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서민혜 May 11. 2024

미국에서 만난 도를 아십니까? 환경을 사랑하십니까?

길에서 만나는 스몰토크. 미국 여행에서 조심해야 하는 것 중 하나!


오늘 아침엔 날씨가 좋아서 남편의 출근길을 배웅했다. 미시건 스트릿은 쇼핑할 곳도 많고 멋진 건물도 많아서 걷기에는 참 좋다. 얼마 전까지는 거리에 온통 튤립이 만개해 있더니, 오월이라 그런가 튤립은 다 떨어지고 휑뎅그레하게 튤립의 술만 남아있었다.



Apple store in Chicago downtown 시카고 시내의 애플 스토어, 사진은 성 패트릭 데이에 찍어서 강이 초록색이다.



  남편과 바이바이하고 슬슬 걸어서 집에 오고 있었다. 봄이다 봄 ~ 따뜻하다 ~ 하면서.



Michigan Avenue in Chicago 시카고의 미시건 거리


  한참 걷다가 시카고 대학교의 시내 캠퍼스도 지나고, 우리나라에도 있는 카페인 블루보틀도 지났다. 핑크핑크한 아이스크림 뮤지엄도 지나서 한참을 걷던 중.. 저 멀리서 누군가 내게 손을 흔든다. 웬 고목나무같이 키가 크고 마른 흑인 청년 하나가 내게 손을 흔든다. 고목나무 청년 옆에는 케빈 하트 같은 자그만 곱슬머리 청년이 메모장 같은 것을 들고 분주히 돌아다녔다. 고목나무 청년은 계속 손을 흔들었다. 주변을 둘러보니 나 밖에 없었다.  


 

시카고의 시내로 치는 시카고 루프는 선루프 처럼 뚜껑을 말하는 것이고 아래는 다 지하차도이다. 원래 땅은 지하차도 정도의 높이였고 뚜껑을 덮어서 위쪽에도 도시를 만듬. 후덜덜.



  '내 나이 서른둘.. 다크나이트의 도시에서.. 드디어 삥 뜯기는 건가..'



  요 며칠 동네에서 강도사건이 많았다. 주로 사건들은 밤에서 이른 아침에 일어나는데 ATM주위에 강도들이 있다가 거기서 나오는 사람들 가방을 위협해서 뺏는 식이었다. 최근엔 노인들 상대로 총으로 때려서 귀중품들을 뺏어가는 사건도 많았다. 그러니 걷다가도 모르는 사람이 너무 훅 가까이 오면 왠지 쫄아들었다.



  고목나무 청년은 계속 손을 흔들고 있었다. 제법 가까이 다가갔을 때 그는 인상 좋고 키가 족히 2미터는 되어 보였다.



  그는 대뜸 "TNT 아니??"



  "포.. 폭탄..?? 말하는 거니??"



  구리 주석 폭탄인가 그거 아닌가?



  "꺄하하하하 너 진짜 웃긴다." 흑인청년은 배를 잡고 웃었다.



  "?? 저요??"






   그는 조끼의 가슴께를 펴서 보여주었다. The Nature Conservancy. 자연 보존? 환경단체였다. TNT가 아니라 TNC를 말하는 것이었다. 대뜸 시작된 프리토킹은 제법 길어졌다. 억양이 좀 특이해서 못 알아듣는 부분도 많았다.



  "얘 너는 어려 보이는데 우리 지구를 보전해야 하지 않겠니? 우리는 그런 일을 한단다. 어쨌든, 너는 몇 살이니? 22살 정도로 보이는데." 길에서 말 거는 친구들은 이 멘트를 어디에서 다 배워오는지 항상 비슷한 얘기들을 한다.



  "나 삼십 대 인디.."



  "와우. 너는 어떻게 그러지? 물을 많이 마시나? 요가를 하나? 운동을 많이 하니? 비결이 뭘까.."



  "아.. 유전이야. 아시아인들의 유산이랄까."



  "꺄하하핳 너 정말 웃긴다."



  "하지만 내 장기들은 다 썩었어. 소화가 잘 안돼.. 예전처럼.."



  "꺄하하하하..!"



  이런 리액션이 미국의 스탠딩 코미디계를 먹여 살리나보다. 아마도 이십 대인 너를 위해 지구를 지키겠다는 스토리였던 것 같은데..






  "내가 자연에 대해 설명해주고 싶은데 물에 대해서 들어볼래 공기에 대해서 들어볼래?"



  '안 들어도 되는데.., ' '그리고 나 기부할 돈 없는데.., ' '이런 데서 잘못 등록하면 메일도 계속 오고 약간 귀찮은데., ' 요런 생각들을 하면서 어떻게 거절할까 고민했다. 그는 너무너무 설명하고 싶다는 표정으로 대답을 기다렸다.



  "물.. 물.."



  "미시시피 불라불라 미시간 레이크 불라불라. (대략 미국인구의 몇 퍼센트는 몇 년 뒤에는 깨끗한 물을 마시지 못하고.. 자기들은 농장을 지원하기도 하고..) 불라불라.."



  그렇군. 미국도 물이 부족할 수 있군.. 아 근데 얘는 키가 너무 크네. 나 정수리 쪽에 머리카락이 별로 없는데.. 보통 누가 나를 내려다보는 일은 잘 없었는데... 거참.. 신경 쓰이네. 이런 생각을 할 때 즈음.



  "모든 문제에는 뭐가 있지?"



  "....?? 사.. 사람!... 인류?"



  "꺄하하하. 해결책이 있다는 뜻이었어. 그래 사람도 있네."



  고목나무 청년은 태블릿을 집어 들었다. 스몰토크는 끝났고 이제 등록을 할 것 같았다. 하지만 나는 어딘가에 등록되기 싫고.



  "내가 너를 뭐라고 부르면 좋을까? (하지만 나는 잘 못 알아 들었었다.) 닥터? 미스터? 미스? 미시즈??"



  "으음.. 모르겠는데. Not sure."



  "Not sure! 그럴 수 있지."






  계속 주변을 떠돌던 조그만 청년이 다가왔다. 사실 고목나무 청년이 나를 잡아두는 동안 조그만 청년도 다른 사람들에게 말 걸기를 몇 번 시도했지만 현지의 미국사람들은 바빠 바빠하고 자리를 떠났다. 이제 이 녀석도 같이 대화에 참여할 기세로 다가왔다.



  조그만 친구가 물었다. 고목나무와 매미 같은 듀오가 나를 바라봤다.



  매미는 물었다. "너 시카고에서 왔니?"



  외국인에게 아주 돌려서 물어보는 너 어디서 왔지라는 질문이다. 왠지 Where are you from? 은 좀 인종차별적으로 들릴 수 있는데, 너 시카고에서 태어났어? 는 시카고 사람인지 미국의 다른 동네 출신인지, 해외출신인지 물어보는 거기도 하고. 아니면 아 시카고에서 태어나진 않았어 하고 대답을 안 할 수도 있어서 조금 편하게 들린다.



  "한국에서 왔어."



  "여기서 일해??"



  다시 스몰토크가 시작됨.



  "아 여기서는 공부하고. 나도 한국에서 바다와 물고기를 위해서 일했었어."



  "오~" 고목나무 친구가 신나 했다. 고목나무 친구는 태블릿에 내 정보를 입력해야 했고, 매미친구는 쫑알쫑알 더 얘기하고 싶어 보였다.





  집으로 떠나고 싶은 나는 "저기 있지. 방해해서 미안한데. 나는 이미 물을 위해서 열심히 일하고 있어.. 그리고 여기서는 수입이 없거든.. 다른 단체에 주기적으로 기부하고 있긴 한데 추가로 더 기부하긴 어려울 것 같아. 미안. 그리고 나 열한 시에 약속이 있어.. 보시다시피 나 좀 씻고 준비해야 해서.. 하지만 만나서 반가웠어. 프렌드!"



  잔뜩 실망한 고목나무 친구의 표정을 보자 왠지 미안해졌다. 이런 진정성 있는 표정을 본 건 처음인 것 같다. 뭐랄까 미국에서는 반품을 한대도 프로페셔널하고 따뜻하게 맞아주고, 뭐 싫은 소리 해도 적당히 영혼 없이 대응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인지 (예상치 못한) 그의 실망스러워하는 표정을 보니 미안해지기도 했다. 키가 큰 친구는 왠지 실망한 표정이었지만 반가웠어 친구 조심히 가게나 하는 이야기를 해줬다.



  예전에도 어떤 의료단체의 청년과 얘기하다가 대략 저런 식으로 너의 단체를 알게 돼서 기뻐. 좀 더 찾아볼게. 기부하기도 싫고 엄청나게 많은 메일을 받고 싶지도 않지만...! 반나서 반갑다! 고하고 풀려났었다. 바쁘면 그냥 지나쳐도 되지만 당시에 그 의료단체는 국경 없는 의사회여서 브로셔도 받아서 왔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커피나 한잔 사려고 스타벅스로 가던 중 다부진 체형의 백인 아저씨가 스르륵 쪽지를 건넸다. 그리고는 빠르게 사라졌다. 쪽지는 에이포지 같은 종이를 대충 잘라서 프린트한 것이었는데 표지에는 감옥에서 밖을 바라보는 뷰가 프린트되어 있었다. 밖에서는 빛이 쏟아져 들어오는 그림이었다. 신은 당신을 구원한다. 뭐 그런 종이의 안쪽 면에는 성경 구절들이 적혀있는 것 같았다.



  세상 어딜 가나 사는 것 다 비슷하다. 한국에서도 도믿맨들은 나만 보면 인상이 좋다거나 조상이 돕는다고 했고.. 여기서도.. 따흑..



  만약 여행을 하시는 분들이라면 길에서 누가 말 걸 때 비지비지 노잉글리시라고 하며 지나가는 게 좋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특히나 여행자들이 많은 도시인 LA나 뉴욕에서는 자기가 유튜버라면서 대뜸 뭘 주는데 받으면 갑자기 사인해주고 돈 내놓으라고 하는 경우들도 있었다. 약에 취했거나 진짜 이상한 사람들도 많으니 멀리서 봐도 뭔가 이상하다 싶으면 살짝 피해가시길. 이상한 애가 말걸면 우리나라에서 하듯 대답 없이 가던 길 쭉 가는 게 상책.


  


 


                    

이전 06화 우리는 영어를 못하는 게 당연하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