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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nimum Oct 10. 2018

『스타 이즈 본』 우리 모습 이대로 영원히 기억할 거야

『스타 이즈 본』, 2018, 브래들리 쿠퍼

 • 본 리뷰는 브런치 무비 패스 시사회 관람 후 작성하였습니다.


 여기 한 사람의 성장과 한 사람의 파멸이 교차한다. 두 사람이 그리는 삶의 하향곡선과 상향곡선이 만나는 순간, 사랑도 시작된다. 불우한 유년기의 기억, 잃어가는 청각, 음악과 삶에 대한 매너리즘으로 인해 술과 약물에 의지하지 않으면 버틸 수 없는 락스타 잭슨 앞에 자신만의 이야기와 재능으로 눈부시게 빛나는 다듬어지지 않은 원석 같은 앨리가 나타난다. 둘 중 그 누구의 정체성과도 상관없는 낯선 우주공간 같은 드랙퀸 바에서 그들은 서로를 알아본다. 본인의 눈썹을 지우고 테이프로 가짜 눈썹을 붙인 채 드랙퀸인 척 타인의 노래를 하는 앨리. 성공한 락스타이지만 여전히 유년의 아픈 기억과 예술가의 고통 속에서 허우적거리는 잭슨. 첫 만남에서 서로의 아픔을 알아보고, 영혼의 뒷면에 드리워진 어두운 그림자와 열등감마저 사랑하게 되지만 앨리는 스타가 되어가고 잭슨은 점점 무너져간다.

 잭슨은 앨리의 코를 쓰다듬고 앨리는 잭슨의 귀를 쓰다듬는다. 나의 콤플렉스, 나의 치부마저 아름답다 말해주고, 있는 그대로의 나를 사랑해주는 사람. 나도 몰랐던 내 안의 빛을 알아봐 주는 사람. 한 사람은 그 사랑을 자양분 삼아 성장해가지만 한 사람은 그러한 사랑에도 불구하고 파멸해간다. 관객들은 두 사람의 교차하는 삶의 궤적을 동시에 지켜봐야만 하기에 아프고 힘들다. 사랑하는 가족이나 친구에게조차 질투를 느낄 수밖에 없고 크나큰 사랑과 지지에도 불구하고 세상의 사악한 유혹에 무릎을 꿇고 마는 나약한 인간의 모습, 그것은 결국 우리의 모습이기에 성공하는 앨리를 보며 기쁘기보다는 무너지는 잭슨을 지켜보며 더욱 가슴이 아프다. 이렇게 영화의 제목은 ‘스타 이즈 본’ 이지만 시간이 갈수록 앨리보다는 잭슨의 감정선에 더 몰입하게 된다. 내가 사랑하는 것들이 나를 힘들게 한다고 했던가. 자신만의 이야기를 자신만의 방식으로 대중들에게 들려주었고 그로 인해 성공한 잭슨이지만 자신이 사랑하는 가족과 음악, 그리고 사랑하는 앨리를 지켜보며 괴로워하는 나약한 인간의 모습을 여실히 보여준다.

 리메이크 영화를 감상할 때에는 새로울 것 없는 진부한 스토리를 감독이 어떤 방식으로 다시 풀어놓는지를 확인해보는 데 그 묘미가 있다. 다소 거만해 보이는 전형적인 금발 백인 미남의 외모를 장착한 것이 배우로서 득 보다 실이 된다고 내 마음대로 치부해버린 배우 브래들리 쿠퍼를 이 영화를 통해 다시 보게 되었다. 닳고 닳아버린 락스타로 완벽하게 분한 연기력, 놀랄만한 기타 연주와 노래실력, 무엇보다 절제된 연출력까지... 스토리가 원작에 충실한 만큼 아름다운 음악과 두 배우의 연기와 케미, 놀라운 사운드와 공연 현장감, 절제된 연출과 카메라 워크 등 여러 요소들이 조화롭게 덧칠되어 제법 근사하게 변주되었다. 사실 영화관에 들어설 때에만 해도 『스타 탄생』의 리메이크작이라는 것도 모른 채 포스터와 예고편만을 보고서 『비긴 어게인』과 비슷한 정도의 촉촉한 감성과 신선함을 선사해줄 영화일 거라 기대했었다. 하지만, 예상되는 경로대로 결말이 치닫게 되자 고개를 돌려 외면하고 싶었다. 언제부터인지 비극을 보는 일이 힘겨워졌고 웬만하면 새드엔딩의 영화는 피하고 싶어졌다. 세월이 흐를수록 슬픔을 다스리는 방법은 더욱 낯설고 불편해졌다.

그러나, 영화가 끝난 후 가슴에 남은 것은 먹먹한 슬픔이 아닌 희미하지만 따뜻한 빛의 잔상 같은 것이었다. 처음엔 잔인한 시간과 세상이 아름다운 그들의 사랑에서 영롱한 빛을 빼앗아 가버린 것 같아 안타까웠다. 하지만, 앨리가 볼품없는 모습의 초라한 가수 지망생이었을 때도, 잭슨이 술과 약에 절어 추한 모습으로 앨리의 앞길을 방해할 때에도 그들은 변치 않고 서로를 영혼을 다해 사랑하고 있었다. 앨리가 자신의 공연장에 오기로 약속한 잭슨이 나타나지 않자 눈물을 흘리며 "제 남편을 위해서 기도해주세요."라고 말하며 노래할 때, 앨리의 앞길을 가로막는 자신의 존재를 절감하는 잭슨의 동공이 흔들릴 때, 마지막 장면에서 앨리가 잭슨을 생각하며 혼신의 힘을 다해 노래할 때, 마지막까지 앨리에게 이야기를 선물하며 그녀 본연의 색을 찾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잭슨의 마음이 느껴질 때... 관객들은 그들의 진실한 사랑을 느낄 수 있기에 더 이상 슬프지만은 않다. 그(녀)를 위해 기꺼이 내 모든 것을 내어줄 수 있는 사랑, 아무에게나 주어지지 않는 축복이자 행운 같은 그 사랑을 그들은 보여주었기에...


나도 몰랐던 내 안의 빛을 찾아낸 그대
우리 모습 이대로 영원히 기억할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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