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어렸을 적 기억 속 우리 집은 참 가난했다. 내가 살던 동네를 사람들은 수용소라 불렀고, 집집이 다닥다닥 붙어있어 옆집 숙희 이모네 말소리며 웃음소리, 숙희 이모가 아저씨랑 싸우는 소리가 들리는 건 기본이었다. 비가 오는 날이면 낡은 스레트지붕 천장에서 뚝뚝 떨어지는 빗물을 받기 위해 다라이를 놓아두었고, 그 소리를 자장가로 삼아 잠들기 일쑤인 우리 집은 전쟁 끝난 전장 속의 수용소 신씨네였다.
가난했던 형편이라 엄마는 갓난쟁이인 나를 업은 채 언니 손을 잡고 나이트클럽에 청소를 하러 가기도 했고, 신발 사는 돈이 아까워 남들이 뭐라든 구두 대신 물쓰레빠를 신는 억척스런 아줌마였다.
우리 집엔 아빠와 엄마, 언니와 나 이외에 나보다 3살 위인 사촌오빠가 함께 살았다. 오빠가 고아원에 적응을 잘 못해서 바지에 소변을 몇 번 누는 바람에 퇴출 연락이 왔는데 외가식구들 아무도 오빠를 데려가지 않아 고모인 우리 엄마가 오빠를 데리고 왔고 그때부터 우리는 함께 생활하게 되었다.
엄마 아빠가 일을 마치고 돌아오시기 전까지 우리 셋은 언니가 끓이는 라면 한 봉지로 주린배를 때웠다. 당시 어려서 글자를 몰랐던 나는 반은 노랗고 반은 빨간 봉지의 그 라면을 동네에서 보던 꽃 색인 개나리꽃 라면이라 불렀고, 개나리꽃 라면 한 봉지를 끓이면 우리 셋의 치열한 젓가락 삼파전이 (눈치싸움이) 시작되었다.
우리는 늘 가위바위보로 순서를 정해 순서대로 젓가락질을 했는데 어렸던 나의 서툰 젓가락질은 내 눈에서 자주 눈물을 뽑았고, 언니와 오빠는 조삼모사의 대책으로 국물은 내가 먼저 떠먹게 해 주었다. 그러면 나는 또 배시시 기분이 풀려 국물로 배를 채우곤 했다. 그러나 국물을 떠먹을 때 함께 떠오르는 건더기가 먹고 싶었지만 이상하게도 건더기는 늘 언니나 오빠차지였다.
언젠가 오빠가 말하기를 내가 국물을 먼저 뜨고 건더기가 훅 올라오면 오빠가 얼른 건더기를 떠서 먹는 거라며, 국물을 떠먹는 순서가 바뀌는 건 사실 좋은 게 아니었다는 진실 혹은 거짓을 말해줬을 땐 부들거리는 배신감과 동시에 세상을 살아가는 법을 깨우치기도 했다.
그렇게 나는 국민학교를 입학했고, 초등학교 2학년이 됐을 때 우리는 조금 더 넓은 집으로 이사를 갔다. 이사는 했지만 사실 이렇다 할 큰 변화는 없었다. 엄마 아빠는 늘 일을 하러 가셨고 학교 마치고 오면 우리 집엔 늘 개나리꽃 라면이 있었다. 글을 읽을 줄 알 즈음에 그 라면이 '진라면'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20대가 되어 취직을 한 나는 명절에 회사에서 나온 상품권으로 엄마와 마트에 장을 보러 갔다. 엄마는 카트에 진라면을 담았다. 다른 라면도 좀 사랬더니 엄마는 이거면 된다 하셨다. 어지간히도 맛있나 보다 싶어 웃으며 엄마는 왜 맨날 진라면만 사느냐고 그렇게 맛있냐고 물었다. 그리고 돌아온 대답에 나는 그제야 알게 되었다.
"값도 좋고 맛도 좋고 얼매나 좋노."
값이 싸서 고르는 것처럼 느껴졌을까 싶어 조금 겸연쩍으셨는지 엄마는 말을 이었다.
"진라면이 니랑 같이 컸다. 이기 옛날에는 새로 나와가 소고기도 들어갔다카고 고급라면이었다. 비쌌다카이. 인자는 다른 라면 살라 캐도 이기 요즘에는 비싸도 안 하고 제일 맛있다 고마."
나는 어쩐지 그 말 한마디에 20년 넘게 숨겼던 엄마의 속마음을 몰래 들여다본 것 같아 마음이 미어졌다.
그날 이후 진라면은 나에게 있어서도 더 의미가 생겼다. 늘 먹던 라면이었지만 더욱 그랬다. 어쩌면 나와 함께 커왔다는 그 고급라면은 100원 한 푼이 아까워 구두 대신 물쓰레빠를 신던 엄마에게는 사치였던 것이다. 그럼에도 엄마가 말하는 여전히 제일 맛있다는 그 고급 라면을 사놓았던 건, 당시 우리에게 비싼 소고기는 사줄 수 없어도 라면만큼은 소고기가 들어간 좋은걸 먹이고팠던, 내 어린 시절부터 지켜 온 우리 엄마의 자존심이었을지도 몰랐다.
서른다섯 살의 나는 이제 두 아이의 엄마가 되었다. 나의 두 아이는 수용소가 어떤 곳인지 알지 못한다. 비가 새는 슬레트지붕이 무엇인지 전혀 모른다. 셋이서 매일같이 라면 하나를 나눠먹는 즐거운 설움을 결코 알지 못한다.
그들은 비가 새는 슬레트 지붕 대신 반짝이며 빛나는 도심 속 층층이 쌓인 따뜻한 집에서, 라면 하나 대신 그날그날 각자가 먹고 싶은 음식을 골라 먹겠다 땡깡을 부리며, 꽤나 유복한 유년시절을 보내고 있다.
그러나 나의 유년 시절과 내 아이의 현재 이 어린 시절이 함께 공유될 수 있는 유일한 한 가지가 있다면 우리는 이따금 주말이 되면 여전히 진라면을 사고 개나리꽃 라면을 먹는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