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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nimum Jul 31. 2018

우리가 그때 다른 선택을 했다면 어땠을까

 『 카페 소사이어티 』 , 2016, 우디 앨런


• 본 리뷰는 영화 『 카페 소사이어티 』의 내용에 관한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영화를 보지 않으신 분은 관람 후 읽어주시기 바랍니다.


"난 그때 어떤 선택을 해야만 했어요."


세월이 흘러 재회한 바비와 보니, 이미 다른 사람의 남편과 아내가 되어 있었지만 여전히 서로를 사랑하고 있음을 깨닫는 두 사람...그들의 마음마저 물들이는 듯한 아름다운 석양을 등지고 센트럴파크 다리 위에서 보니는 바비에게 이렇게 이야기한다.

그들이 그때 다른 선택을 했다면, 어땠을까?


 

 LA의 햇살을 가득 담은 듯한 황금빛 미쟝센과 아찔하게 귓볼을 간지럽히는 재즈 선율을 뚫고 또 한번 우디의 낭만이 휘몰아친다. 1930년대 뉴욕과 LA를 가로지르는 두 사람, 바비와 보니의 안타까운 사랑과 꿈에 대한 이야기다.

 뉴욕 출신의 유대인이자 가난한 보석상의 아들인 바비(제시 아이젠버그)는 성공을 향한 청운의 꿈을 안고 헐리우드의 거물급 에이전트인 삼촌의 회사에서 일하기 위해 뉴욕을 떠나 LA로 향한다. 삼촌의 비서인 아름다운 보니(크리스틴 스튜어트)를 보고 첫 눈에 반하게 되고 그녀를 향한 사랑의 직진을 감행한다. 보니는 한 때 영화배우를 꿈 꿨지만 그들의 허영과 가식 가득한 삶의 이면에 염증을 느낀 후 자신만의 소신과 행복을 추구하며 살아가고 있었다. 그런 보니의 모습을 보며 바비는 그녀에게 더욱 더 끌리게 된다. 하지만 보니는 이미 유부남인 바비의 삼촌 필과 부적절한 관계를 맺고 있었기에 바비와 친구 이상의 관계로 발전될 수는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조강지처에 대한 죄책감과 이혼에 대한 부담을 감당할 수 없었던 필에게 보니는 버림을 받게 되고 바비가 그녀를 곁에서 따뜻하게 위로하며 마침내 그들은 연인이 된다. 청춘의 그들은 둘 다 가진 것은 없었지만 열정과 끌림에 충실했으며 둘 만의 따뜻한 세계 안에서 상처를 치유하고 행복과 편안함을 느낀다.



 청춘의 사랑은 이토록 뜨겁고 아름답지만 그들의 미래처럼 왠지 불안하기만 하다. 마침내 선택의 순간, 청춘의 결핍은 결국 물질적 안정이라는 보니의 현실적인 선택(보니를 잊지 못해 돌아온 필과 결혼)을 불러오고 그렇게 사랑스러웠던 두 연인의 사랑은 끝이 난다. 사랑을 잃고 뉴욕으로 돌아온 바비는 갱스터인 형이 운영하고 있던 사교클럽을 도맡아 경영하게 되고 LA에서 맺은 인맥을 총동원하여 클럽은 크게 성공하게 된다. 운명의 아이러니일까. 보니처럼 아름답고 이름마저 똑같은 여인을 만나 결혼하여 행복한 가정을 꾸리게 된다. 세월이 흐른 어느 날, 바비의 클럽에서 재회하게 된 두 사람. 그저 어긋난 인연, 잊고 싶은 사랑의 아픈 기억일 뿐이라고 훌훌 털고 돌아서고 싶지만 세월이 흘러도 두 사람은 여전히 서로에게 단 하나뿐인 진정한 사랑이자 꿈 그 자체였다는 것을 뒤늦게 깨닫는다. 서로를 잊지 못했던 두 사람은 불륜이라는 딱지를 붙인 채 만남을 이어가지만 결국 그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다시 이별을 한다.


 진정한 내 사람을 바로 ‘그 때’ 정확히 알아보면 좋으련만 그 해답지는 늘 긴 세월이 흘러봐야 받아볼 수 있다. 어떤 선택이 잔혹한 후폭풍 몰고 올지 아니면 평화로운 잔물결 같은 행복을 선사할지 예견하고 선택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여기에 바비가 말했던 인생의 가학성이 있는 것이다.


"인생은 코미디죠. 가학적인 작가가 쓴 코미디요."


 한 번뿐인 우리의 삶은 선택의 연속이다. 그 선택으로 인해 우리의 삶은 예기치 않았던 길로 방향을 꺾는다. 그 길의 끝자락에 행복과 기쁨만이 가득하다면 좋으련만 대개는 아쉬움과 회한이 기다리고 있기 마련이다. 그 길에서 우리의 눈동자는 촛점을 잃어 버리고 머릿 속엔 오만가지 생각이 교차한다. 심지어 모두가 즐거워하는 화려한 파티, 시끌벅적한 군중 속에서도 멍하니 꿈을 꾸는 듯한 표정으로 홀로 외로이 서있다. 엔딩장면의 바비와 보니의 모습처럼...



결혼하시오. 후회할테니. 결혼하지 마시오. 그래도 후회할테니. 결혼을 하거나 안하거나 어느 쪽이든 후회하게 될 것이오. 세상이 어리석다고 비웃으시오. 후회할테니. 세상이 어리석다고 슬퍼하시오. 그 또한 후회할테니. ... 목매달아 죽으시오. 후회할테니. 목매달지 마시오. 그 또한 후회할테니. 목을 매거나 안 매거나 어느 쪽이든 후회할 것이오. 목을 매든 안 매든 둘 다 후회하게 될 것이오. 선생들, 이것이 모든 철학의 정수라오.

<이것이냐 저것이냐> 키에르 케고르


 결국 우리에게 행복을 가져다 줄 정답 같은 건 처음부터 없었다. 인생에 정답이 없다는 것만이 정답일뿐...바비의 누나 에블린은 무례하고 위협적인 이웃집 남자때문에 정신적 고통을 받던 끝에 오빠에게 알아듣게 손 좀 봐달라고 부탁을 하지만 어느 날부터 이웃집 남자가 보이지 않게 되자 더 큰 걱정과 불안에 휩싸인다. 선택이 문제를 해결해주리라 믿었지만 그 선택은 더 큰 문제와 불안을 야기하기도 한다.

 우리가 인생에 정답이 없음을 받아들인다고 한들 고통이 사라지지도 않고 기쁨이 옅어지지도 않는다.  그렇다고 체념과 자포자기는 금물... 정답이 없는 이 놈의 인생의 가학성을 견디며 우리의 어깨를 스스로 또는 서로 톡톡 다독이며 그래도 희망을 놓치 말고  우는 듯 웃는 표정을 짓고 하루하루를 성실히 살아내는 수 밖에...

 영화의 마지막 장면 속 바비와 보니의 표정은 가늠할 수 없는 어딘가에서부터 먹먹함이 밀려와 쉽게 그 여운이 가시지 않았다. 그 엔딩이 가슴에 이렇게 긴 공명을 남겼던 이유는 슬프고 아련하고 안타까웠기 때문이 아니라 그렇게 스스로를 다독이며 아픔을 견뎌내는 그들의 모습이 너무도 아름다웠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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