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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민혜 Jul 09. 2024

얌전한 한국 아줌마가 파이터로 변하는 순간들

미국 생활 중 만난 싸움 유발자들 (1)

여자 중학교를 다니던 시절이었다. 교실의 뒤에서 아이들이 잔뜩 말뚝박기를 하고 있었다. 여자애들이 두 팀으로 나누어졌다. 연신 달려서 아래에 버티고 있는 말들을 찍어 누르고 환호했다. 가히 폭력의 온상이었다. 내가 유별난 구석이 있는 건지 나는 그런 신체 접촉이 많은 스포츠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그때는 전학간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이라 친구들을 약간 불편해하기도 했었다. 지금은 어딜 가나 거의 키나 덩치로는 밀리지 않지만, 그때는 반에서 제일 줄에 앉는 작은 애여서 그랬을 지도. 그러다가 짝이 안 맞았는지 애가 나에게 다가왔다. 그리고는 말뚝박기를 같이 하자고 요구했고, 나는 거절했다. 친구는 "나는 안 할 건뎅?"이라는 말을 곧이곧대로 듣지 않았다. 떼쓰면 알았는지 계속해서 같이하자고 했었다. "안 한다고 했ㅡ좌ㅡ나ㅡ!!" 빼액 짜증을 내지른 순간 친구는 "그래그래. 얌전하게 있더니 자기 할 말은 다 하는구나." 그런 이야기를 했었다. 예민한 애 취급을 받긴했지만 왠지 뿌듯했다.



이 사건이 시작이었을까? 나는 가끔 뚜껑이 열린다.. 





나는 그 이후로도 계속 욱하는 성질을 영 버리지는 못했다. 상대방이 선을 넘어오는 상황에는 어느 정도 나의 책임도 있다. 그래그래. 더 해봐. 재미있네. 어디까지 가나 보자. 하는 식으로 사람들을 방치하다가 문제 행동이 내게 피해를 줄 때나 신경을 긁을 때 즈음. '내가 이렇게까지 배려했는데 계속 이따위로 하는 거야?'하는 울분과 '될 대로 돼라 우리 관계가 파탄 나더라도 이번에는 뭐라고 해야겠어!' 하는 용기 같은 것이 맞물릴 때가 있다. 그럴 때면 감정의 둑이 터지고야 만다. 하지만 인성질을 하고 나면 왠지 나도 껄끄럽다. 그전에 문제 행동에 대한 지적을 하거나 확실한 선을 그어주는 게 좋았겠노라고 늘 후회한다. 



너무도 약한 몸에 같인 파괴적인 영혼, 그 이름 치와와



직장생활을 하면서도 그랬다. 적당히 일 잘하고 사람들과 잘 지내오다가 가끔.. 대판.. 성질을 낸다. 그럴때면 나 자신이 싫어진다. 사실 이런 모습들을 사회초년생에서 심심치않게 찾아볼 수 있는데, 역시 시간이 지나면 좀 사람이 유해진다. 나도 역시 많이 유연해지고 개소리를 막는 스킬도 제법 늘었다고 생각한 시점이었다. 어느 날 영상회의에 갑자기 참석해 달라는 연락을 받았다. 갑자기 참석해 달라고 하니 머릿수 채우기용  구색이거나 아니면 간단한 자문 같은 게 아닐까?라고 생각하면서 영상회의를 켰다. 물론 아 당일에 이러는 게 어딨냐며 시부렁대면서.. 하지만 웬걸. 상대방은 이 업무를 내게 토스하는 게 좋겠다는 얘기만 계속 반복하는 것이다. 아니 뭐.. 자문은 해드립니다.. 같이 고민하시죠. 했더니. 역시 잘 아시는 그쪽이 하는 게 좋겠다는 답이 돌아온다. 마음이 갑갑.. 하다.





나는 대략 이렇게 답했다. 성과가 안 나올 만한 업무를 토스하면 그쪽은 좋겠지요. 이제까지 묵히면서 잘하고 있다고 말해놓고서 기한 내에 안 될 것 같으니까 던지는 건 상도덕이 아니지요. 뭐 그런 이야기들을 했던 것 같다. 글로 적힌 것보다는 조금 더 했을지도.. 격했던 것 같다.



화면에 업무용 메신저가 떴다. "왜 싸우는데!?과장님이 보냈다. 과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귀를 기울이면 대화 내용은 서로 다 들린다. 보통은 다른 사람들도 통화를 하거나 회의를 하고 있으니 소리가 묻힌다. 하지만 누가 싸운다! 목소리가 커진다! 하면 귀신같이 모두들 귀가 쫑긋! 하는데.. 내가 목소리의 주인이었다니 왠지 창피하다.





영상회의가 끝나고 같이 일하는 분 들하고 회의 테이블에 모여서 그 이야기를 하고, 그래! 안된다고 정확히 말했어야 하는 거였어! 라며 결론지었다. 그리 결론은 냈지만 찝찝한 기분은 가시질 않는다. 과장님이 한마디 한다. "아까 싸울 때 무서워서 우리 동기들한테도 얘기했어!" 와중에 과장님 동기인 다른 과장님이 싸움질 하는 젊은이를 구경하고 가셨다고 한다. 이런. 나의 이미지는 왠지 논리적이지만 유연하고, 강단 있지만 포용력 있는 그런 것이면 좋겠는데. 오랜 시간 같은 직장에서 일하다 보면 때로 밑바닥을 보이고 만다. 잊어주시길..








이 글이 왜 이 연재글에? 싶겠다. 마냥 헤헤 하는 브런치 이웃이 갑자기 싸웠다고 하면 놀랄 수 있으니 전적을 미리 말씀드리고 시작하려는 의도가 깔려있다. 또한, 쓰다보니 길어져서 세편 정도로 나누어 쓰기로 했다. 비교적 한국 생활보다 여유로운 지금도 나는 가끔 화를 낸다. 일 년 반 동안 몇 번의 말다툼이 있었고, 그 순간에는 영어 실력이 순간 상승하는 것을 경험했다. 또한, 집에 가는 길에 영어 공부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다음 글에서는 해외 살이 중 파이터가 되었던 두 가지 순간을 공유해 보고자 한다. 



1. 토론을 하던 중 어떤 여자애가 "여자는 대통령이 되어서는 안 돼. 아니 어떤 고위직에 가서도 안되지. 생리 주기 때문에 너무 감정적일 때가 있거든." 하는 말을 듣고 와 대박이다.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 여자애가 나를 보더니 "한국에 좋은 사례 있잖아!"라고 말했다.



2. 이 주 정도 정규 강사를 대신해서 수업을 맡은 기간제 강사가 학생들을 Korean, Vietnamese, Russian 등 국적으로 지칭했다. 세 번째 수업 시간에는 수갑과 체인을 가져왔다. 과제를 안 하면 문을 잠글 거라나. 그리고 과제로 자기 추천서를 써달라고 이야기했다. 강사들을 관리하는 학교 직원에게 보여줄 거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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