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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민혜 May 25. 2024

미국의 고층 건물에서 화재경보기가 울렸다.

안전하게 해외에서 생존하기


1. 시카고에서의 일상 이야기




시카고의 좋은 날씨는 귀하다. 9월부터 거의 3월까지는 겨울이니 겨울이 일 년의 절반이다. 지금은 봄과 여름의 사이에 있는 것 같다. 야외에 사람들이 많이 나와있고, 그만큼 크고 작은 축제도, 범죄도 많이 일어난다. 게다가 며칠 전에는 두 블록 떨어진 아파트먼트에서 불이 났다. 아 요새 동네 왜 이래?라는 생각이 절로든다. 동네에 새로 알게 된 한국인 지인이 있는데, 그분이 인스타그램 스토리에 사건 사고 공유를 많이 해줘서 더 그런지도 모르겠다.  



"새벽에 사이렌 소리 들었어? 여섯 시쯤 너무 시끄럽던데."



"아닝. 그래서 일찍 일어났어?"



"응. 그 시간에 이미 날도 밝아서 잠 다 깨부럿어."





 도란도란. 요즘 내 루틴은 아침에 계란을 몇 개 구워서 남편하고 나눠 먹으면서 좀 떠들고, 시간이 좀 넉넉하면 도시락도 싸가고. 커다란 노트북을 가방에 끼여 넣어 맨 채 스타벅스에서 커피를 한 잔 사들고 수업에 간다. 이번 학기에는 유독 수업시간에 과제를 내는 일이 많아서 늘 노트북도 챙겨야 하고, 뭔 사전 같은 책을 줘서 저놈의 책에 도시락가방까지 들고 다녀야 한다. 도시락가방은 마치 초등학생 때 들고 다니던 실내화 가방 같다. 날씨가 아주 좋으니 걷는 것도 좋고 버스 타는 것도 좋다.



  집에서 출발한 뒤 한 삼십 분은 넘게 걸려서 버스에서 내리면, 오피스들이 즐비한 고층 건물들 사이의 한 건물의 지하에 우리 학교가 있다. 사실상 지하가 아니라 원래는 1층이었을 테지만 도시 전체적으로 한 층을 더 덮어놓은 구조라 입구에서 아래로 한층 내려가야 한다. 물론 창문으로는 강이 보이고 햇빛도 들어서 쾨쾨한 지하의 느낌이 들지는 않는다만.





  스르륵 들어가서 자리를 잡고 앉는다. 여느 날처럼 앉아있었다. 여느 날처럼 조금 지루하게 앉아있었다. 선생님은 수업을 시작했다. 그 쌤은 미국 남부출신으로 제법 어린 친구이다. 책 읽는 걸 정말 좋아하고 영문학으로 석사까지 했지만 스펠링을 자주 틀린다. (이전에 다른 선생님들도 스펠링 왕왕 헷갈려할 때가 있으니 뭐. 큰 문제는 아니다.) 이 친구는 책을 일주일에 다섯 권씩은 읽는다고 한다. 오. 아무튼 수업을 듣다가 점심시간이 다가올 무렵에 갑자기 귀를 울리는 소리가 들렸다.




  화재경보기 소리가 크게 울렸다. 마치 소리가 공기를 채우는 듯 했다. 학생들은 당황했다.



"뭐야?"



  나는 겉옷을 걸치고 핸드폰, 에어팟을 주머니에 넣고 노트북만 들었다. 가방을 다시 싸자니 가방이 작아서 노트북을 낑겨넣는데 시간이 또 한참 걸릴 것 같아서였다. 선생님은 강의실 문을 열어보더니 와 밖이 더 시끄러워. 밖에 애들이 다 나가네. 우리도 나가야 할 것 같아. 몇몇 애들은 그제야 짐을 싸기 시작했다. 냄새가 나지도 누가 불이야 외치지도 않았다. 하지만, 외국에서 그것도 지하에 있는데 불이 났을 수도 있다는 사실에 나는 내심 긴장했다. 같이 있는 친구를 좀 재촉하기도 했다.



"타티! 넌 언제 가방 다 쌌어? 빠르군."



"넌 중요한 것만 챙긴 거야?!"



"가방을 좀 큰걸 사야겠어. 노트북 가방에 넣고 잠그는데 시간이 넘 오래 걸려. 암튼 내 우선순위가 전자기기들로 밝혀졌네.."



  복도에 나가니 화재경보기의 소리가 정말 시끄러워서 귀를 막고 나가야 했다. 지하에서 위로 올라가는 에스컬레이터는 하나고, 학생들이 모두 나오니 그 부근이 와글와글했다. 사실 지하에는 위로 올라가는 에스컬레이터가 하나, 다른 건물의 같은 층으로 이동하는 문이 하나 있다. 양쪽으로 대피할 수 있지만 왠지 사람이 많은 쪽만 보고 가니 나도 따라 에스컬레이터를 타려고 했다. 그래도 아무도 막 밀거나 재촉하지 않아서 놀라웠다. 또 그 와중에도 문 잡아주는 친구들이 있다는 점도.



  에스컬레이터 앞에서는 사람 너무 많았고 주위를 둘러보니 이쪽저쪽에 아는 얼굴들이 보였다. 에스컬레이터 반대편에는 케빈 아저씨가 다른 건물로 가는 쪽 문으로 나가라는 듯 손짓하고 있었다. 그 문은 회전문이어서 사람들이 하나하나 나가는데 시간이 좀 걸려서 답답하기는 했다. 화재경보기 소리와 같이 밖에서는 소방차가 온 듯 사이렌 소리가 들렸다. 고층 건물이니 지하 쪽이 아니더라도 다른 층에서 뭔가 일이 있을 수도 있다는 얘기들을 하면서. 아무 일도 없다면 지금쯤 나가서 점심을 먹고 오면 되겠다는 얘기도.

   


멀리보이는 소방차

 


 건물 밖으로 나가보니 두대의 큰 소방차가 와있었다. 오. 무슨 일이 있는 건가 위를 올려다봐도 벌집처럼 생긴 우리 건물은 평소와 똑같았다. 별일 아니길 바라면서 윌리스타워에서 점심을 먹었다. 어떤 친구는 자기 너무 스트레스받았다며 집에 갔다. 그럴 수 있지..





  점심 먹고 다시 돌아가 보니 역시 별일 아니었는지 모든 것이 평화로웠다. 반가운 나의 자그마한 가방과. 남겨놓은 책과 노트북과 같이 쓰는 마우스는 강의실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뭔 일이었대? 혹시 아는 사람?"



"우리 런치룸에서 누가 전자레인지에 플라스틱 넣고 돌려서 연기가 났대."



"아!"



"전자레인지 돌리면 안 되는 걸 돌렸다나 봐. 저쪽에 냄새 좀 나."



"오.. 그렇군.."





  그러고 한참 수업을 듣던 중 옆에 애가 담배를 피우고 왔는지 냄새가 너무 심해서 머리가 지끈지끈 아팠다. 얘 내가 좀 예민해서 그런데 혹시 지금 가스냄새가 나는 건 아니지? 너의 담배냄새인거지?라고 물어보았더니 맞단다. 와 정말 대박이네 얘옆에는 다시는 앉지 말아야겠다 생각할 무렵 어떤 애 한 명이 뭔가 가스냄새가 느껴진다며 가방을 주섬주섬 싸고는 집에 가셨다. 차마 야 이거 얘 냄새야 라고 말할 수 없어서.. 또 너무 티 나게 자리를 옮기기가 뭐해서 수업이 끝나기만을 기다렸다.






2. 이웃들과 같이 생각해보고 싶은 내용



자립 (Self-reliance)의 나라에서.. 사고가 생긴다면 진짜 믿을 건 나밖에 없다는 생각이 또 든다.  



  우리 강의를 듣는 사람들의 나이대는 평균 30대 초반 즈음이다. 나이 든 나도 당황스러운데.. 어린 자녀를 유학 보내거나 유학 나온 이십 대 초중반의 친구들이라면 분위기에 더 휩쓸릴 수도 있을 테니, 이런 상황에는 어떻게 대응해야 한다는 것들을 꼭 알아야 할 것 같다. 특히나 유학생들은 거주하는 아파트먼트들도 돈 아낀다고 시설 좀 낡고 관리 잘 안 되는 곳에 사는 경우가 많은데, 집에서도 학교에서도 늘 불조심.. 사람 조심.. 그리고 경보가 울렸을 때 친구들이 미적거리면 나도 미적거리게 되는데, 경보 울리면 일단 난 나가려고! 너도 같이 나가서 확인하자!라고 말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교우들이 미적거리면 나 혼자라도 나가는 걸로.. 그래야 다음 사람도 대피할 수 있을 것 같다.  



혹시 갇히면 이 창문을 깨야하나!?



  또 실제 상황이었다면 얼마나 무서웠을까 싶었다. 남편은 항상 뭔 일이 났을 때 탈출 할 수 없다면 그나마 구조가 오래 버틸만한 계단실로 가라는 말을 했었고 화재경보가 울렸을 때 그걸 떠올리긴 했다만. 내가 있는 곳의 계단은 에스컬레이터로 대체했고 에스컬레이터 위쪽에는 뭘 받치는 구조가 따로 있지는 않았다. 건물의 서쪽 부근은 강과 바로 맞닿아있으니 창문을 깨고 강으로 나가야 하나?! 뭐 그런 고민들도 짧게나마 해봤다. 가능하면 이런 고민들은 주변에 같이 일하거나 수업을 듣는 지인들과 나눠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한 번이라도 생각을 맞춰보는 게 아예 안 하는 것보다 도움 되지 않을까?



  연수원에 있을 때 소방청에서 운영하는 화재 대응 모의훈련소 같은 곳에 갔던 적이 있다. 줄 타고 내려가는 것도 해보고, 화재 상황과 비슷하게 만들어서 어두컴컴한 계단에 연기가 나고 우리는 계단을 따라 이동하는 연습도 해볼 수 있었다. 지진이나 태풍을 강도별로 체험해 보는 공간도 있었고. 연수원 생들이 잔뜩 있었고, 학생들도 체험학습을 하러 와있었다.



  컴컴한데 계단 따라 내려가는 건 실제상황이 아닌 걸 알고 있었고, 앞뒤로 동기들이 가득하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제법 무서웠다. 가능하면 브런치 이웃 여러분들께서도 화재 안전 체험을 검색하셔서 가까운 곳에 한번 가보셨으면 좋겠다.


  





3. 안전에 관한 사족



안전에 관해서 또 한 가지 직업병처럼 자주 생각하는 것이 있다. 이런 주제로 따로 이야기할 일은 없을 것 같아서, 이 글에 붙여 써보려 한다.



  시카고에는 유람선이 정말 많다. 강 따라서 건축 투어를 많이 하고, 미시건 호에도 배들이 많이 나간다. 요 근방을 돌면서 설명해 주는 가이드 투어도 있고, 미시건 호를 가로질러서 일리노이 주에서 미시건 주로 가는 페리들도 많다. 페리는 직접 본 적은 없다만, 다른 유람선들을 보면 복원성이 그다지 좋지 않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보통 선박의 무게 중심이 약간 아래쪽에 있고 옆으로 좀 통통해야 잘 넘어가지 않는데, 배들을 보면 예쁘긴 한데 가분수처럼 너무 위쪽에 치우쳐진 있는 배들이 많은 것 같다. 짐을 많이 싣지 않는 배라서 저렇게 지었나 싶기도 하고, 바다가 아니라 강이니까 저렇게 지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여기뿐만이 아니라 유럽이나 미주 곳곳에 강변 따라가는 유람선 투어들이 많이 있지만, 배들이 구조적으로 안전한지 확신할 수는 없는 것 같다.



  드리고 싶은 말씀은 바람 많이 불고 파도 많이 치는 날에는 가능하면 배타지 말고, 혹시 사고가 날 것 같다면 배 안에 머무르기보다는 밖으로 나오는 편이 안전하다고 알려드리고 싶다. 주로 강따라가는 크루즈는 겨울에는 안하니까 물 온도가 괜찮다면 밖에서 부력이 있는 물체를 구할 수 있다면 그 편이 훨씬 낫겠다. 강에서 사고가 일어나면 사고지점 파악이 빠르니 구하러 가는 시간도 빠르겠지만, 또 그마만큼 사고가 많이 나는 게 아니니까 대비가 잘되어있으리라는 보장이 없다. 해외여행을 하는 동안 장밋빛 여행의 추억들을 많이 쌓아가기 위해서는 잘잘한 사고들을 잘 피해다녀야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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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박에 대해서 혹시나 뭔가 더 공부하고 싶은 분이 있다면 추천하는 책.. 어선안전정책과에서 일할때 짝궁이었던 문상원 주무관님이 쓰신 책이다. 총 네 권인데 조선쪽을 공부하시는 분에게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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