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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nimum Aug 23. 2018

 『서치』  사람과 사람 사이의 거대한 간극에 대하여

 『서치』 , 2018, 아니쉬 차간티

 • 본 리뷰는 ‘브런치 무비패스’ 시사회를 관람하고 작성하였습니다.


 사용하던 노트북이 구동이 느려지고 크고 작은 문제가 많아 얼마 전부터 남편의 노트북을 빌려 쓰고 있다. 하루 중 컴퓨터를 사용하는 시간이 정해져있는 편이고 어차피 요즘은 클라우드 작업이 많기에 남의 PC를 빌려쓴다는 것이 더이상 불편하고 찜찜한 일이 아님이 새삼 새로웠다. 윈도우 운영체제가 익숙한 나에게 맥 운영체제는 살짝 낯설고 한국에서 사용하기는 불편한 점(특히 금융 보안 관련)이 많았지만 사용하면 할수록 보안과 시스템의 완성도, 작업화면 디자인에 대한 만족도가 높아 슬슬 나만의 맥북 소유욕이 스멀스멀 태동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영화 『서치』는 카메라 앵글이 아닌 컴퓨터 화면의 OS,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 등의 SNS, 유튜브 또는 핸드폰 화면, 웹캠•CCTV•TV 방송 영상만으로 화면을 구현해낸 이제까지 본 적 없는 가히 혁신적인 영화다. 핸드폰, 시계, 태블릿, 블루투스 이어폰까지 모두 장착한 부인할 수 없는 애플매니아이지만 PC 사용경험은 없었던 내게 최근의 맥북 사용경험은 속도감 있게 전개되는 이 영화 따라잡기를 위한 훌륭한 예습이 되어주었다.

 영화 『서치』 는 부재중 전화 3통만을 남기고 사라진 딸, 그리고 그녀의 SNS에 남겨진 흔적을 통해서 딸의 행방을 찾기 시작한 아빠가 발견하는 뜻밖의 진실을 그려낸 추적 스릴러이다. 놀라운 편집과 화면 구성은 첫 화면부터 관객들을 사로잡는다. 초록색 드넓은 들판이 어디의 아름다운 풍경일까 궁금해하다 보면 이내 그것이 컴퓨터 배경화면임을 깨닫게 되고 우리는 어느새 마우스와 키보드의 움직임을 따라 컴퓨터 작업을 시작하고 있는 듯한 착각에 빠진다. 영화를 보는 내내 실제로 내가 컴퓨터 작업을 하는 것처럼 오른손이 클릭을 하듯 움찔움찔해진다. 특히 영화의 도입부분은 일상 속에서나 업무 중에 진력이 날 정도록 많이 보는 디지털 화면들과 작업의 흐름이 아름답고 가슴 아린 가족의 역사를 품고 새로운 영상예술로 다시 태어난 듯 느껴진다. 획기적이고 참신한 화면과 구성만큼 스토리 또한 스릴러물로서 부족함이 없다. 뿌려지는 떡밥이 다소 많아서 산만한 듯 느껴지지만 하나씩 차곡차곡 잘도 주워 담는다. 특히 데이빗이 딸 마고를 찾기 위해 온라인 상의 흔적을 찾는 과정에서 관객들도 함께 ‘서치’하고 분석하게 되는데 눈이 다 따라가지 못 할 정도의 수많은 정보의 홍수 속에 머리가 지끈거리고 혼란도 커지지만 오늘날의 디지털세상을 소름 끼칠 정도로 적나라하게 묘사하고 부드러운 극전개를 위한 합리적인 포석이기에 과도한 산만함으로 느껴지지는 않는다. 천재적인 감각으로 구글 크리에이티브 랩에 스카우트되었던 젊디 젊은 28세의 아니쉬 차간티 감독의 첫 장편영화라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영상과 구성, 스토리 모두 뛰어나다.

 90년대 중후반 나의 대학시절은 아날로그 시대의 끄트머리이자 디지털의 태동의 시대,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넘어가는 과도기였다. 삐삐는 모두 다 갖고 있었지만 묵직한 바디감(?)을 자랑하는 핸드폰은 이제 막 보급되기 시작하여 보편화되기 전이었다. 그 시절엔 집이 아닌 밖에서 서로 연락하기가 힘들었기에 학교 앞 서점의 하얀 대형 메모판에 누군가 모임 시간과 장소를 써놓으면 술 생각 나는 사람들은 그것을 보고 하나 둘씩 모여들곤 했다. 급번개모임을 위한 소통 방법이 이토록 낭만적이고 아날로그적이었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친분은 전화통화 정도를 제외하고는 지금처럼 그 어떤 플랫폼이나 매개체를 빌리지 않고 직접 얼굴을 마주 보고 이야기를 나누어야만 쌓을 수 있었다. 그래서 사람이 그리운 청춘들은 거의 매일 여기저기에서 술판을 벌였고 신입생 때는 매일 이어지는 지나친 음주가 때로는 버겁기도 했었다. 요즘 들어 나는 생각한다. 아날로그와 디지털이 만나는, 즉 디지털이 만연하기 전에 청춘을 보낸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이고 행운이었는지를...2018년 오늘과 1990년대를 ‘인간관계’는 맺고 유지하는 방식과 온도의 차이는 극명하나 공통점 또한 존재한다. 인간관계에는 늘 오해나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장애물이 있다는 것. 이를테면 1990년대의 술(과도하고 강요하는 음주문화) 오늘날의  SNS 와 같은...

 먼저 90년대. 매일매일 이어지는 대규모 술자리에서 일단 위장에 술이 들어가고 취기가 돌기 시작하면 우연히 나란히 앉게 된 A와 B는 서로 속 깊은 이야기도 나누고 허물없이 친해지는 듯하는 착각을 느낀다. 하지만 그 다음날 쓰린 속을 달래며 걸어가는 A와 우연히 마주친 어제의 그 술친구 B 사이에는 친밀감은 커녕 오히려 어제 보인 민낯에 대한 부끄러움 때문에 더 어색함을 느꼈던 경험을 누구나 한번쯤은 해봤을 것이다. 현재는 어떨까. 얼굴을 맞대고는 하기 힘든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낯선 사람과 온라인 상에서 서슴없이 나누고 야릇한 유대감을 느끼는 듯한 착각을 한다. 하지만 그 유대감이 오프라인인 현실에서 그대로 이어지고 실제로 친분이 두터워지는 일은 극히 드물다. 20년전 세상은 얼굴을 마주해야만 가까워질 수 있었기에 조금 더 사람냄새가 난다는 것은 분명하지만 어느 시대에서든 제3의 매개체를 빌려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관계는 견고하지 못한 법이다.



가공되고 포장된 디지털 세상의 정보들은 도대체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어디까지가 거짓일까.


가족이든 친구든 가깝다고 생각하는 사람에 대해 나는 과연 얼마나 알고 있으며 그의 진짜 속내를 얼마나 이해하고 있는 것일까.


 이 영화는 묻고 있다. 영화는 오늘날 첨단세상과 인간에 대한 진실한 이해가 얼마나 잔인하게 충돌하고 있는지 여실하게 보여주고 있다. 마고처럼 본인의 억눌린 감정을 표출하기 위해 SNS를 비공개로 운영할 경우 그 컨텐츠의 진실성과 신뢰도가 높아지는 반면 남에게 보여주기 위해 멋지게 가공하고 포장된 공개계정의 SNS의 컨텐츠는 외적 내적 진실성을 담보하기 어렵다. 사람들간의 소통의 편의성과 범위를 무한대로 확장시키기 위한 첨단기술이 오히려 진실을 왜곡시키고 사람들을 싸우고 멀어지게 하고 있는 것이다. 디지털세상의 수많은 정보들은 도대체 무엇이 진실이고 무엇이 거짓일까.

 또한 우리는 사람과 사람의 관계에서 모두 다 본인이 생각하고 싶은 대로 생각하고 착각을 하는 실수를 자주 범한다. 술이나 SNS 뿐만 아니라 소통의 부재 또한 하나의 벽이 되어 서로를 오해하게 하고 멀어지게 하며 상황을 착각하게 만든다. 컴퓨터에서 죽은 아내의 흔적을 마주하는 데이빗의 눈빛은 그리움과 회한, 못다 한 사랑에 대한 아픔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그 상처가 너무나 크고 깊기에 딸 앞에서 엄마에 대한 이야기를 좀 처럼 입에 올리려 하지 않는다. 데이빗이 딸의 슬픔보다는 자신의 슬픔에 매몰되었기 때문인지, 딸의 밝은 일상을 위한 배려때문인지, 슬픔의 무게에 대한 두려움때문인지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아내이자 엄마에 대한 추억과 그녀를 잃은 슬픔을 허심탄회하게 나누지 못 한 채 아무렇지도 않게 문자를 나누고 영상통화를 하며 건조하게 일상을 보내고 있는 부녀 사이에는 놓쳐버린 것이 너무나 많았음을 신랄하게 보여준다. 그것은 남녀의 차이, 나와 타인의 차이, 세대의 차이 등 이 모든 것이 합동으로 작동시킨 비극이지만 그들 사이에 변함없이 흐르고 있는 사랑과 신뢰의 힘은 여전히 묵직하고 견고하기에 관객들은 안도하게 된다. 아무리 가까운 가족일지라도 서로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상대방에 대해 몰랐던 사실이 많았다는 것은 잘못된 일도 비난받을 일도 아닌 오히려 당연한 일이다. 가깝기때문에 진실을 입에 올리기는 더욱 힘든 일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트위터로 아무런 이해관계가 없는 타인과 익명의 대화를 더욱 편하게 생각하며 즐긴다. 결국 진실한 관계를 구축하는 데 있어서의 관건은 불편한 진실을 마주 하고 난 뒤의 좌절이 아닌 툭툭 털고 일어나 변화하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이다. 형편 없었던 과거의 나를 돌아보아야하는 산티아고 순례길만큼이나 힘든 반성의 길을 걸으며 머릿 속을 스치는 작은 단상, 생각의 편린을 놓치지 않고 가슴에 기록하고 반성하며 나를 변화시키려는 노력은 결국 영화에서처럼 극한의 상황에서도 생명이 움트는 기적을 만들어 낼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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