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유독 감성적인 사람이라는 걸 깨달은 건 열네 살 때의 일이다. 요즘도 그러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학교에서는 부정행위를 방지하기 위해 학생들을 반으로 나눠 다른 학년의 반에서 시험을 치르도록 했다. 첫 번째 줄은 1학년, 두 번째 줄은 2학년, 그다음 줄은 다시 1학년… 1학년이던 나는 2학년 선배들의 반에서 시험을 봤고 내 자리에는 3학년 선배가 와서 시험을 봤을 것이었다. 시험을 마치고 돌아온 나에게 우리 반에 남아 있던 친구가 말했다.
"3학년 선배가 이거 보고 오글거린대."
내 책상 위에 적혀 있던 '꿈을 꾸는 사람은 그 꿈을 닮아간다'는 문장을 보고 한 말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어쩌라고' 싶은 이야기이긴 했으나, 그때의 내가 할 수 있던 리액션은 '좀 그렇지? 나도 그렇게 생각하긴 해."뿐이었다. '오글거린다'는 말을 처음 들은 기억이었다.
그 이후로 내게 '오글거린다'는 말은 무엇보다 가장 피해야 할 평가가 되었다. 스스로의 감성적이고 감정적인 모습을 약점이라고 여기며 꽁꽁 숨기려 노력했다. 남들이 보는 곳에서는 문체도 말투도 덤덤하려고 노력했다. 감정을 쏟아낼 수 있는 곳은 일기장과 익명을 앞세운 인터넷뿐이었다.
오랜만에 브런치 글을 다시 읽으며 이때가 떠올랐다. 그리고 브런치 속의 내가 블로그나 인스타그램의 나와 얼마나 다른지 깨달았다. 블로그와 인스타그램에서 나는 최대한 말을 아낀다. 인스타그램에서는 종종 이모지 하나만 적어 올릴 때도 있다. 구구절절하고 싶은 말은 참 많지만 그건 조금 아껴 블로그에 토해낸다. 하지만 블로그에 토 해내는 그만큼도 브런치나 일기에서 만큼의 감정일 수는 없었다.
브런치 글을 다시 읽으며 새삼 내가 얼마나 오글거리는 사람인지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오글거린다는 말이 감정적이고 감성적임을 뜻하는 말이라면 아마 내가 아는 사람 중 나보다 오글거리는 사람을 찾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건 나의 강점이 아닐까? 그 강점을 스스로가 숨기고 감추면서 남들이 나를 매력적인 사람으로 봐주길 바라는 건 말도 안 된다는 생각을 했다. 무던하고 이성적인 사람이 되기 위해 내가 타고난 감성을 버렸던 어린 내가 조금 불쌍하기도 했다.
가끔 열네 살의 그때가 생각날 때면 그 친구에게 이렇게 말하는 상상을 하고는 한다.
"오글거린다고? 나도 알아. 근데 어쩌라고."
말도 안 되는 상상이기는 하지만 앞으로는 이렇게 살아봐야지. 오글거린다고, 지나치게 감성적이라고 나를 비난하려는 사람이 있다면 너나 잘하라고 코웃음 쳐 줄 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