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코로나 고3

by Minimum

나의 글쓰기는 요즈음 동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손님 없는 쓸쓸한 음식점처럼 개점휴업 상태다. 모지리 작가인 나는 현실과 이상 사이를 흐르는 강을 훌쩍 건너야만 글이 써진다. 일상과 고민이 묻어있는 집이 아닌 작업실이나 카페 같은 제3의 공간에서 성스런 의식을 치르듯 커피 한 잔을 옆에 두어야만 손가락이 움직이기 시작한다. 하지만 2020년 불안과 산만함이 가득한 삶을 살고 있다 보니 도무지 그 강을 건널 수가 없다. 가볍디 가벼운 노트북을 펼치는 일이 그렇게 힘들 수가 없다. 매일 오전 10시 오늘의 신규 확진자수를 확인하고 스마트폰으로 뻔하디 뻔한 뉴스들을 쉴 새 없이 체크한다.




2002년 한일월드컵 4강 신화의 열기 속에 태어난 딸아이는 2020년 고3이 되었다. 2002년생 아이들은 여러모로 저주받았다는 기사를 자주 본다. 초등학교 1학년 때인 2009년에는 신종플루로 인하여 500여 곳이 휴교를 했으며 신종플루에 걸린 학생만 4만 9500명이었고 감염병 재난단계 '심각'을 이미 경험하였다. 2015년 중학생일 때는 메르스로 인해 또 한 번 감염병 공포에 맞닥뜨렸다. 다양한 진로탐색이라는 소기의 목적을 잃어버린 자유학기제로 중학교 1학년을 속절없이 날려버리는 등 수시로 뒤바뀌는 교육제도 때문에 중고등학교 시절 내내 뒤죽박죽 혼돈의 연속이었다. 문이과 통합 및 선택과목 이수 등 후배와 함께 개정된 교육과정을 이수해야 하지만 수능은 선배들처럼 개정 전 과목과 방식으로 치러야 하는 유일한 세대기에 '버림받은 세대'라는 말까지 돌고 있다. 우리나라의 입시지옥 속에 힘들지 않은 세대가 어디 있겠냐마는 우리 아이 세대에게만큼은 제도의 엇박자와 가혹한 외부환경이 해도 해도 너무하다는 원망만 커져갔다.

작년까지만 해도 고3이란 남의 집 이야기인 것만 같았고, 고3과 고3 엄마들은 동굴에 숨어 사는 머리에 뿔이 달린 생명체처럼 낯설고 두렵게 느껴졌다. '대입'이라는 대한민국 입시의 피날레, 최고 난이도 관문을 통과해야 하는 대단한 임무을 완수해내야 하는 존재이기에 절대 가까이 가서 귀찮게 하거나 건드려서는 안 될 미지의 예민한 존재처럼 낯설고 비장하게 느껴졌다.

어느새 쏜 살처럼 시간은 흘러 올해 딸아이는 고3이 되었고 주변 사람들은 고3이 있는 우리 집을 머리에 뿔 달린 괴물이 사는 집인양 거리를 두고 슬슬 피하는 것만 같다. 왜 하필... 딸아이는 이제까지의 비운도 모자라 대한민국에서 가장 많은 동정표를 받고 있는 코로나 시대의 고3이 되었을까. 아무리 신세한탄을 해보아도 돌아오는 것은 영혼을 갉아먹는 불안과 걱정들뿐이다. 살얼음판을 걷듯 하루하루가 아슬아슬하다.



아이가 고3이 되었지만 코로나로 인한 휴업 때문에 2개월 이상 등교가 미루어졌고 5월 20일이 되어서야 고3으로서 첫 등교를 하였다. 하지만 등교를 하자마자 연달아 3개의 시험을 치르며 딸은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무척이나 힘들어하고 불안해했다.


우리... 남은 시간 동안
아무 일 없이 건강하게만 버텨보자.
지금은 그 외에 다른 건 아무것도 중요하지 않아.


작년까지만 해도 소위 명문대 진학에 대한 욕심 때문에 입에 올리지 못했던 말들이, 맹세코... 진심으로 흘러나왔다. 지금은 시험을 잘 보고 좋은 대학에 가는 것이 문제가 아니고 이 칠흑 같은 시간을 건강하게 잘 버티느냐 버티지 못하느냐가 제일 중요한 관건이 되었기 때문이다. 딸의 눈빛은 순식간에 달라졌다. 엄마가 그렇게 이야기해주니 마음이 한결 편해진다고, 그렇게 말해줘서 고맙다고 말한다. 몇 해 전 떨어진 성적에 실망감을 감추지 못했던 철없는 어른의 표정을 딸은 기억하고 있었으리라. 그랬던 엄마가 이제 조금은 달라졌음을 느끼는 듯했다. 외동인 딸아이의 마음에 부모의 기대라는 부담은 제법 버거웠던 모양이다. 내적인 성찰이 아닌 세상을 휩쓴 전염병으로 인한 깨달음일지언정, 몸만 어른이 되어버린 엄마도 변화하고 성장하고 있었다.

이 글들은 2020년 코로나 19와 함께 고3의 일상을 살아내며 버텨내고 있는 한 평범한 엄마의 기록이자 사춘기 청소년을 키우고 있는 대한민국 모든 엄마들을 향한 응원이자 위로다. 이 어수선한 난리통 속에서도 우리는 때로는 웃고 때로는 좌절하며 하루하루 기적 같은 일상을 살아내고 있다.

다리도 없고 배도 없어서 강을 훌쩍 건널 수 없을 것 같지만 차근차근 구명조끼를 갖춰 입고 강 속에 몸을 던져보는 거다. 막상 강에 뛰어들고 보면 힘이 들긴 해도 수심이 생각보다 깊지 않고 물살도 잔잔해서 두 발과 두 팔을 휘저어가며 너끈히 건널 수 있을지도 모른다. 무사히 강을 건너고 나서 뒤돌아보면 팔다리가 풀려 주저앉아버릴지도 모르지만 그렇게 무모한 듯 용기를 내서 한번 뛰어들어 보는 거다. 힘든 오늘도 언젠가는 웃으며 추억할 그 날은 반드시 올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