척, 하면서 살아요
서른 살의 길 찾기, 아니 길 잃기
나는 보험 마케팅 회사를 2년 반, 병원/관공서 마케팅 회사를 3개월 다니고 그만뒀다. 전자는 자기 발전이 없는 회사라고 생각해서 그만뒀고, 후자는 이것저것 신경 쓸 게 많은 종합 마케팅이 내겐 버거웠다
그 이후로 쭉 백수의 삶을 살다가 A마케팅 회사의 원고 프리랜서로 들어가기로 했다. 사실 마케팅에 질려서 이 일은 다신 안 하겠다고 다짐했다가, 취업난에 휩쓸려 "어푸어푸" 거리던 중에 기둥 하나를 잡았다.
허우적대는 중에도 물 위로 나오기 위한 몇 가지 계획이 있긴 했는데, 이상하게도 상황이 조금 나아지자 그 계획이 멀게만 느껴졌다. 막상 시작하려니 생각보다 쉽지 않을 것 같았고, 나중에는 그 계획 자체가 허무맹랑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내가 정말 할 수 있을까. 지금 이러고 있는 게 맞나? 남들 다 길 따라 올라가는데, 나는 왜 여기서 헤매고 있을까. 그런 고민에 스스로 위축되고 두려워지는 패턴의 반복이다.
게다가 혼자서 무언가를 한다는 게 생각보다 많이 외로운 작업이라는 걸 느끼곤 한다. 스스로 극 내향인이라고 생각하는 데도, 외로움에 대한 면역은 사실 별로 높지 않은 듯하다. 하지만 외로운 티, 힘든 티 내는 것만으로도 자존심 상한다. 적어도 당신들만큼 바쁜 척은 해줘야 내 기분이 살고, 당신들만큼 계획적인 척은 해줘야 내 세계가 지켜진다.
그래서 더욱 척, 하려고 한다. 바쁘고 계획적인 척하려면 뭔가를 해야 하고, 씩씩한 척하려면 외로울 틈 안 줘야 한다. 그러다 보면 언젠가는 척, 안 해도 되는 날이 오지 않을까.
(사진: 핀터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