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대학에 못 가면 내 자식이 아닌가요?

feat. 입시설명회에 대한 TMI

by Minimum


아이가 중고등학생이 되면 학부모는 입시설명회에 익숙해져야 한다. 입시 컨설턴트를 통해 시시각각 변하는 입시정보의 핵심을 정리&업데이트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능력 있는 학원 선생님들 또한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올해는 코로나라는 변수로 인해 대부분 온라인이나 드라이브 쓰루 등 새로운 방식의 설명회들이 개최되고 있지만 여전히 학원에서는 방역수칙을 지켜가며 소규모로 오프라인 현장 입시설명회를 개최하고 있다. 학부모들 또한 집중도 잘 되고 질문도 가능한 오프라인 설명회를 선호하는 편이다. 학원에서 입시설명회를 개최하는 목적은 학원 선생님들의 화려한 말솜씨로 학부모들의 귀를 팔랑거리게 만들어 더 많은 수강생을 유치하려는 것이다. 하지만 그런 상업적인 속내만을 노골적으로 드러내서는 학부모들의 비호감을 유발하고 참석률이 저조할 것이 뻔하기 때문에 유명 입시강사를 섭외하거나 원장이 직접 인터넷으로는 접할 수 없는 고급 입시 정보를 제공함으로써 학부모들을 유인한다. 이런 설명회는 학기나 방학 시작 전, 정기고사 직후에 쏟아지듯 개최된다. 시험 결과에 따라 학원을 바꾸기 위해서, 또는 기분 전환을 위해 쇼핑을 하듯 엄마들은 잘 나가는 학원들을 순례한다. 대개 학원강사들의 영업용(?) 설명회가 먼저 진행되고 입시정보 강의는 맨 마지막 순서에 진행된다. 입시강의를 먼저 진행하게 되면 그것만 듣고 자리를 뜨는 학부모들이 많기 때문이다. 시간과 장소가 한정적이기에 학부모들은 엑기스인 본론을 듣기 위해서는 듣기 싫어도 서론을 들어야만 한다. 이 곳 저곳 학원을 순례하며 설명회에 익숙해지다 보면 나름의 요령과 편법도 습득하게 된다. 예약을 해야만 입시자료집이 제공되기 때문에 예약만 하고 참석하지 않는 경우도 있고 비록 뒷자리에서 들을지언정 입시강의 시간에 맞춰 늦게 참석하는 학부모들도 있으며 꼭 듣고 싶은데 참석이 어려울 경우 친구 엄마에게 강의 녹음을 부탁하기도 한다. 그러나 무작정 입시설명회를 많이 듣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 그 정보가 내 아이에게 유용해야지만 들인 시간과 노력이 의미 있을 것이다: 그래서 전국적으로 유명한 입시전문가의 설명회보다는 우리 아이가 다니는 학교의 선배들의 입시를 오랫동안 지도한 경험이 있어서 학교에 대해 속속들이 잘 알고 있는 입시전문가의 강의와 정보가 훨씬 더 정확하고 유익하다. 유명 입시강사의 강의는 유튜브 등 온라인을 통해서 듣고 현장 설명회는 위와 같이 내 아이의 학교에 특화된 노하우를 가진 학원에서 듣는 것도 좋은 선택이다.

필자의 경우도 처음에는 무턱대고 대형학원에서 개최하는 유명 입시전문가의 설명회를 우선적으로 들었지만 내 아이의 학교나 계열에 특화되지 않은 필요 없는 정보들이 넘칠 뿐이었다. 그래서 내 아이가 다니는 학교와 지망하는 계열에 대해 잘 알고 있으며 학교 선배들을 많이 다녔던 학원의 설명회를 찾아 듣기 시작했다. 그러다 한 학원의 원장님 강의를 듣게 되었는데 그분의 말씀은 다른 스타 입시 컨설턴트들과는 결이 많이 달랐다. 그분은 전국적으로 그다지 유명한 분은 아니었지만 내 아이의 학교의 선배들의 입시를 오랫동안 무수히 지도해왔기에 입시정보도 무척 알짜배기였고 특히 툭툭 여담처럼 전하시는 입시 이외의 인생 선배, 학부모 선배로서의 조언들도 뭔가 달랐다.


어머님들... 좋은 대학에 가지 못하면
내 자식이 아닌가요?


갑자기 툭 던지신 특별할 것 없는 그 한 문장에 왜 눈물이 핑 돌았는지... 귀하디 귀한 하나밖에 없는 딸내미 명문대에 보내고 싶어서 이 설명회 저 설명회를 기웃거리던 나는 얼굴이 화끈거려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왜 나는 아이의 성적과 입시에 이토록 매달리고 있는 것일까? 혹여라도 아이의 학업적 성취를 나의 체면이나 자존심 위에 달 훈장이나 장식처럼 생각하지는 않았을까? 아이가 무엇을 하며 어떻게 살아야 행복할지, 아이의 인생 자체에 대해 고민하기보다는 조금이라도 더 레벨이 높은 대학에 보내고 싶은 세속적인 욕망을 맹목적으로 쫓고 있지는 않았는가? 태양을 향해 맹목적으로 날아가다가 날개가 녹아버리기 직전에 누군가의 계시를 듣고 깜짝 놀라 움찔하며 멈춰서 버린 듯한 우스꽝스러운 이카루스의 모습이 나의 모습과 겹쳐 보였다. 선생님의 말씀은 계속 이어졌다.


고3 1년 동안 어머님들은 아이에게 최대한 말을 줄이도록 노력하세요. 공부에 대한 말은 특히 하지 않으셔야 합니다. 집에 돌아왔을 때 ‘수고했다’는 말도 하지 마세요. 아이들은 그 말도 그렇게 듣기 싫대요. 그저 맛있는 음식 해주시고 건강 관리 잘해주시고 사랑만 듬뿍 주세요. 아이들은 고3이 됐다는 사실만으로 이미 충분히 힘듭니다. 좋은 대학에 가지 못하면 내 자식이 아닌가요? 제 둘째 아이도 고3인데 작년까지 전교 5등 안에 들 정도로 공부를 잘하던 아이가 고3 들어와서 무슨 일인지 하루 종일 공부는 안 하고 잠만 잡니다. 제 속은 터지지만 겉으로는 아무 말도 안 해요. 작년까지의 내신이 좋기 때문에 00 대학은 갈 겁니다. 기대치를 낮추고 모든 것을 내려놓으니 마음의 평화가 찾아옵디다. 지금의 슬럼프는 어쩔 수 없는 일이라 받아들이고 잔소리하지 않으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묵묵히 지켜봐 주고 사랑을 듬뿍 쏟는 부모의 모습이 아이의 마음에 큰 안정을 줍니다. 댁에 자녀들은 열심히 공부하고 있지 않습니까. 이제 공부는 아이에게 맡기시고 말은 줄이시되 맛있는 음식과 사랑만 많이 해주세요. 대학은 인생의 한 과정일 뿐 절대 인생의 목적도 전부도 될 수 없습니다.


이 뻔한 이야기들이 왜 그리도 내 가슴을 후벼 팠는지 모른다. 고3도 버거운데 코로나라는 재난까지 겹쳐 모든 고난을 감내해야 하는 우리 아이들은 오죽이나 힘들까. 하루 종일 마스크를 쓰고 수업받고 공부하느라 집에 돌아온 아이의 볼에는 울긋불긋 피부 트러블이 한가득이다. 자는 아이의 볼을 쓰다듬으며 안타까움에 가슴이 저려온다.

선생님의 말씀을 생활 속에서 실천하려고 부단히 노력하고 있지만 궁금한 것도 많고 하고 싶은 말도 많은 주책 엄마인지라 묵언수행을 잘 해내기란 너무도 어렵다. 태어난 그 날부터 경험해보지 못했던 무한한 행복을 느끼게 해 준 내 아이. 그 아이가 어떤 대학을 가고 어떤 삶을 살든 나는 영원히 그 아이를 응원하고 사랑할 수밖에 없다. 수험생 뒷바라지를 하느라 일상 속에 지치고 힘들 때마다 이 사실을 가끔씩 떠올리고 '묵언 사랑'을 실천하기 위해 노력해보는 것만으로도 슬기로운 고3맘 생활의 절반은 이미 성공했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