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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민형 Sep 03. 2019

제주여행, 생각과 글 1


  제주는 스쳐가는 땅이다. 내 부모님 세대에는 누군가와 백년가약을 맺고 나서야 비로소 밟을 수 있는 땅이었다.

내 인생에서 제주를 마주했던 게 몇 번인지 생각해본다. 아마도 처음 이 땅에 발을 디뎠던 건 초등학교 6학년 때였다. 그다음은 고등학교 2학년 수학여행으로, 또 그다음은 군대를 전역하고 23살. 그리고 지금이다.제주를 방문했던 횟수를 되짚어 보는 것만으로 내 인생에서 제주가 많이 스쳐지나 갔다는 걸 깨닫는다.  



 제주는 올 때마다 감상이 다른 곳이다. 초등학교 6학년 때는 가족여행으로, 이모부가 운전하는 차 뒷좌석에 편하게 앉아, 창밖의 풍경을 즐기기보다는 옆자리에 앉은 친척 동생에게 장난치기 바빴다.

 고2 수학여행 때는 친구들과 밤새 숙소에서 고스톱 치느라... 관광버스만 타면 병든 닭처럼 고개를 떨구고 졸기 일쑤였다. "나도 제주도 가봤어!!" 라고 나름 친구들한테 말할 수 있는 수준은 아마도 세번 째 방문부터 라고 할수 있겠다.



 벌써 5년전 일이다. 그때는 히치하이킹으로 일본 일주를 마치고 일상으로 바로 복귀하는 게 무서워서 제주도에 들렀다. 물론 제주도에서도 히치하이킹을 하며 현지인들을 만났다. 모슬포까지 나를 태워주셨던 30대 형님의 제주도 방언이 아직도 기억난다.

"어디까지 갑수꽝?", "맨도롱 또똣헐때 호로록 드리쌉써!"

두 번째 사투리는 솔직히 못 알아들었는데, 그게 너무 재밌었다. 모르는 것이 많은 여행일수록 매력적인 여행이니까.




5년이 지난 지금. 다시 제주를 들여다보려고 한다. 제주는 느린 일상을 사는 곳이다. 천천히 걷고 느리게 살아야만 보이는 게 있다. 돌담 사이사이에도 틈틈이 일상이 끼어있는 곳. 그래서 나는 산책을 다닐 때도 카메라를 메고 다닌다



정말이지 매력적이지 않을 수 없다. 80리터 배낭을 메고 홀로 길을 걷고 있으니 이런 생각이 들더라.

같은 장소를 몇 번이고 방문해도시간의 흐름에 따라,

동행의 유무에 따라 여행지의 감성은 유기적으로 변하는구나 하는 생각.




이번 여행의 목적은 몇 가지 단어로 추릴 수 있다.

자연, 재회, 사진, 글


몇 가지는 성공적이고 몇 가지는 아쉬움이 남는다. 지금까지는 말이다.

우선 '자연'을 들춰보면 지난주에 비행기가 제주도에 착륙하고 부터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비 내리는 이색적인 풍경을 찍을 수 있겠다' 라고 좋아라 했지만 그것도 하루 이틀이지. 가을 장마란다. 푸른 한라산을 오를 수 있는 날만 손꼽아 기다리고있다.




두번째로 '재회'

여행은 만남의 연속이다. 새로운 만남은 언제나 즐겁다. 헤어지기 전 우리는 은연중에 다음 만남을 기약한다. 함께 했던 시간이 소중할수록 재회의 약속은 정확해진다. 2년 전 멕시코에서 만났던 자전거 여행자와 재회. 3년 전 정형외과 옆 침대에 누워서 수다 떨었던 형과 재회. 6년 전 군대를 함께 했던 후임과 재회. 모든 재회가 감사하다. 지금까지 인연의 끈이 이어져있다는 게 신기하다.




마지막으로 '사진과 글'


제주의 노을은 이국적이다. 협재 해수욕장에서 바라봤던 핑크 빛의 노을은 보는 이로 하여금 감동을 안겨주었다. 역설적인 말이지만 나는 정말 아름다운 풍경을 마주할 때면 오히려 사진은 적당히 찍는 편이다. 망원렌즈로 불타오르는 노을에 초점을 맞추고 셔터를 눌러 몇 장의 사진을 남기고는 카메라에서 얼굴을 떼고 나머지 풍경은 광각렌즈인 내 두 눈에 담는다. 아름다운 빛을 카메라에만 담는건 비겁하다.



매일 아름다운 풍경을 보고 따듯한 사람을 만날 수 있는 여행이니까.

긍정적인 생각, 좋은 글이 써지는 건 당연하다.



제주에 오길 참 잘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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