했다. 학위를 따는 과정인데 거의 매일 강의를 들어야했고 리포트를 제출하고 시험을 보는 것이 생각보다 만만치 않았다. 하지만 두 번째 스무 살로 돌아간 듯 재미도 있었고 기말시험이 끝나고 생각보다 좋은 성적을 받고 나니 뿌듯한 성취감도 느껴졌다. 무엇보다 매일 운동 2개와 학업을 병행하니 일상이 너무도 바빠져서 꿈이 뭔지, 공허함과 우울함이 뭔지 잡생각이 들지 않아서 좋았다.
공부를 시작한 데에는 글쓰기에 대한 회의도 있었지만 육아가 끝나고 난 뒤 닥쳐온 빈 둥지증후군도 큰 몫을 했다. 대학생이 된 딸아이는 90년대 20대 시절의 나처럼 생기발랄한 모습으로 청춘을 만끽하고 있다. 경단녀 전업주부였던 필자는 다른 엄마들처럼 아이의 교육과 진학에 올인하였고 미션 임파서블이 파서블하게 끝나자, 영영 다음 미션을 받지 못하고 잘려 버린 중년의 여성 요원은 덩그러니 베이스 캠프에 혼자 남아 외로움에 몸서리 치며 궁상을 떨고 있었다. 타고난 심성이 착하고 눈에 띄게 총명했던 딸아이는 자라면서 크게 속 한 번 썩이지 않고 우리 부부에게 큰 행복을 선사해 주었다. 칠흑같은 입시지옥이라는 동굴에서 쑥과 마늘을 뜯는 심정으로 딸아이와 합심하여 견뎌냈고 본인 원하던 좋은 결과도 이루어내었지만 자신을 돌보지 않고 딸아이 교육에 올인했던 나에게 돌아온 것은 번아웃증후군, 빈 둥지증후군… 온갖 우울한 증후군들 뿐이었다. 가슴에 숭숭 뚫린 공허함을 채워준 것이 글쓰기였고 남은 생은 내가 좋아하는 글을 쓰며 살리라 다짐했지만, 얼마 노력해보지도 않고서 단지 눈에 보이는 보상이 없다는 이유로 글쓰기를 잠시 내려두고 자격증 공부에 매진했다. 그러나 6개월 간 글쓰기를 내려 놓고 다른 일에 몰두해본 결과, 깨달은 것은 결국 내가 제일 사랑하는 것은 글쓰기이고 지금까지 그랬듯 앞으로도 그 어떤 보상이 없다해도 내 삶이 그것을 간절히 원한다는 것이었다.
창작 시간에 선생님이 진저리 치며 싫어하는 것이, 우리 또래들이 경험의 무게가 실리지 않은 허황하고 감상적인 미사여구를 쓰는 것이었습니다. 너희 경험에서 나온 것을 써라. 그리고 쓸 게 생겼다고 금세 쓰지 말고 속에서 삭혀라. 그게 제일 인상적이어서 저는 친구들과 여고 시절 이야기를 할 때면 박노갑 선생님의 그 말씀 생각나니? 하고 물어보면 기억하는 친구가 거의 없는데 저는 이상하게 그 말씀을 못 잊습니다. 포도주를 만들 때 너희들 뭐가 필요한지 아니? 물으셔서 포도, 설탕, 소주. 이렇게 대답을 하면 또? 그러셔서 항아리 등, 별의별 대답이 다 나오면 선생님은 포도주는 포도를 버린 것이 땅에 고여 시간이 지나 발효하여 술이 된 것을 발견한 것이라고 하면서, 포도주가 되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아아! 오오! 따위 감탄사를 함부로 쓰는 것을 싫어하셨습니다. 그러니까 무엇에 감동을 해서 쓰고 싶은 것이 생기면 속에서 삭혀서 그것이 발효가 되면 쓰지 않을 수 없는 시기가 온다. 폭발이 일어난다. 그것이 안되고 잊혔다면 그것은 포도가 아니었을 것이다. 뭐가 될 것은 반드시 속에서 폭발이 일어난다고 하셨는데 철없는 우리보다는 당신 스스로에게 하신 말씀이 아닌가 싶어 아직도 기억하고 있고 여러분에게도 혹시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해서 전해드리는 겁니다.
- 박완서, <세상에 예쁜 것>, ‘나의 경험 나의 문학’ 중
글을 향한 나의 마음은 깊이와 풍미 있는 포도주가 되기는 영 글러먹은 불량 포도일런지도 모른다. 하지만, 삭히고 삭혀도 글을 쓰고 싶은 욕구가 자꾸 차오른다. 6개월간 할 일이 너무도 많기도 했거니와 나 자신을 시험하고자 의도적으로 글쓰기를 놓고 살았다. 글쓰기를 포기하고 손에서 놓아 보았지만, 놓쳐버린 부메랑은 돌고 돌아 결국 내 손으로 돌아와 있다. 여유시간이 많을 때는 시간을 소중하게 쓰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는다. 그 흔한 영화도 각 잡고 보게 되지 않는다. 그러나 나만을 위해 오롯이 쓸 수 있는 시간이 줄어들면 필사적으로 그 시간에 무엇을 할지 계획하고 실천하며 시간을 아껴서 내가 진심으로 사랑하는 일에 의미 있게 쓴다. 아기를 위해 온 일상을 바쳐야 하는 엄마들이 아기가 잠들었을 때 무엇을 할까 고민하는 것처럼… 나는 그 소중한 나만의 시간에 글쓰기와 여행을 하리라 다짐했다. 고되고 바빴던 6개월을 보내고 혼자 부산으로 떠났고 지금 해운대가 코 앞에 펼쳐진 카페에서 글을 쓰고 있다.
그동안 남편과 딸아이에게 느꼈던 서운함과 이유 모를 무기력과 쓸쓸함이 파도를 타고 유유히 떠내려간다. 내 곁에서 사랑으로 나를 지켜봐 주는 그들의 존재 자체가 축복이라는 다분히 클리셰적인 감정도 오롯이 느껴본다. 잃어버렸던 꿈과 시간이라는 부메랑이 다시 내 손에 안착했다. 다시는 게으르고 우울하고 의미 없는 삶으로 돌아가지는 않으리라. 대단한 메세지가 아닐지라도 작은 감정을 나눌 있는 소박한 글쟁이로 다시 살아보리라 바다와 독자님들을 앞에 두고 소심하게 되뇌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