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릴 수 있었을까, 누구의 잘못인가.

by 민상필


점심 식사를 마친 뒤, 조용한 사무실에 울려 퍼지는 출동벨 소리.


"구급출동, 구급출동."


구급단말기에 적힌 신고 내용은 이랬다.

“암 투병 경험이 있는 사람이 몸 상태가 좋지 않아 병원에 가고 싶어함.”


우리는 급히 구급차를 타고 신고자의 집으로 향했다.

차 안에서는 어떤 처치를 해야 할지, 어느 병원으로 가는 것이 좋을지 논의하며 이동했다.

신고자의 집은 소방서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이었다.


현관 앞에서 우리를 기다리던 환자는 캐리어 하나와 작은 가방을 손에 든 채 조용히 서 있었다.

그 모습에서 이미 '이송'의 목적이 어느 정도 짐작됐다.


현장에서 상황을 파악해보니, 과거 암을 앓았던 이력이 있고 정기검사도 할 겸 입원을 하려 한다며 다니던 대학병원으로 이송을 요청했다.

하지만 문제는 그 대학병원이 왕복 4시간이 걸리는 원거리였다는 점이다.

환자의 바이탈도 정상이고 특별한 응급 증상도 없어 단순 병원이송으로 판단, 이송을 거절했다.

(환자의 상태에 따라 적절한 병원을 선정하는 것은 구급대원의 몫이다.)


그때 환자는 목소리를 높였다.


“내가 가다가 쓰러지면 책임질 거예요? 내가 낸 세금으로 월급 받으면서 그것도 못 해줘요?”


그 한마디에 판단은 더욱 조심스러워졌다. 상황실과 센터장님께 연락을 드렸고, 결국 이송을 하기로 결정됐다.


“좋은 게 좋은 거다. 괜히 민원 생기면 서로 힘들다.”는 센터장님의 말이 귓가에 남았다.


우리는 그렇게 왕복 네 시간이 걸리는 대학병원으로 향했다.

가는 길 내내 구급차 안은 조용했다.

환자는 들것에 누운 채 잠들어 있었고, 바이탈은 안정적이었다.


대학병원에 환자를 인계하고 나서, 오랜 운전 끝에 지친 몸을 이끌고 다시 소방서로 돌아왔다.

점심을 먹고 출발한 우리는 뒤늦은 저녁 식사를 시작했다.


그때 막내 반장님이 다가와 우리가 출동한 사이에 있었던 일을 전했다.

우리 관할 지역에서 50대 여성이 갑자기 쓰러졌고, 가장 가까운 15분 거리의 다른 구급대가 출동해 병원으로 이송했지만, 결국 의식을 되찾지 못했다는 이야기였다.


가장 우려하던 일이 현실이 되어버렸다.


내가 단순 이송을 거절하고, 5분 거리였던 우리가 그 환자에게 갔다면…

그 여성을 살릴 수 있었던 건 아닐까?

그분도 누군가의 엄마이며 사랑하는 아내이자 자식이었을 것이다.

우리 부모님이었다면, 나는 내 결정의 결과를 받아들일 수 있었을까?


그날 이후로 ‘만약에’라는 단어가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나는 이렇게 스스로를 다독이려 했다.

“그럴 수도 있지. 어차피 사람은 언젠가 죽는 거야.”


감정을 지우려 노력했고, 냉소적인 생각들로 스스로를 무디게 만들었다.


그러지 않으면 무너질 것 같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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