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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민혜 May 04. 2024

우리는 영어를 못하는 게 당연하다.

영어 문법이 어렵게 느껴지는 건 네가 사람이어서 그래.


서른 살의 마감을 10일 앞둔 2023년 1월, 나는 시카고의 한 어학원에서 영어 문법책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ESL (English as a Second Language) 과정의 문법 선생님인 케빈이 말했다.



  "관계대명사 어렵지?

  그건 네가 사람이기 때문이야."



  영어 선생님 왈 "나도 한국에 있을 때 한국어를 좀 배워보려고 했는데, 영 어려워서 그냥 몇 마디만 배워왔어. 민혜, 안. 영. 하. 세. 요.~! (뿌듯)" "또 하나 아는 것 있어. 모기! 모기라는 단어는 영단어인 모스퀴토보다 그 작고 악마 같은 생명체에 더 잘 어울리는 이름 같아. 모~기!" 그는 종종 단어를 수동적 passive으로 기억하기 위해서는 최소 서른 번은 노출되어야 하고, 능동적 active으로 사용하려면 60번은 노출되어야 한다고 말했고 모기에 대한 그의 생각은 이렇다. "한 단어를 active 하게 사용하려면 60번은 듣고 읽어야 한다는데, 모기라는 이름은 단 한 번만에 기억하고 쓸 수 있게 되었어. 신기한 이름.."



  이후 다른 수업 때는 라이스 lice라는 단어를 보고 한국말로는 뭐라고 하냐고 해서 이!(머리나 피부에 붙는 이입니다.)라고 했더니 그는 "코리안의 해충 이름 짓기는 최고야. 해충이 나타났을 때 급하게 조심하라고 말해줘야 하는데 그때 딱이야..!"라는 감탄을 자아냈다. "라이스!라고 하면 좀 늦어. 이! 는 아주 다급하지만 확실하게 의사를 전달할 수 있지.."



  재밌는 사람.. 이번 글은 서른 넘어 재밌는 사람들로부터 배워가는 영어에 대한 고찰이다.








  나는 영어 공부를 놓은 지 아주아주 오래인 채로 미국에 왔다. 그래도 어떻게든 살아나갈 수 있겠지 하는 자신감도 있었고, 뭐 어학원도 다니게 되었으니 영어가 늘겠지 싶었다. 하지만, 여행용 영어와 실전용 영어는 조금 달랐다. 미국에 간지 며칠 안되었을 때 남편이 사는 아파트에 나를 공동거주자로 등록해야 한다고 메일이 쏟아졌다. 내가 답을 띄엄띄엄하니 일층에 사무실이 있으니 시간 나면 한 번 오란다. 하지만 얼굴을 맞대고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왠지 무서웠다. 이후로는 답장을 빨리빨리 했다. 집에 냉장고가 고장 나서 고쳐달라는 말을 해야 하는데 아파트 관리하는 사람한테 말 걸기도 두려웠다.



크리스마스 분위기가 한창이던 때에 이곳에 떨어진 나는 이방인!



  한 일 년 정도 사니까 이것저것 사는데도 적응하고, 약간 무례한 부탁도 방어하고, 상대방이 너무 이상한 얘기 한다 싶으면 왕왕 싸우기도 한다. 싸우는 게 좋다는 건 아니지만 공격적인 태도에 웃으며 응수하면 다음에도 또 선 넘는 이곳.. 아메리카. 아. 진짜 공격할 것 같으면 피하는 것이 상책.





  엣헴. 삼십 대로서 20대 초반의 친구들과도 섞여서 공부하는 것이 쉽지는 않았다. 한국에서 수업을 듣고 공부를 하던 때의 나와 여기서 잘 안 되는 영어로 수업을 듣고 공부하는 나를 은근히 비교했었다. 그러고는 아무래도 지능이 예전에 비해서 좀 떨어지는 것 같아. 단어가 잘 안 외워져!라는 이야기도 심심치 않게 남편에게 해댔다. (확실히 어릴 때 외웠던 단어는 오래 기억한다만 새로 보면 흡수가 느리다. 당연한 거지.)



  그래도 다행스럽게 제법 괜찮은 강사들을 만나서, 영어공부에 재미를 붙였다.





  사실 나는 한국에서 영어 강사를 했던 경험이 있다. 부끄럽게도 대학생 때 중고등학생 대상으로 영어학원에서 파트타임 아르바이트도 했었고, 과외도 했다. 하지만 당시의 나는 문법을 가르치면서도 정통하지는 못했다. 여러 문법책을 통해서 수능이라는 시험을 통해서 영어를 배웠지만 내가 이걸 말할 수 있는가에 대한 확신도 없었다. 점수만 잘 내주면 되니까.. 일단 점수가 잘 나오려면 내신에 나올만한 지문들을 외우게 하고, 빈칸에 들어갈 만한 것들을 모조리 외워라! 하는 것이 나의 영어 공부 방법이자 가르치는 방법이었다.



  그래서인지 제대로 배워보고 싶다는 생각은 늘 있었지만 기회는 좀처럼 오지 않았다. 미국에서 원어민에게 배우는 영어가 어떨지도 정말 궁금했다. 어쩌다 오게 된 미국에서 무언가를 배울 수 있는 건 나에게는 정말 큰 선물이다.



  개강하기 전에는 약간 설렘과 두려움이 공존했다. 뚜껑을 열어보니 영어로 배우는 영어는 제법 재미있었다. 읽기 강의에서는 아티클을 읽었고, 선생님은 애들이 모르는 단어가 있으면 사진을 보여주었다. 동사라면 직접 그 행동을 하는 식으로 가르쳤다. 문법 강의에서는 동사의 시제를 거의 한 학기를 했다. 이걸 한학기하기에 한국 영어교육은 조금 바빴다. 만약 내가 고등학생인데 선생님이 영어 시제를 한 학기 내내 가르치고 있다면? 답답한 사람으로 보일 것이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여유를 두고 배우니 아주 세부적인 차이점들도 눈에 보였다. 강사들은 제법 꼼꼼하게 많은 예문들을 보면서 체화할 수 있도록 도왔다. 그렇게 배우는 영어 문법은 조금 더 쉽게 입에서 나왔다. 매일매일 너 오늘 어때? 어제는 뭐 했어. 오늘은 마치고 뭐 할 거야. 주말에는 뭐 하니 하는 스몰토킹에 대응하기 위한 소재도 개발해야 했다.  



  




  반면 한국식 영어교육의 장점도 있다. 한국 표준교육을 받은 나는 말하기와 쓰기보다는 듣기와 읽기, 문법을 잘했다. 대조적으로, 남미 출신의 아이들은 문법을 어려워하지만 말하는 데는 거침이 없었다. 비록 뭔가 좀 이상한 것 같은데, 스페인어 섞어 쓴 것 같은데? 하는 순간들이 있지만 그래도 말하는데 두려움이 없으면 영어가 빨리 느는 것 같았다. 반면, 나의 경우에는 스몰 토킹은 어색하지만 프레젠테이션을 하거나 구조적으로 말해야 할 때는 열심히 배우고 외웠던 영문법이 은근히 도움이 되었다. 문법을 열심히 한 애가 말하기나 쓰기를 꾸준히 일 년 정도 하면 언어 실력이 많이 느는 것 같다. 우리네 영어공부는 기초공사는 비교적 탄탄하고 위에 언제든 다음 벽돌을 쌓으면 된다.  



  또한, 미국에 나와있다고 영어를 많이 쓰지 않기 때문에 당장 영어성적이 급하거나, 영어실력의 급상승을 노린다면 오히려 한국에서 학원을 다니면서 또는 집에서 시험 준비를 한다거나 하는 식으로 공부를 하는 게 도움이 된다는 생각도 많이 했다.

  

  



  내가 영어 공부를 하면서 미국 사람으로부터 들었던 위로 중 가장 기억에 남는 두 가지가 있다.



  첫 번째로, 하루는 내가 패트릭이라는 선생님에게 질문했다.



  "나는 한국에서 공부할 때 제일 어려웠던 게, 눕다-누웠다-누워왔다 or 누워있는 (lie-lay-lain) 랑 눕히다-눕혔다-눕혀놨다 or 눕혀놓은 (lay-laid-laid) 이런 거 엄청 빡세게 한국에서 외우고 집착했었는데, 실제로 못쓰겠어."



 패트릭이 말했다.



  "언어는 쓰려고 배우는 거야. 솔직히 나도 lain과 laid는 헷갈려. 왜 그렇게 쓰는지도 이해하지 못하겠어. 사람들이 헷갈리고 어렵다고 느끼는 문법이라면 30년에서 50년 지나면 책에서만 볼 수 있는 문법 이야기 일 수도 있어. 물론 언어 학자가 되려면 그런 것들을 알면 좋겠지만, 우리는 영어를 쓰려고 배우기 때문에 그런 세세한 부분에 너무 많은 시간을 쓰지는 마."



  "!"



 


 두 번째는, 관계사를 배울 때였다.



   that, which, whose 이런 애들이 여기저기 나온다. 사실 관계사는 토익을 공부하면서 거의 기계적으로 배워온 짬바가.. 있기 때문에 차분히 들여다보면 그렇게 어렵지 않다. 하지만 역시 입에서 나오는 데는 시간이 필요하다.  



  남미에서 온 친구는 도무지 이걸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그러자 선생님 왈.



  "이게 헷갈린다는 건 네가 보통의 사람이라는 거야. 전혀 이상한 것이 아니야!"

        (못 알아듣는다고 이상한 것이 아님. 괜찮음 ㅇㅇ. 머리 뜯지 마삼.)



  그래 뭐 이건 우리 세컨드 랭귀지니까 어려울 수 있다. 더구나 영어와 한국어는 많은 부분이 다르기 때문에 자그마한 것들도 스르륵 흡수되는 법이 없다. 오죽하면 어떤 미국의 애니메이션에는 외계어 대신에 한국의 사투리 음원을 사용했겠는가. 서로 비슷한 점이 없는 언어를 배워가는 것은 당연히 쉽지 않은 일이다. (실제로 스페인어와 영어는 같은 어원을 가진 단어가 참 많다. 스페인어를 조금 배워보면 영어가 어렵다고 찡찡거렸던 나의 남미 친구들에게 한마디 해주고 싶다! 얍!)



파이팅 곰돌이



  힘을 내보자. 외국 생활을 염두에 두고 있는 분들도, 한국에 계시지만 영어를 잘해보고 싶은 분들도, 아니면 왠지 남들 다 잘하는 것 같은데 나는 잘 못하는 것 같아서 아쉬운 분들도. 이걸 꼭 아셨으면 좋겠다. 못하는 게 당연하다!



  그리고 모르면 물어보면 되고, 물어보는 것은 부끄러운 것이 아니며, 그마저도 부끄럽게 느껴진다면 요즘은 Chat GPT에게 물어보고 살포시 삭제해도 된다. 정말 정말 설명도 잘해주고, 나 여행 갈 건데 한 열 가지 정도 좋은 말 추천해줘 하면 추천도 해준다. 에세이 어떻게 써야 하냐고 물어보면 에세이의 구조도 알려준다. 배우면 된다. 그리고 배운 만큼만 써먹으면 된다. 그렇게 조금씩 배워서 조금씩 써먹으면 느리게라도 는다.



Have a good one!

해브 어 굿 원 ㅡ !

   (조금 더 웅얼거리면서 '해버구둰' 정도로 말해야 오히려 잘해 보이는 마법.)

모두 잘되길!



거북이 간다!


추천 어학원(시카고 소재): Midwestern career college, ESL과정이 괜찮다. post ESL은 약간 아쉬운편이다. 3달 1590달러이다. 월~목 9:30-2:30.

추천 교재: National Geographic Learrning, Grammar Explorer 3A, 3B

              (중간중간 이미지로 들어가 있는 책)

              (중상급자 수준 영문법, 우리나라 고등학교 1~2학년 수준의 영문법 책이다.)

추천 강사: Open AI 챗지피티 https://chatgp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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