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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민혜 Jul 20. 2024

강사가 나의 이름 대신 '헤이 코리안'이라고 부른다.

이 외국인 강사의 언행을 지적해야 할까?

앞선 글에 이어 쓰는 분노 유발자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저는 미국 시카고에서 생활하고 있는 새댁입니다. 해외살이 중 분노했던 개인적인 경험을 글로 남겨보려고 합니다. 앞선 글을 읽지 않으시고 이 글을 처음 보시는 분들을 위한 요약글입니다. 


1. 토론을 하던 중 어떤 여자애가 "여자는 대통령이 되어서는 안 돼. 아니 어떤 고위직에 가서도 안되지. 생리 주기 때문에 너무 감정적일 때가 있거든." 하는 말을 듣고 와 대박이다.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 여자애가 나를 보더니 "한국에 좋은 사례 있잖아!"라고 말했다.


https://brunch.co.kr/@alsp7769/111


2. 이 주 정도 정규 강사를 대신해서 수업을 맡은 기간제 강사가 학생들을 Korean, Vietnamese, Russian 등 국적으로 지칭했다. 세 번째 수업 시간에는 수갑과 체인을 가져왔다. 과제를 안 하면 문을 잠글 거라나. 그리고 과제로 자기 추천서를 써달라고 이야기했다. 강사들을 관리하는 학교 직원에게 보여줄 거라나. 



https://brunch.co.kr/@alsp7769/112



11화에 이어지는 내용입니다.



셀프 추천을 감행했던 강사가 돌연 모두에게 잘못된 부분을 공유하고 싶다고 말했다. 학생들이 그의 취업(?)을 위해 적어준 추천서들을 바리바리 들고 교실의 한가운데로 왔다. 그는 말했다. "대부분의 레터들이 잘 썼어. 이 정도면 훌륭해. 하지만 한 가지 잘못된 레터의 예시를 들어주고 싶어. 헤이 코리안." 그는 검지를 살짝 들었다. 뭐랄까. 손가락질이라기보다는 약간 노우노우할 때 검지를 양손으로 까딱이는 그 각도로 추켜올려진 그의 검지가 내쪽을 향했다. 



그는 추천서를 읽기 시작했다. 나의 과제물을 열심히 읽어갔다. "이 추천서를 보는 이에게, " "좋아. 아까도 이야기했든 굳이 미스터 미시즈 누구라고 쓰기보다는 이렇게 출발하는 게 좋지." 그는 계속해서 추천서를 읽었다. "나는 이 사람을 당신 회사에 강사로 추천하기 위해 이 레터를 쓴다. 그의 학생으로서 이런 추천서를 써줄 기회를 얻어 영광이다." "아주 베이식한 문구지."



"내가 깜짝 놀란 파트는 여기서부터야." "티칭 경력이 길지 않고 한 가지 일만 하지 않은 점은 그의 약점일 수 있지만, " "이런 문장은 왜 쓴 거지? 이해할 수 없어. 헤이. 사우스 코리안, 나를 비난하기 위해 레터를 쓴 거니?" "비록 나는 영어 교육을 가장 잘하는 사람은 A*라고 생각하지만..." "이 파트 역시 왜 쓴 거지? 나는 이 레터를 쓰지 않을 거고 너는 시간을 버렸어." 그는 어이가 없다는 듯 말했다.



나는 자기 마음에 안 드는 부분만 쏙쏙 골라 읽는 그가 괘씸했다. 심지어 주변에 앉은 학생들과 나는 레터를 서로 교환해서 읽어봤기 때문에 몇몇 친구들은 강사가 사실을 곡해하고 있다는 걸 알아차렸다. 음. 그가 저 글을 읽는 동안 나는 그의 어투에서 강의가 아니라 비난의 어조를 읽었다. 중간에 코리안이라고 또 나를 지칭할 때 그라데이션 분노가 차올랐다.


 



"너 코리안이라고 부르는 걸 멈춰." 나도 안다. 뭐랄까 그가 레터를 지적했을 때 레터의 내용으로 화를 내거나 반박해야 정당한 싸움이다. 저 말을 뱉고 나서 약간 정당하지 못했다는 생각도 들었다. A (레터의 내용)를 지적했는데 나는 그간 모른 척해주던 B (그의 차별적인 언행)에 꽂힌 느낌? 하지만 내가 그에게 국적을 부르지 말라고 했을 때 그는 어이없다는 듯 말했다. "그럼 내가 너를 뭐라고 부르면 되지?" "그건 내가 너한테 첫 수업때 했던 질문이지? 강사의 이름이 뭐냐고." 



돌이켜보면 나는 첫 수업 때 그의 이름을 물었었다. 첫 수업의 절반이 지나도록 그가 이름을 말하지 않아서 뭐 미스터라고 불러야 하나 티쳐라고 불러야 하나 고민되었기 때문이다. 그가 자기의 이름을 굳이 안불러도 된다는 식으로 말했을 때 나는 그에게 "내가 너를 United States로 불러도 되니?"라고 물었다. 그가 계속 학생들을 국적으로 부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가 말했다. "American이라고 부르면 되지 않을까? 왜 사람들은 아메리칸을 아메리칸이라고 부르지 않아?" 내가 말했다. "여기 아메리칸 많잖아. 사우스 아메리칸도 있고." "아니. 왜? 어떤 나라도 자신을 아메리칸이라고 부르지 않아서 우리가 그걸 택한 거야." "그래? 나는 아시안이네. 밥 맛나게 먹엉." 강사는 저 이야기를 이어나갔고 나는 그냥 밥 먹으러 나갔었다. 



다시 돌아와서 나의 분노에 그가 답했다. "하지만 나는 혼자고 여기에 스무 명의 학생이 있는걸? 잠깐 멈춰보자 내가 당신들을 국적으로 기억하는 게 잘못이야?" "기본적으로 그렇게 말하면 기분 나쁘지. 내 미국인 친구 중에 아무도 나를 러시안이라고 부르지 않아." 옆에 있는 다른 사람들도 그에게 불평을 시작했다. 차별적으로 들릴 소지가 있다. 체인을 가지고 온 것도 잘못이다. 같은 불만들이 쏟아져 나왔다. 그는 다시 말했다. "내가 정규 강사라면 이름을 다 물어보겠어. 하지만 단지 세 번의 수업만을 내가 담당하잖아. 나는 외울 수가 없어." "네가 이름을 알고 싶은 최소한의 노력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면, 나는 내 책상 앞에 이름을 붙여놓았을 거야." 그의 논리는 빈약했다. 이름을 외울 수 없다. 국적을 말하는 것은 차별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두 가지 정도였다. 나는 사실 초반에는 아 괜히 얘기했나 싶었다. 강사 기분도 오락가락하는 애 같은데 괜히 지적해서 불편해지는게 싫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이야기가 오갈 때 어느 순간 몇몇 학우들의 입이 터져서 중간에 말할 타이밍을 잡기조차 어려웠다.



"국적을 말하는 게 차별이 아니라면 왜 사람들은 성별로 성적지향성으로 인종으로 국적으로 차별을 해서는 안된다고 말할까? 그런 말 들어본 적 없어?" "누가 나한테 아메리칸이라고 하는 거 나는 상관없어. 맨이라고 말하는 거 나는 상관없어." 그가 말했다. 그러자 갑자기 옆에 있던 아재 학우가 급발진을 했다. "내가 너한테 게이보이라고 하면 기분 나쁘지 않겠니? 그게 한번, 두 번, 세 번 쌓이면 화가 날 수밖에 없지." "내 미국인 친구 중에 아시안 아메리칸도 있어. 내가 걔한테 헤이 아시안 아메리칸, 헤이 아시안 아메리칸 이렇게 말하는 건 이상해." 아재가 씩씩댔다. 갑자기 한 학생이 손을 들었다. "나는 나한테 국적 부르는 거 상관없어." 그 친구는 자기를 국적으로 불러도 상처받지 않는다고 선언했다. 나는 그 친구의 낮은 자존감에 놀랐지만 출신 지역에 따라서 그럴 수도 있겠다 싶었다. 한국에서 나한테 울산 아가씨라고 할 때 그러려니 했으니까. 나는 뭐 굳이 그 친구의 이야기에 반박하고 싶은 생각이 안 들었다. 



강사가 마음을 정리했는지 말했다. "나는 오늘 너네들로부터 많은 걸 배웠어. 국적으로 누군가를 부른다는 것이 차별적으로 들리거나 상처를 줄 수 있다는 걸 말이야. 앞으로는 그렇게 부르지 않을게. 하지만 알다시피 오늘이 마지막 수업이란다." 그는 그 이후로 사람들을 아예 안 불렀다. 마칠 때 즈음 그는 모두에게 악수를 청했다. 그렇게 다이나믹한 수업이 끝났다. 





오후 수업에 들어가서도 소란한 마음은 영 가라앉질 않았다. 다른 친구들에게 불평하고 싶은 마음도 안 들었다. 앉아있다가 결국. 강사가 부탁한 추천서의 수신인 A에게 메일을 썼다. 내가 살면서 메일 중에 제일 긴 메일이었다. 



메일의 내용은 이랬다. "이 학교에서 보낸 시간 좋았다. 하지만 실망스러운 일이 최근에 있었다. 대체 강사의 행동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해서 메일을 쓴다. 그가 말했듯이 그는 좋은 백그라운드를 가지고 있다. 상위랭크된 대학교를 졸업했고, 로스쿨도 졸업했으며 집도 부자라고한다. 하지만, 매우 민감한 차별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오히려 차별적인 발언을 한다. 내가 이제까지 다른 강사들의 수업을 들었을 때 그들은 이런 주제를 더 민감하게 다루고 누군가에게 상처 주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봤다. 나는 이 강사와 수업하면서 내 자신이 매우 재정적으로 어렵고, 이 나라에 돈을 훔치러 온 사람처럼 느껴졌다. 가장 큰 문제는 이러한 학생들의 반응을 강사는 전혀 이해하고 있지 못하다는 점이다." 



"덧붙여서, 내가 이 커뮤니티를 아주 좋아하기 때문에 솔직하게 말할게. 나는 상위권 대학교를 졸업한 강사에게 수업받고 싶은 게 아니야. 이건 중요한 게 아니라고 생각해. 내가 원하는 건 자기 학생들을 존중하고 non-toxic 한 강사를 바라. 이 컴플레인을 빼자면 이곳의 모든 것은 훌륭해. 너와 다른 티쳐들은 좋은 강사야. 이렇게 모든 불평불만과 칭찬을 메일에 담아서 이상하긴 하지만. 나한테 행복한 시카고에서의 일 년을 선사해 줘서 고마워.



A는 아마 그날 학생들로부터 여러 통의 메일을 받았을 것이다. 40분 만에 답장이 왔다. 그의 답장은 이랬다. "이런 후기들을 알려주기 위해서 시간을 써줘서 정말 고마워. 솔직히 말해서 네 피드백은 학생들에게서 받아본 어떤 피드백보다 좋았고, 건설적인 이야기야. 앞으로도 명심할게." 어쩌면 뻔한 답장이긴 했지만.



집에 가서 누워있는데 한 학우에게 문자가 왔다. "너한테 하고 싶은 말이 있어. 네가 보내준 스토리 정말 좋았어. (나는 그 친구에게 단편소설 도시의 개구리 번역본을 보내주었었다.) 그리고 그 이상한 강사. 네가 한 말이 다 맞아. 나는 공개적으로 너를 서포트하지 않았어 그리고 아무 말도 안 했지. 왜냐하면 내가 너무 공격적이고 무례하게 말할까 봐 걱정됐기 때문이야. 하지만 나는 내 화를 겨우 참았어. 너와 다른 친구 몇몇은 정중한 방식으로 문제제기를 잘했다고 생각해. 자신감을 가져! (따봉)(따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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