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임지고 감당해야 할것
제주 여행을 마치고 육지로 돌아왔다. 2주 만에 마주한 한강은 여전히 푸른 빛깔을 띄며 서울을 관통하고 있다. 이번 여행에서 나에게 남은 건 사진과 추억, 그리고 사람이다. 처음 만난 사람과 새로운 인연을 맺고 구면의 친구와 우정을 단단하게 다졌다. 내가 모르는 분야의 이야기를 해주는 사람은 언제나 흥미롭다. 서귀포에서 군대후임을 6년만에 만났다. 그 친구는 베트남에서 2년간 일을 하다가 지금은 서귀포에서 서핑 강사를 한다. 베트남에 있을 때는 돈을 꽤나 잘 벌었다고 말했다. 그때에 비해 지금은 반의 반 토막의 돈을 받으며 일하는데 요즘이 더 재밌고 행복하단다. 그 친구에게 '돈'은 인생의 행복을 평가하는 지표가 아닌듯했다. 동질감이 느껴졌다. 나도 그런 족속의 사람이기 때문이다.
며칠 뒤에 홀로 한라산을 올랐다. 그간의 여행을 머릿속에 정리하기 좋은 코스였다. 풀 내음 가득한 산길을 걸으며 생각했던 주제는 '과연 어른이 된다는 건 무엇일까.'였다. 오로지 행복만을 좇는, 꿈만 바라보고 사는 사람이 어른인 건가. 자신이 처한 현실을 인지하고 삶의 울타리 안에서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 어른인 건가. 두 가지 논제가 내 머릿속에서 복잡하게 얽혀있다. 아직도 풀리지 않은 논제이지만, 여행을 다녀온 지금은 이렇게 말할 수 있겠다. 어른이 된다는 건 자신이 책임져야 할, 감당해야 할 것이 조금씩 늘어나는 것을 의미한다. 나이가 들수록 인생의 무게가 느껴진다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다. 위의 두 가지 논제에 나를 대입하면 나는 전자에 해당한다.
꿈과 행복을 좇고 싶은 사람. 그렇다고 현실에서 눈을 돌리고 싶지는 않다. 지금은 책일져야 할 것을 다 받아들일 수 있는 그릇을 키우자. 내가 포용할 수 있는 삶의 범위를 넓히자. 그게 지금 내가 생각하는 어른이 되어가는 길이다.
서울에 도착하니, 2주간의 가을장마가 끝났다. 습기 없는 선선한 공기가 너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