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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민혜 Jul 09. 2024

유학 생활 중 만난 편견: 여성은 지도자가 될 수 없다

미국 생활 중 만난 싸움 유발자들 (2)


미국 생활을 하면서 분노가 차올랐던 순간들을 소개하고 싶다. 물론 아주 격한 갈등은 아니었다. 하지만 살아오면서 누가 이렇게나 선명하게 자신의 생각을 피력하는 걸 처음 본 지라 기억에 남는다. ‘여성은 지도자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그녀의 의견은 ‘성별, 나이, 학벌 등의 백그라운드는 생각보다 중요하지 않다.‘는 내 의견과 배치된다. 하지만 교실의 많은 학생들이 그녀를 향해 눈살을 찌푸렸음에도 당당히 말하는 모습은 가히 놀라웠다.



이번 글은 미국에 유학을 온 학생과의 갈등을 써보았다. 읽는 분들도 같이 욕해주시기보다는 세상에는 이렇게나 다양한 사람들이 산다고 생각해 주시면 고맙겠다.





당시의 나는 미국의 문화에 관한 수업을 듣고 있었다. 그 수업에는 유독 토론이 많았다. 강사는 국제학생들에게 너네 나라는 어떤지, 너네 생각은 어떤지 계속 물어봤다. 그는 성역 없는 토론을 원한다고 했다. 하지만 내가 느끼기에는 그의 강의 형식은 나쁘지 않았지만 그의 통찰력이나 토론 주재능력은 형편없었다.





첫 수업 시간에 그가 말했다. "헤이. 우리는 궁금한 건 모두 물어보고 서로 의견을 교환하자. 한 가지 예를

들어볼게. 한국과 일본 사이에 있는 그 섬 뭐지? 그건 한국의 섬이 맞나?"라고 물었다. 그는 독도에 대해서 말하고 있었다. 나는 그에게 "독도 말하는 건가? 거긴 한국의 국토지. 우리는 거기에 여권 없이 갈 수 있어. 너나 일본인들은 여권 있어야 해."라고 말했다. 내가 다다다 말하니 그는 은근슬쩍 다른 주제로 넘어갔다. 자신은 전주에서 아이들을 짧게 가르쳤는데, 학원 원장이 그에게 크리스마스에 산타클로스 분장을 하라고 했단다. 그의 종교는 크리스마스를 챙기지 않기 때문에 싫다고 했지만 원장은 막무가내였고 결국 그는 그 학원을 그만두고 한국을 떠났다고 한다.





강사도 이런 아주 개인적인 이야기를 많이 했고, 학생들도 비교적 자유롭게 이야기를 했다. 비교적 이상한 얘기들도 오갔다. 때론 '이상한 이 무엇인지, 내가 너무 엄격한 기준을 가지고 있는 건지 헷갈릴 때도 있었다. 그 수업에서 뭔가 많은 실용적인 지식들을 배우지는 못했지만, 얌전히 앉아있는 친구들이 얼마나 다양한 생각들을 하고 있는지를 깨닫게 되었다. 





정치와 선거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때 나라별 차이를 굉장히 크게 느꼈다. 책에 있는 내용을 읽고, 주제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대뜸 어떤 여자애가 "여자는 대통령이 되어서는 안 돼. 아니 어떤 고위직에 가서도 안돼." 그 애는 목소리를 높이며 의견을 이어나갔다. "여자들은 생리 주기 때문에 너무 감정적일 때가 있거든." 나와 같이 앉아있던 친구의 눈이 마주쳤다. 다른 이들의 반응이 썩 좋지 않아도 여자애는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사실 여자애도 아니고 나랑 동년배의 아갓쒸이긴했다. "우리나라(여자애의 나라*)에서도 여자들은 남편의 일을 어시스트하고 자료들을 정리하고 그런 일을 많이 해." 그녀와 같은 나라 출신의 학생이 학을 떼며 반박했지만 그녀의 논리는 철옹성이었다. 사실 나는 굳이 논쟁에 끼어들고 싶지 않아서 그냥 앉아있었다.


   * 이 친구가 어느 나라 국적인지는 굳이 밝히지 않겠습니다.





하지만 그 아갓쒸 나를 보더니 "한국에 좋은 사례 있잖아! 해고된 대통령 있잖아."라고 말했다. 그녀가 바란 것은 무엇이었을까? 내가 여성 지도자에 대한 나쁜 예를 더 설명해 달라는 것이었나? 사실 저 아갓쒸는 한국에서 대학교를 졸업하고 하와이에서 제법 오래 살았다. 강사가 말했다. "나는 이 논쟁에 개입하지 않겠어. 가능하면 남자들은 입을 떼지 않는 게 좋겠다." 하면서 헤죽 댔다.





"한국에서 대통령이 탄핵된 것이 여성은 지도자가 될 수 없다는 걸 의미하는 게 아냐." 하지만 상대방은 포기하지 않았다. "여자들은 호르몬 때문에 좋은 판단을 하지 못할 때가 있어. 그들에게 나라의 운영이나 빅딜들을 맡길 수 있겠어? 이건 내가 여성이니까 잘 말해줄 수 있어." "저기.. 무슨 소리야. 나는 일을 하면서 존경할만한 여성 선배들을 많이 봐왔는 걸.. 저기 그리고.. 좋은 결정은 경험과 논리를 통해서 나오는 거지. 그리고 그건 뇌로 하는 거야.. 난소가 아니라.." 옆에 같이 앉아있는 애가 나한테 말하라는 듯 유명한 여성 정치인들의 이름을 속삭였다. "나는 솔직히 잘 모르겠어. 네가 같은 이야기를 너의 딸이나 손녀에게도 해주고 싶어? 그리고 선생 당신도 남자는 왜 이 주제에 대해서 말하면 안 된다고 하는 거야? 나는 이해가 잘 안 가네." 이렇게 쏘아대고 싶었던 것은 아닌데. 그리고 사실 저 친구는 나름대로의 경험을 바탕으로 여성은 신뢰할 수 없다는 결론에 다다른 것일 텐데 너무 뭐라고 했나.





이 사건은 내가 미국 생활을 하면서 경험한 문화 충격 중 하나였다. 다른 문화에서 자란 사람들과 충돌은 피할 수 없지만, 어떻게 상황을 풀어나갈지는 내 몫인 것 같다. 특히, 저런 선명한 편견을 마주했을 때 굳이 입을 다물기보다는 의견을 피력하고 서로의 다름을 이해하는 것이 진정한 의미의 토론이 아닐까 싶다. 나는 저 아갓쒸를 설득할 충분한 시간과 의지가 없었지만.. 





이것을 글로 남기는 이유는 단순하게 저렇게 편견에 찬 사람을 같이 욕해달라는 의미가 아니다. 왜냐하면 누군가에게는 내가 편견에 찬 사람일 수도 있으니까. 다만,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들이 공격받을 때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고 말할 근거들을 한 번쯤 생각해 보면 좋을 것 같다. 나는 앞으로도 다양한 사람들과 대화하고 그것을 통해서 나름의 가치관을 세워나가야겠다. 그러면서 더 넓은 시야를 가질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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