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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민형 Sep 07. 2019

비와 함께


남원, 제주 


위미, 제주


 제주에 온지 9일이 지났다. 그동안 해를 볼 수 있었던 날은 오직 이틀뿐. 물론 비가 오는 날도 중간중간 구름 사이로 해는 모습을 드러냈다. 마치 '나 아직 하늘에 떠있어.'라고 생색내는 것처럼 말이다. 비의 계절을 지나 세상이 물들기 시작하는 시기에 제주를 찾았지만 내가 마주했던 제주는 온통 회색 빛깔로 젖은 모습이었다. 몇 년만에 재회한 나의 인연들은 하나같이 같은 말을 했다.


"이럴 때 제주에 와서 어떡하니?"

그러면 나는 아무렇지 않다는 듯 대답했다.

"이럴 때만 찍을 수 있는 사진이 있겠죠!"


 사실 아무렇지 않지 않다. 변덕스러운 날씨는 며칠로 족했다. 다음주에는 한라산에 오를 수 있기를. 자연 속에서 사색할 수 있기를.




 제주 남부, 서귀포에 숙소를 잡았다. 다른 곳의 절반 가격의 숙박비와 허름해 보이는 건물 외관이 나의 마음에 쏙 드는 곳이었다. 숙소 근처에는 '서귀포 올레시장'이 위치해 있다. 슬리퍼를 질질 끌고 시장거리를 쏘다니며 현지인 코스프레를 한다. 누군가에게는 일상의 풍경인 제주가 나에게는 신선한 여행지가 된다. 우산을 쓰고 거리를 걷는데 빗줄기가 거세졌다. 때마침 정류장에 정차해 있는 201번 마을 버스에 몸을 실었다. 목적지는 없었지만 비를 피하려는 목적이 생겼다. 지하철 2호선이 서울을 순환하 듯, 201번 마을버스도 제주를 크게 한 바퀴 돈다. 귀에 이어폰을 꽂고 흘러가는 회색빛 풍경을 감상한다. 30분쯤 지나 버스에서 내렸다. 



 도착한 곳은 '위미'라는 작은 마을. 길가에 현무암으로 쌓은 돌담이 인상적인 곳이다. 돌담 너머로 초록색의 감귤이 빗물을 머금고 있다. 쏟아붓던 비는 그치고 구름 사이로 해가 나왔다. 이윽고 해는 다시 먹구름에 가려진다. 습기가 스며든 공기를 마시며 미지의 마을을 거닌다. 걸음과 걸음 사이에서 일상과 여행의 경계가 선명하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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