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쓰는 사람은 전부 작가다. 작가가 뭐 별 거냐. 호기롭게 브런치에 글을 쓰기 시작했다가 작가라는 벽에 번번이 좌절했다. 피드백 없는 일을 매번 알아서 한다는 게 참 쉽지 않았다. 아무런 대가 없는 일에 영혼을 갈아 넣을 만한 여유도, 결국 해내고 말 거란 깜냥도 없다는 게 문제였다. 그러면서도 배고픈 고양이처럼 작가의 세계를 기웃거렸다. 긍정의 내가 '쓰기만 하면 작가라니까?'라고 꼬드기면 부정의 내가 '쓰는 게 쉬운 줄 알아?'라며 비아냥거리곤 했다. 뭐라도 쓸 거처럼 폼이란 폼은 다 잡아놓고 나 몰라라 도망치고 마는 짓. 그런 짓거리를 몇 년이나 반복해 온 게 브런치에 그대로 남아있었다. 새 계정을 다시 만들고 싶었다. 아무도 모르는 필명으로 다시 시작하려고 했다. 작가 신청이 세 번쯤 떨어지지 않았으면 말이다.
나는 여전히 굳은살 같은 글들과 남아있다. 아프고 불편하고 떼어내고 싶은 글들. 그동안 브런치에는 살면서 자잘한 얘기까지 시시콜콜 썼고, 남부끄러운 비밀도 서슴지 않게 얘기했고, 혼자서 징징거리는 말들도 필요 이상으로 끄적였다. '나'라는 미숙한 인간에 대한 보고서라고 봐도 될 지경이다. 지금껏 이 계정에 쓰기를 꺼렸던 건, 안 그래도 모난 부분에 흠집을 더하고 싶지 않아서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면서도 시간이 지나면 자꾸만 이곳에 돌아왔다. 스스로를 브런치 철새 정도로 부르면 될까. 띄엄띄엄한 발행일을 보면서 그동안 얼마나 쓰지 않았는지, 차곡차곡 쌓인 날들의 두께를 가늠해보곤 했다. 이번에는 얼마나 후회하고 방황했는지, 결국 다시 쓰기까지 몇 번이나 망설였는지. 지난한 쓰기의 세계에서 영영 멀어지지도 못하고, 그 세계에 머무르지도 못하는 내가 밉다. "다시 또 시작됐구나." 누구도 알아주지 않는 말만 늘어놓다가, '이젠 그만해야지'라면서 무너져 내렸다가, 누구라도 내 마음 좀 알아달라고 맴맴맴맴- 울다 마는 짓거리. 그 짓을 해마다 반복했다. 여름이 지나고 제풀에 지쳐서 스러지는 매미처럼. 힘껏 울려고 사는 사람처럼 브런치에 한을 풀고, 언제 그랬냐는 듯이 조용히 잘 살아갔다.
어쩌면 쓸 수 있기에 살 수 있었던 건 아닐까. 이곳에 힘든 일을 잘 풀어내고 떠났기에, 다시 돌아올 수 있었던 듯하기도 하다. 실은 씀으로써 충분히 위로를 받고, 그 위로로써 대가를 받은 건 아닐까. 쓴다는 건 내 상처가 잘 떨어져 나갈 수 있게 해주는 행위일 지도 모르겠다. 다른 사람들에게도 이 경험을 알려주고 싶었다. 나는 브런치를 통해 내가 씀으로써 받았던 위로를 많은 사람들에게 나눠주고 싶다. 가식적인가? 물론 못 버는 작가보다는 잘 버는 작가가 되고 싶고, 안 유명한 작가보다는 유명한 작가가 되고 싶은 게 솔직한 바람인 건 맞다. 누가 안 그러고 싶은가. 그러나 현실적인 목표까지 가는 길이 보다 따뜻했으면 하는 마음도 진심이다.
그 과정을 묵묵히 기다려준 브런치에게 감사의 인사를 보낸다. 브런치는 내가 무책임하게 작업물을 두고 떠났는데도, 실망 한 톨 없이 '작가님을 기다립니다'라면서 늘 마감을 기다린다. '그거 이제 연재 안 해요'라면서 산통을 깨고 싶은 마음이지만, 한편으로는 기대 없는 기다림이 따뜻하고 고맙기도 했다. 브런치 10주년. 원고도 잘 내놓지 않고 잠수를 타버리는 악성 작가를 잘 버텨주었다. 내 구질구질한 하소연을 받아주느라 고생했고, 쓰는 마음을 놓지 않고 붙들 수 있게 해 줘서 감사했다. 앞으로는 브런치 철새로서 보금자리에 더 자주 날아오도록 보답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